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님들에 대한 추억

<참된 세상 꿈꾸기>

등록 2002.05.15 05:22수정 2002.05.18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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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교감으로 정년 퇴임하신 초등학교 시절의 은사님 두 분을 아내와 함께 찾아뵌 일이 있었다. 정년 퇴임하신 것을 축하드리고 갑자기 적적해진 생활을 위로해 드릴 겸 찾아 뵙기로 한 것이었다.


한 분은 3학년 때 담임이셨는데 그 선생님을 생각하면 호되게 종아리를 맞았던 기억부터 냉큼 떠오른다. 어른이 되어서도 한동안은 썩 유쾌한 기억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그저 고마운 일로만 생각된다.

그날도 선생님은 숙제 검사를 하셨고, 숙제를 해오지 않은 아이들은 종아리를 맞았다. 선생님은 으레 3대씩을 때렸는데, 한 대는 선생님 매고, 한 대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때리는 매고, 또 한 대는 어머니를 대신해서 때리는 매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곱배기로 매를 맞아야 했다. 누나가 대신 해준 숙제장을 슬쩍 펴보였다가 들킨 탓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선생님을 속이려고 한 것에서 노여움이 더욱 크셨던 모양이었다.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 아이들을 다 내보내고 나서 그때까지도 울고 있는 나를 불러 무슨 말인가를 했다. 3학년 때 일이라서 온전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사람은 정직해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셨던 것 같다. 절대로 거짓말하는 사람, 남을 속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타이름이셨던 것으로 생각된다.

6학년 때 담임이셨던 선생님으로부터 공부 시간에 들었던 말은 좀더 명료하게 기억된다. 어머니 아버지를 생각해서 공부 시간에 딴 짓 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우리를 기르고 공부시키기 위해 매일같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들일을 하거나 장사를 하며 고생하시는 부모님의 은혜에 반드시 보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착한 사람이 되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은 상당히 추상적인 말이었지만, 착하다는 것과 훌륭하다는 것이 거의 같은 뜻으로 이해되었던 것 같다.

나는 어린 가슴에도 선생님이 '부모님의 고생'을 운운할 때마다 가슴이 찡하곤 했다. 거의가 가난했던 시절이라 부모님의 고생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고 느끼는 사항이었다.


그때 우리가 집에서 가장 흔하게 듣는 말은 "학교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저 노상 듣는 말이라 그때는 별 감흥이 없었지만, 지금 되새겨보면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공부도 잘하고 바른 사람도 될 수 있다는 두 가지의 뜻이 함축된 말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우리의 부모님들은 선생님에게 자녀의 교육을 전적으로 맡겼다. 자식이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바른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또 믿었다.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충만해서 집에서 자녀를 꾸중할 때도 "너 또 그러면 선생님께 이를 티어"라는 말도 하곤 했다.

선생님은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에게 공부뿐만 아니라 인격도 가르치고 책임지는 존재여야 한다. 그런데 왜 지금은 스승의 존재가 어려운 것일까? 그 이유를 짚어보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나는 정년 퇴임하신 두 분 은사님을 찾아뵈면서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스승이 되기를 원하며 학생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당당하고 열정적으로 교단을 지켜오신 선생님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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