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색깔론' 강의하기

등록 2002.04.15 17:59수정 2002.04.16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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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와 어제, 4월의 두 번째 주말에도 또 한번 가족 나들이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내와 내 두 아이만 동행하는 단출한 나들이였지요. 내 12인 승 승합차를 거의 채운 상태로, 즉 동생네 가족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하는 가족 나들이가 아니라서 허전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연기군 땅을 거쳐 공주에서 일박한 다음 금산을 다녀와야 하는 제법 긴 여행이었으니….


토요일 오후에는 연기군의, 길이가 십리에 이른다는 고복저수지 근처의 한 농장에서 두세 시간 정도 머물렀습니다. 고향 연기 땅을 지키고 사는 장시종 시인의 농장에서 있은 <충남소설가협회> 회원 이길환 작가의 첫 작품집(장편소설 「아르마딜로」) '출판기념회'에 참석해서 이길환 작가에게 '기념패'를 주고 축사를 했지요. (이 일과 관련해서는 다음 번 글에 자세히 소개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녁 무렵에 공주 땅으로 넘어가서 신관동에 있는 처가에서 일박을 했지요. 모처럼만에 가족과 함께 처가에 간 것은 며칠 후인 17일이 장모님의 77회 생신 일이기 때문이랍니다. 그 날은 주중이라서 태안에서 공주까지 먼길을 갈 수가 없는 고로 주말을 이용해서 미리 장인 장모님을 뵙고 오려고….

이번에는 연기 땅을 거칠 일과 일요일에 금산을 가야 할 일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어서 더욱 잘된 일이었지만, 해마다 장인 장모님의 생신 때는 바로 앞의 주말에 꼭꼭 공주 처가를 다녀오곤 했지요.

일요일 오전에는 금산 땅에 몸을 놓을 수가 있었습니다. 천주교 대전교구 금산교회의 '새 성전 축성 봉헌 미사'에 참례하고 축하연에도 참석했던 거지요.

그런데 어제 공주에서 금산으로 가는 동안 내 차 안에서는 특별한 일이 있었습니다. 운전을 하면서 올해 중3인 딸아이와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녀석에게 '색깔론'에 관해서 '열강'을 했으니까요.


이번의 '색깔론' 강의는 내가 먼저 꺼낸 것도 아니고, 하고 싶어 한 것도 아닙니다. 요즘 주말마다 벌어지는 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 때문에 촉발된 일이었지요. 아이들은 전날인 토요일 오후에 청주에서 있은 충북 경선 상황을 훤히 알고 있었고, 일요일 오후에 있게 될 전남 경선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한나라당 경선 상황에 관해서도 아이들 사이에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더니, 아들녀석이 갑자기 내게 "아빠, 색깔론이 뭐예요?"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색깔론에 관해서는 이미 며칠 전에 딸아이에게 일차 강의를 했지만, 딸아이도 다시 듣고 싶은 눈치였습니다.


"색깔론에 관해서 얘기를 하자면 상당히 길게 설명을 해야 하는데, 끝까지 진지하게 들을 자신 있니?"
나의 이런 조건 제시를 아들녀석은 진지한 표정으로 접수를 하더군요. 너무 어렵지 않게 해 달라는 주문을 달면서….

초등학교 6학년 녀석이 색깔론의 정체에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이 나는 반갑기도 하고 조금은 대견스럽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어린아이들에게까지 색깔론의 정체를 설명해줘야만 하는 내 처지가 한심하고 처량하게도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남북 분단 상황이 계속되는 한 색깔론이 계속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암울한 생각이 드는 가운데서도, 분단 상황과 상관없이 색깔론은 이제 위력이나 소용 가치가 거의 소멸되고 있다는 확신으로부터 나 자신이 고무되는 듯한 기분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좀더 확실히 하기 위해서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색깔론의 무익함을 잘 일깨워줘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고….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게끔 최대한 쉬운 말로 마르크와 엥겔스를 말했고, 제정 러시아의 상황을 얘기했고, 레닌과 볼세비키 혁명을 설명했지요. 이쯤에서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의 국기에 대한 설명은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정열과 혁명을 상징하는 붉은 색 바탕에 노동자를 상징하는 망치, 농민을 표징하는 낫, 그리고 통합과 혁명의 성취를 뜻하는 별 하나를 그려넣은 소련의 국기는 적기(赤旗)의 대표격이라는 말을 하니, 녀석은 벌써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색깔론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뜻하는 말이고, 공산 혁명의 원조인 소련의 적기로부터 유래한 말이라는 것을 녀석은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강의를 끝낼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해방 공간에 대한 별도의 설명과 함께 해방 공간 시절의 치열했던 좌·우 이념 대결, 남북 분단의 이유와 6·25전쟁, 수십 년간 이어져온 남북의 대치 상황과 남한 정권들의 최대의 기반이 되었던 반공의 실상을 얘기하다보니 1991년 독일 통일 이후 가속화된 동구권 국가들의 공산주의 체제 붕괴와 소련의 해체까지 이야기를 하게 되더군요.

