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의 77회 생신을 맞으며

지요하의 <참된 세상 꿈꾸기>

등록 2002.04.17 08:36수정 2002.04.17 10:31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은 공주시 신관동에서 사시는 내 장모님의 77회 생신날입니다.
지난 1995년 장모님의 칠순과 장인 장모님의 '금혼'을 기념하여 자식들이 모두 모여 잔치를 해 드렸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때가 벌써 7년 전이라니! 다시 한번 세월 빠름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군요.


내가 살고 있는 태안에서 공주는 꽤 먼 거리이니, 주중인 오늘은 그저 집에 앉아서 전화 인사나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과 관련하여 이미 지난 주말에 가족과 함께 공주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왔으니 그런 쪽으로는 마음이 불편하지 않습니다.

나는 해마다 장인 장모님의 생신 때는 바로 앞의 주말에 가족과 함께 처가를 다녀오곤 했습니다. 전에는 설과 추석 명절에도 다녀오곤 했지만 늘어나는 나이에다가 도로 사정이 너무도 힘들어서 이삼 년 전부터는 포기하고 말았지요. 그러나 두 분의 생신 때는 꼭꼭 처가를 다녀오곤 한답니다.

사위도 자식이니 내 나름대로 자식 노릇을 잘하려는 뜻이기도 하지만, 둘째 사위인 내가 맏사위 노릇을 해야 하는 어떤 특수한 사정도 거기에는 결부되어 있지요.

그리고, 해마다 돌아오는 장인 장모님의 생신 때 용돈이나 부쳐 드려도 될 것을 매번 바로 앞의 주말에 먼길을 다녀오곤 하는 것은, 노인네들이 따로 사시기 때문이랍니다. 따로 사실뿐만 아니라 연세 90이 훨씬 넘으신 당신들의 어머니를 모시고 사시니….

장모님은 오랫동안 관절염을 앓아오신 데다가 당뇨와 고혈압 환자이기도 해서, 오랜 세월 복용해 온 약해(藥害)도 겹친 탓인지 기동이 불편하신 형편이라, 올해 연세 73세이신 장인 어른님의 고생이 여간이 아니시랍니다. 96세이신 어머니를 챙겨 드리고 아내 수발도 하며 손수 살림을 하시려니 얼마나 고생이 크시겠습니까?

게다가 고정적으로 하시는 일도 있지요. 사촌 동생 되시는 분이 공주에서 건축 사업을 하며 공주 시내 요지에 큰 건물을 가지고 있는데, 그 건물의 관리를 벌써 20년 넘게 사촌 형님께 맡기고 있는 거지요. 연세 70이 훨씬 넘으신 분께 계속 건물 관리를 맡기며 매월 50만 원씩의 보수를 주시니 생각하면 참 고마운 일이지요.


내 장인께서는 월 50만 원의 고정 수입으로 생활을 하시는데, 노인네들 세 식구에 돈이 얼마나 필요하랴 싶겠지만, 장모님 병원비며 약값이며, 노인네에게도 적잖이 찾아오는 애경사 부조 부담이며…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지요. 그런 사정을 잘 아는지라 출가외인 처지인 딸들이 한결같이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고….

나는 이번에도 장인 장모님께 10만 원씩을 드리고 할머니께도 용돈을 좀 드렸는데, 매년 장인 장모님의 생신과 설 명절과 추석 때는 거르지 않고 해 온 일이지요. 전에 한 몇 년 동안은 매월 1일에 10만 원씩을 부쳐 드렸는데, 언걸 먹은 죄로 인한 매달의 빚잔치 부담이 하도 커서 언젠가부터 슬그머니 입을 씻고 말았지요.


지난 1994년에 만들어서 계속 격월 모임을 해온 '6남매 친목회'도 작년 초부터 슬그머니 모임을 하지 않게 되어서 생각하면 장인 장모님께 여간 죄송스럽지 않습니다. 따로 사시는 노인네들께 위안을 드리기 위해서 만든 6남매 친목회의 연락책을 맡아 무려 55번이나 소식지를 발행하며 줄곧 앞장서 모임을 이끌었던 내가 불성실 기류를 감지하게 되면서 스스로 한계를 느낀 탓에 슬며시 손을 놓고 보니….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한 일입니다. 6남매 모임과 관련하여 볼 때,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 하더라도 딸은 출가외인이요 사위는 백년 손님인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 처가에 신경 쓰고 시간 쓰는 사위들에 대해서 가장 고마워해야 할 사람들은 아들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6남매 모임이 흐지부지되는 상황을 가장 섭섭해하며 다시 모임을 추스르려고 소매 걷어붙이고 나서야 할 쪽은 아들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6남매 모임 안에 흐르는 불성실 기류의 성격으로부터 섭섭함을 느끼고 한계를 절감하게 된 것도 실은 그런 이상한 주객 전도 현상과 관련이 있는 거지요.

아무튼 처가에 가서 장인 장모님을 뵐 때마다 나로서는 더욱 안타깝고 난감하기만 합니다. 언제까지 저렇게 사셔야 하나 싶고, 무슨 확실한 대책이 필요할 것도 같은데, 강도 높게 문제 제기를 하고 싶어도 사위 처지에서 너무 나서는 게 아닌가 싶은 데다가 자칫하면 이상한 오해를 살 것도 같고…. 이래저래 더욱 난감하기만 한 실정입니다.

아침에 처가로 전화를 걸어 장모님께 축하 인사를 드렸더니, 사위 전화를 고마워하시면서도 별로 기쁜 기색이 아니시더군요. 아들 며느리들과 올 형편이 되는 딸들이 모여 생신 상을 푸짐하게 차려 드리기는 했지만, 그게 뭐 그리 대수냐는 말씀도 하시는 것 같고….

장모님의 77회 생신 날, 사위 노릇을 제법 한답시고 아침에 문안 전화를 드린 후로 내 기분은 더욱 쾌치 못합니다. 사위가 걱정을 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닌데, 뭔가 자꾸만 걱정이 되고, 정말 편치 못한 심사인 것 같습니다.

내나 남이나 살아 계신 부모를 두고 자식을 기르며 사는 사람들은 자신도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자식들에게 효도의 본을 보여 주려고 노력하는 것도 참으로 필요한 일일 듯싶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4. 4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5. 5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