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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5일 김학철(金學鐵, 1916-2001) 옹이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셨다. 내 비록 그 분에 대해 아는 것 없으나 반드시 한 편의 작가론을 남기겠노라고 생각한다.
보성학교를 다녔다니 반도에서 인텔리축에 끼어 살아갈 수 있었을텐데 조선의용대에 입대하여 항일 무장투쟁을 하다 한쪽 다리를 잃었다. 가족에 피해가 갈까 경계하여 본명인 홍성걸을 김학철로 바꾸어 평생의 이름으로 삼았다.
해방이 되어 북한에서 노동일보 기자로 잠시 일했으나 곧 중국으로 망명했다 하니 이는 위세를 넓혀가던 김일성 체제 아래 살 수 없었음이다. 피비린내 나는 숙청으로 점철될 체제의 앞날을 미리 내다본 형안이었다.
광풍같은 문화혁명의 와중에 마오쩌뚱을 향한 우상숭배를 비판한 일로 10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무한권력의 횡포 앞에서도 불의에 눈감지 않은 삶이었다.
세상을 뜨면서 외아들에게 일절 부고를 내지 말라 하고 화장하여 뼛가루를 두만강 하류에 뿌려달라 했으니 마지막 순간까지 이승의 번거로운 잡사에 미련 두지 않은 삶이다. 덩샤오핑처럼 이것이야말로 '열반'이다.
21세기, 외줄기 개벽같은 삶을 찾아보기 힘들다. 허명과 물질을 좇아 자기를 버리는 일이 즐비하기만 하다. 신문으로 뒤늦은 소식을 접한 나는 발을 헛디뎌 허방 짚은 사람처럼 망연자실했다.
삶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 말은 거짓을 꾸밀 수 있으되 살아낸 삶은 달리 꾸며 남 속일 도리가 없다. 그럼에도 내가 옹의 삶을 배울 수 있는 길은 한 편의 작가론을 말로 지어내는 일뿐, 그는 작가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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