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의 환상이 넘치는 라스베가스

꿈, 환상 그리고 착각의 도시

등록 2002.01.30 09:53수정 2002.01.30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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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캐년에서 LA로 돌아오는 길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내가 LA에서 그랜드 캐년까지 왔던 길로 애리조나주의 지루하게 펼쳐진 사막을 8시간이나 꼬박 달려야 한다. 그랜드 캐년으로 가는 길이야 기대감으로 그 지루한 여정을 참았다면, 돌아가는 길은 그리 녹록치 않으리라 생각했다.

또 다른 길도 사막을 지나가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사막 한가운데 있는 신기루와 같은 곳을 지나간다는 차이가 있다. 사막에 홀로 떠 있는 섬, 그곳은 바로 라스베가스였다. 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갈 수는 없지 않는가? 그것도 사막만 계속 펼쳐진 곳을 말이다. 말로만 듣던 라스베가스를 거쳐가기로 하고, 아쉬움을 간직한 채 그랜드 캐년을 떠났다.


하지만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랜드 캐년의 그 웅장한 크기를 다시 한번 실감했다. 그랜드 캐년의 품안에서 벗어나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다. 콜로라도에서 시작된 그랜드 캐년의 자락은 후버댐에 이르기까지 장장 370km나 연결되어 있다. 어림잡아 광주에서 서울에 이르는 거리가 기괴한 대협곡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고속도로 제한속도였던 75마일로 3시간여쯤 달렸을까? 그제서야 그랜드 캐년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대공황과 뉴딜정책

그 협곡의 끝자락에는 대자연의 신비에 도전하듯, 인간의 손으로 만든 거대한 인공호수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랜드 캐년을 지나는 콜로라도 강 하구를 막아 형성된 거대한 인공호수의 이름은 미드호였다.

▲ 밤이 어울리는 도시 라스베가스
파리의 에펠탑을 옮겨 놓은 것 같은 '호텔 파리'ⓒ 최용선
1936년 만들어진 후버댐으로 인해 자연스레 인공호수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댐 공사의 책임을 담당했던 미드(Mead)의 이름을 따서 호수의 이름을 지었다.

후버댐은 대공황 시기에 만들어진 댐이다. 1929년 미국은 물론 전세계에 몰아쳤던 대공황은 시장경제에서 신성시되던 '보이지 않는 손'의 무력함 앞에 두 손을 놓고 있던 시기였다.


당시 미국정부는 적극적인 시장 개입으로 대공황의 위기를 헤쳐나가게 되는데, 그 정책 가운데 하나가 거대한 다목적 댐을 건설하고 그 인근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뉴딜 정책으로 불리는 대규모 댐 공사를 통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그것을 통해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 즉 유효수요를 높여서 불황을 이겨내고자 했던 것이다.

1936년에 완공된 후버댐(공사를 시작할 당시 재임대통령이던 '후버'의 이름을 따서 1947년 '후버댐'으로 명명되었다)으로 인해 콜로라도 강 하구로 흘러내리던 막대한 양의 수자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되고, 수력발전으로 생산된 전력을 인근 7개주(콜로라도, 와이오밍, 네바다, 애리조나, 유타, 캘리포니아, 뉴멕시코)로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후버댐이 있어 가능했던 '라스베가스'

온갖 네온사인으로 동이 틀 무렵까지 밤거리를 밝히는 도박과 유흥의 도시 라스베가스. 사막 한가운데 이렇게 거대한 유흥과 도박의 도시가 생기게 된 것은 그 시작부터가 어쩌면 한판 도박과 같은 것이었다.

▲후버댐과 미드호
후버댐은 그랜드 캐년의 서쪽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었다. 거대한 도박도시 라스베가스는 바로 후버댐의 건설로 인해 만들어 질 수 있었다
ⓒ 최용선
원래 라스베가스라는 말은 '잡초가 무성한 거대한 땅'이라는 스페인어에서 유래되었다. 1936년 후버댐이 생기기 전까지 라스베가스는 말 그대로 잡초만 무성한 땅에 불과했다. 하지만 라스베가스에서 불과 30km밖에 위치하게 된 후버댐은 사막 한가운데 막대한 양의 물과 전기를 공급해주는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네바다주정부는 댐 건설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자, 사막과 같은 이곳에 더 많은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 도박과 매춘을 합법화시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뉴욕의 마피아 건달(일명 벅시)이 라스베가스에 호텔과 카지노 장을 건설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그때 당시 사막 한가운데 호텔과 카지노 장을 건설한 한 건달의 도박정신은 그 후 엄청난 부를 그에게 안겨줬을 것이다.

누가 사막 한가운데 호텔을 만들 생각을 했을 것인가? 그리고 그 누가 지금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올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그 건달의 도박정신은 많은 이들의 가슴에 아로새겨져(?) 지금 이 순간에도 거대한 도박도시 라스베가스를 더욱 더 화려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호텔과 카지노를 빼면 경제시설이 전혀 없는 라스베가스에 지금은 50여만 명이 살고 있다고 하니, 도박을 통해 사막 한가운데 사람들을 끌어 모으겠다는 네바다주정부의 계획은 일단 성공한 셈이다. 그리고 이제는 미국을 넘어 전세계로 팔을 뻗고 있으니 말이다.

꿈, 환상 그리고 착각

▲ 스트라토스피어 타워(stratosphere tower)에서 바라본 한낮의 라스베가스
ⓒ 최용선
라스베가스는 이제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다. 지난 세기 기회의 땅으로 불리던 미국에 대한 환상은 이제 운명이 뒤바뀌는 행운을 주는 곳으로 그 포장을 달리하고 있다. 뉴욕의 맨하턴 건물들을 1/10로 축소시켜 만든 '호텔 뉴욕뉴욕', 파리의 에펠탑을 본떠 만든 '호텔 파리', 시저황제 시대의 화려한 로마조형물을 복원시킨 '호텔 시저스' 그리고 라스베가스 최초의 '호텔 플라멩고', 이들이 하나의 도박도시 라스베가스를 이루며 행운과 횡재를 원하는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사막을 오래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신기루와 같이, 라스베가스를 향해 달려오는 이들은 가슴 한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은 '대박'에 대한 환상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사라지는 라스베가스의 화려한 밤과 같이, 마음 속에 있는 대박의 환상은 깨어나면 사라지는 하룻밤의 헛된 꿈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불을 찾아 끊임없이 몰려 드는 불나비처럼, 사막 한가운데 자리잡은 신기루 라스베가스를 찾는 이들은 계속해서 줄을 잇는다. 조명이 화려해질수록 한 여름밤의 몽상과 같은 '대박'의 꿈은 커져가는 듯했다. 가깝게는 인근 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 네바다에서 멀게는 뉴욕주와 올란도에서 자동차를 몰고 며칠 밤낮을 달려 라스베가스로 몰려오는 사람들로 각 호텔로비는 북적거렸다.

그리고 화려하지만 결코 헛된 꿈을 깨지 못하게 하는 조명들 앞에, 많은 이들은 자신들의 몸을 내던진다. 밝은 조명 아래 한밤의 꿈이 깨기 전까지 '대박'을 향한 착각의 향연은 계속되고 있었다.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니콜라스 케이지가 환상에서 깨어나 죽음이라는 현실로 복귀하기 전까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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