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에 대해 갖는 미안한 마음

청소년 시절의 아련하면서도 기분 좋은 추억 하나

등록 2002.05.20 06:34수정 2002.05.20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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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말 달구지를 얻어 촌락의 한길가로 가서 아버지가 사서 내놓으신 곡물을 실어 정미소로 나르는 일을 하곤 했다. 그곳에 도착할 때마다, 그리고 달구지에 짐을 실을 때마다 짐의 양을 살펴보곤 하던 말의 두려움을 머금은 듯한 눈빛을 잊지 못한다.


나는 늘 말에게 미안한 마음과 안쓰러운 감정을 갖곤 했다. 언덕길에서는 달구지의 뒤에 붙어 힘껏 밀어주곤 했다. 그리고 굴곡 없는 평지를 말이 무난하게 달구지를 끌고 갈 때는 옆에 붙어 서서 말의 몸에 붙는 파리를 쫓거나 잡아주기도 하고, 잔등이나 목을 토닥거려 격려를 해주곤 했다.

그때마다 말은 내게 고마운 표정을 짓곤 했다. 말의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그때 말에게도 고마워할 줄 아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곧잘 호통을 치고 채찍을 휘두르는 주인보다 나를 더 좋아한다는 것도….

자동차를 운전하고 살면서 가끔은 청소년 시절에 접했던 말의 마음을 떠올리곤 한다. 그것은 말에 대해 가졌던 내 마음을 기억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면 자동차한테도 마음이 있을까 하는 공연한 의문이 떠오르기도 한다. 물론 우스운 생각임을 안다. 자동차의 마음이야 분명치 않지만, 자동차에 대해 갖는 내 마음이 비교적 선명함으로 그런 마음으로 보면 자동차에게도 마음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나는 청소년 시절의 그 말을 떠올릴 때는 내 자동차도 과격하지 않고 부드럽게, 늘 고마워하며 격려하는 자세로 대해주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곤 한다.

내가 내 자동차에 대해 갖는 마음 중에서 가장 뚜렷한 것은 미안한 감정이다. 승합차만을 고수하며 지금 세 번째 차를 가지고 있는 내가 첫 번째로 구입했던 차는 9인승 중고 승합차였다. 비록 중고차일망정 나는 그 차를 알뜰히 잘 아껴주었다. 주인이 세 번이나 바뀐 그 차의 고르지 못한 팔자를 동정하는 마음도 가졌다.

그런데 1991년 1월 4일 공주 처가에 갔다가 돌아오던 눈길에서 그만 사고를 내고 말았다. 눈이 내리면서 녹는 질퍽질퍽한 길을 과속으로 달린 것이 원인이었다. 차가 중심을 잃고 미끄러지면서 가로수를 들이받더니 옆으로 누워버리고 만 것이었다.


다행히 바짝 뒤따라오던 차도 없었고 다친 사람도 없었지만, 차는 폐차 처분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때 나는 차에게 여간 미안한 마음이 아니었다. 폐차장으로 끌려가는 차를 보자니 정말 한없이 미안해지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더욱 묘한 것은, 차에 대해서 갖는 내 미안한 감정이 나 자신에게도 홀연 신비스럽게 느껴지는―또 한 겹 신비스런 마음이었다.

두 번째로 가졌던 차는 12인승에다가 중고가 아닌 새 차였다. 10년을 채우고 재작년 여름에 폐차를 했다. 자연 수명을 다한 셈이니 크게 미안한 마음은 아니었지만, 정비공장 직원 한 사람이 수리를 해서 쓰고 싶어했다가 포기를 했으리만큼 차체의 바닥이 온통 썩었던 것은 미안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집에서 60리 떨어진 서산시 해미면의 천주교 순교 성지에 일주일마다 가서 좋은 물을 길어다가 여러 이웃들에게 나누어 드리는 일을 오래 한 탓이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차도 큰 임무 중의 하나가 해미 성지의 물을 나르는 일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차 바닥으로 물기가 스며들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바닥이 썩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차에게 미안해지는 심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월간 <자동차생활> 금년 5월 호에 게재된 글임을 밝힙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월간 <자동차생활> 금년 5월 호에 게재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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