소련의 해체, 동구권 국가들의 공산주의 체제 붕괴 이후에도 계속 정권이 유지되고 있는 북한의 특수한 상황도 얘기를 했지요. 철저한 국민 억압과 통제만으로는 정권의 유지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극성과 맹신이 주요 특성 중의 하나인 우리 민족성을 교묘히 이용하여 주체사상과 김일성 신격화까지 획책하면서 어렵게 체제를 이어오고 있는 북한의 실상을 이야기할 때는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의 참상을 다시금 가슴 아파해야 했지요.

소련의 해체와 동구권 국가들의 공산주의 체제 붕괴를 보고 그것을 곧바로 서방 자본주의의 승리로만 해석하면서, 그리고 북한 주민들의 참상을 전해 들으며 가슴 아파하기보다 북한 정권이 금방 붕괴될 것으로 믿고 흡수통일만을 고집하며 열창하는 남한 내 수구 세력들의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는 진부 고루한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얘기를 했지요.

시간은 충분했고 아이들이 열심히 들어주어서, 그리고 옆에서 아내가 거들며 보충 설명을 해주기도 해서 나는 내친 김에 우리나라의 뒤틀린 현대사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이비 독립운동가 이승만과 황군의 아들 박정희를 얘기했고, 일제를 도와 민족을 탄압했던 친일 세력이 재빨리 반공과 친미 사대주의를 극대화시키고 기득권의 견고한 틀 안에서 오늘날까지 권력과 영화를 누려오며 민족정기를 처참하게 훼손해온 사실들을 일목요연하게 설명을 해주었지요.

그리고 친일 반공 친미 사대주의가 똘똘 뭉친 강고한 기득권의 틀 안에서 민족정기를 훼손하고 있는 수구 세력의 중심에 <조선일보>가 있음을 자세히 설명했지요. 더 나아가 '안티 조선'과 언론개혁 운동의 동기와 의의,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주자인 노무현 씨와 족벌 언론들과의 대치 상황, '조·중·동' 족벌 언론들이 노무현을 죽이려고 혈안이 된 상태로 광분을 하고 있는데도 전혀 효과가 나지 않는 이유까지 정말 재미있게 설명을 했지요.

그러다 보니 금산에 금세 도착을 하더군요. 공주에서 대전 유성까지의 길도 무난하고, 유성에서 잠시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대전남부순환도로로 길을 바꾸고, 중간에서 무주를 거쳐 함양까지 뻗는 고속도로로 또 한번 길을 바꾸었는데, 논스톱 길이 정말 좋더군요. 그 덕분도 크지만, 아이들에게 열강을 한 덕분에 1시간 20분쯤 소요된 길이 정말 수월했습니다.

초등학교 아들녀석이야 아빠의 모든 얘기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할 테지만 그래도 열심히 듣는 표정이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인 딸아이는 동생보다 이해 범위가 훨씬 넓어서인지 아빠의 얘기를 재미있게 듣는 눈치였습니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보다는 육성으로 하는 열강이 훨씬 재미있을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요. 적당히 원색적인 표현도 써가면서, 여러 가지 예를 들어가면서, 이 글보다 한결 강건하고 유려하게, 청산유수같이 말을 하니 아내는 감탄하는 표정이기도 했습니다. (자화자찬이 너무 진했나…?)

나는 평소 내 아이들과 대화하기를 즐겨합니다. 승합차로 가족 나들이를 할 때는 더욱 좋은 기회지요. 어제 공주에서 금산으로 가는 길에서 아이들에게 들려 준 열강은 정말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어제의 그 일을 꼭 기록을 하고 싶었습니다.

내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관점과 논법을 과도하게 주입시켜 세뇌시킬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대한 아비의 가치관과 신념을 잘 설명해줄 필요는 느낍니다. 말보다는 삶의 모습으로 그것을 설명하고 이해시켜주어야 한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기회가 되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설명해주는 일도 피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아이들이 자라면 자연스럽게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얻게 되고 그 속에서 좀더 확실한 가치관을 갖게 될 터이지만, 그것의 기초는 아버지의 영향에 따라 많이 좌우될 수 있다고 봅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생각할 줄 알고 고뇌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랍니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고민하는 소크라테스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위해서 어렸을 적부터 깊이 생각하는 법, 옳고 그름을 따지는 법을 잘 가르치고 싶습니다. 비판정신의 싹을 키워주는 일은 민주 시민의 소양을 길러주는 일이라는 신념을 접고 싶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아들녀석에게 색깔론의 정체와 무익함을 이야기하다니, 너무 이르지 않느냐고요? 글쎄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내 아이들은 벌써부터 내게 그것을 묻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질문에 아비로서 성실하게 답변을 해주는 건 옳은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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