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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중국에 갔을 때 그곳 당국은 텐진의 해가 저물도록 배의 입항을 허가해 주지 않았다. 덕분에 사람들은 사방이 캄캄해진 후에야 입국수속을 밟고 저마다의 행선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아무런 예정도 없이 낯선 땅으로 흘러 들어간 나는 배 안에서 만난 대학생을 따라 조선족의 마이크로 버스를 타고 텐진에서 두 시간 걸린다는 베이징으로 향했다.
가로등 하나 없는 고속도로는 암흑천지였고 어디서 몰려온 폭풍우인지 하늘을 갈갈이 찢어놓을 듯한 벼락이 치고 천둥이 울고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성난 비가 내렸다. 마침내 버스는 길어깨에 서서 비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고 덕분에 캄캄한 베이징에 내렸을 때는 밤 열두시가 넘어 있었다.
나의 행선지는 어느새 숙박업을 하고 있는 조선족의 아파트로 정해졌는데 그런 것들이 다 버스 안에서 임시변통으로 해결된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족이라면 한 핏줄이 아닌가, 중국의 조선족 아파트는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아니 일 수 없었다.
조선족 젊은이가 나와 나의 동행인을 아파트로 데려간다. 아파트 정문은 초라한 나무대문이고 현관문은 유리가 깨어져 있고 전등도 나가 버렸다. 계단을 올라가는데 어디선가 시큼털털한 냄새가 끼쳐오기 시작한다. 201호쯤 될 아파트의 나무 현관문도 부서져 있다. 3층이었던가, 4층이 내가 들어가야 할 곳인데 그곳 역시 다를 바가 없다.
화장실에 가보면 양변기의 좌대가 떨어져나가 버려 어떻게 앉을 수 있는지 알 길 없고 실내 전체에 퀘퀘한 냄새가 가득차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방벽에는 빈대인지 뭔지 벽에 검은피를 흘리며 죽은 곤충들이 군데군데 붙어 있고 이불은 누덕누덕한 데다가 지저분하기 짝이 없고 습하기까지 하다. 다늦은 저녁을 들여오는데 퍼런 김치는 식초를 들어부은 것처럼 풀이 죽어 있고 콩나물에서는 이상한 비린내가 솟아나 밥맛을 잃게 한다.
그곳은 숙박만을 전문으로 하는 집이라니 주인이 사는 집은 그곳보다 훨씬 낫겠으나 대개 한 나라의 문화나 위생 수준은 숙박업소의 그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중국돈으로 100위안, 즉 우리 돈으로 만 원짜리 잠을 자야 했으나 배짱 좋게 이불 속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워야 했다.
피곤에 겨워 앉은 듯 쓰러져 있자니, 서울에서의 일들도 활동사진처럼 머릿속을 천천히 흘러가지만, 나의 피를 함께 나누었다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먼 곳에서 이렇게나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니, 하는 비감한 마음이 불쑥 솟아나 사라지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한 곳에서 하나의 말을 쓰던 사람들이 이렇게 나뉘고 흩어져 저마다 다른 슬픔 속에서 살아가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의 장래에 관해 무엇인가 생각하고 계획해야 한다면 지금껏 그래왔듯이 이 좁은 한반도의 반쪽만을 염두에 두어서는 안되겠다. 북쪽에도 만주에도 오사카에도 또 L.A.에도 말이 같은 또 다른 우리가 있으니 그들이 우리에게 연결되어 있고 우리가 그들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연락의 의식이 필요하다.'
중국의 첫날밤은 얽힌 상념의 실타래 덕분에 길고 길어 아침이 오지 않을 것만 같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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