말은 수목과 같다

방민호의 <문화칼럼>

등록 2001.05.31 18:00수정 2001.06.0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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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을 찾아 보고서야 비로소 그 뜻을 제대로 알게 되는 아름다운 우리말이 많다.


'들꾀다' 같은 말은 벌레 따위가 많이 꾄다는 뜻이니 별로 어려울 게 없다 치더라도 '가살 피운다'는 그 '가살'이라는 말이 교활하고 얄미운 태도를 가리키는 말임을 알기 쉬운 일이 아니다.

또 '부르대기'란 곱지 않은 말로 남을 나무라다시피 떠들어대는 태도를 이름이다. '언죽번죽'이라는 말은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고 비위가 좋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옹근'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깨어져 조각이 나거나 없어져 축이 나지 않고 있을 것이 본래대로 다 있음을 가리킨다.

손석춘이라고, 한겨레신문에 칼럼 쓰는 분의 글을 읽는데 이 말들이 나와 새삼스레 궁금해졌다. 마침 옆에 있던 {조선말사전}(연변인민출판사, 1995)을 찾아보니 다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었고 오로지 '부라퀴'라는 말만 없어 다른 사전을 찾아보았다.

북한 사전에 그 뜻이 두 가지로 나와 있는데, 그 하나는 몹시 암팡스럽게 사납게 굴며 남을 못살게 구는 자를 가리키며 다른 하나는 제게 이로운 일이라면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덤비는 사람을 가리킨다. '부라퀴'라는 말의 거친 음색과 뜻이 잘 어울리는 듯하다.

얼마 전에 영어를 제주도 공용어로 만들겠다는 국회의원이 있었다. 정치권의 복거일 선생인 듯한데, 과연 그것으로 관광객이 늘고 탐라인들이 잘 살게 되어 그 혜택이 국민 모두에 돌아갈 수 있을까?


필리핀이나 인도를 생각하면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지만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그 경제 제일주의 사고이다. 참으로, 이 세계화와 인터넷 세상을 맞이하여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말이다.

말은 수목과 같아서 한없이 아끼며 가꾸고 다듬어도 지나침이 없다. 또, 말은 수목과 같아서 어떤 작은 개체 수를 가진 말이라도 보호되고 보존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렇지가 못하다. 국회의원이 나서서 모색(毛色)이 다른 남의 말을 자기 말로 쓰자고 하고 문학인이 나서서 생존을 위해서는 영어상용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가상의 지면이라 해서 말에 상처 내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일이 많다.

며칠 전에 베트남의 상처를 그린 {슬로우 불릿}의 작가 이대환 형이 인터넷상의 모국어 훼손이 정도를 넘었다고 우려하기에 그러는 형은 왜 작품에다 영어 제목이나 갖다 붙이십니까, 하면서 같이 쓰게 웃은 일이 있었다. 고엽제로 인한 후유증을 가리키는 말이니 그 얼마나 적절한 제목인가?

나는 언어의 국수주의자도 미문(美文)만을 숭상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우리말은 지금 바야흐로 상처투성이다. 아름다운 말은 아름다운 수목처럼 탐스러운 것을. 말의 풍성스러움은 정신의 올곧음을 더해 주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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