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에 생각해 보는 참 아버지에 대한 소망

등록 2002.05.12 07:46수정 2002.05.16 02:55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이 마흔에 결혼하여 두 아이를 얻었습니다. 첫애는 딸아이로서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되었고, 둘째 놈은 사내아이로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습니다. 내 나이 벌써 오십대 중반이지만 아직 아이들이 어리니 그만큼 젊게 사는 것도 같습니다. 내년에 고등학생이 될 딸아이가 혹 외지 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면, 한 놈은 좀더 일찍 둥지를 떠나 사는 셈이 되겠지만, 아직은 두 놈을 보금자리에서 키우는 재미가 여간 실팍하지 않답니다. 아이들 덕에 아직은 내가 젊게 살고 있음을 노상 실감하곤 하지요.


한 대목을 마치고 읽어보니, 한 대목의 문장 안에 '아직'이라는 단어가 무려 세 번이나 들어갔군요. 그러므로 잘된 문장은 아닐 터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군요. 이 '아직'이라는 단어 속에는 유수같고 화살 같은 세월에 대한 야속함 같은 것이 농축되어 있지 싶습니다.

나는 특히 큰아이가 올해 중3이 되면서부터 지레 이상한 절박감과 상실감 같은 것을 가슴에 안게 되었답니다. 딸아이가 아직 둥지 안에 머물고 있을 때 좀더 많은 시간을 같이 하고 싶은 마음도 분명했지요. 더욱이 올 봄에는 일요일마다 거의 매번 '가족 나들이'를 하곤 했는데, 이것 역시 '아직'이라는 말과 관련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일요일마다(오전에는 성당에 가서 미사를 지내고 오후에) 하는 가족 나들이를 온 가족이 여간 즐거워하지 않는답니다. 내년이면 팔순이 되실 어머니를 모시고, 가까이 살고 있는 동생 가족과 함께 하는 나들이라 더욱 즐겁습니다. 더욱이 내가 12인승 승합차를 가지고 있어서 아홉 명 가족이 모두 함께 움직일 수 있으므로 이동시의 즐거움도 각별하지 않을 수 없지요.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충청남도 태안이라는 동네입니다. 태안반도의 한복판으로 국립해안공원을 끼고 있는 곳이지요. 가까운 거리 안에 가볼 만한 곳이 참으로 많답니다. 고장의 여러 명승지와 아직은 은밀한 기운이 남아 있는 풍광 좋은 곳들을 찾아다니며 자연을 즐기는 것은 절로 행복감을 갖게 하지요.

또한 그것은 가족들 간에 많은 대화를 유도해 줍니다. 자연 속에서 자연을 즐기며 아이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에서도 나는 행복을 느끼곤 합니다.

나이 먹어 결혼하고 아이들을 얻은 사람답게 나는 아버지로서의 책무를 더 많이 생각했지요. 아내는 직장에 매인 몸이고 나는 자유직업인이어서, 아이들을 키우고 돌보는 일에는 내 공력이 더 많이 요구되었지요. 나는 아이들이 요람 위에서 눈망울을 굴릴 때부터 아버지의 책 읽는 모습을 보여 주고자 했습니다. 아이들의 뇌리에 아주 일찌감치 아버지의 책 읽는 모습과 기도하는 모습이 확실한 영상으로 자리잡히게 되기를 소망했지요.

그리고 생활 공간 안에서 책이 아이들의 눈에 가장 익숙한 사물이 되기를 바랐고, 아이들이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들의 등에 찍힌 글자들을 가지고 숫자와 글자들을 스스로 익히는 현상에서 작은 기쁨을 누리기도 했지요.


나는 내 행동으로, 삶의 모습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자 했습니다. 물론 말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는 언어 수단도 참으로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언행 일치'라는 것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에 대한 아비로서의 진실한 사랑에는 사실 백 마디 말보다 한가지 행동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나이 먹은 아버지답게 나는 내 아이들에게 무엇이 되느냐보다는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함을 가르쳐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내 아이들이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고민하는 소크라테스가 되기를 바랄 것이고, 덧없는 물질적 가치에 얽매어 살기보다는 정신적 가치를 쫓아 사는 사람으로 기르고픈 소망을 결코 버리지 않을 겁니다.

자신의 뜻과 아무 상관없이 태어난 삶일지라도 거기에는 신의 뜻이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삶이 신으로부터 '초대받은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 그리하여 진정으로 초대받은 것일 수 있는 삶을 살게 하는 것―그것이야말로 아비로서의 가장 고귀하고도 중요한 책무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오늘은 우리 교회(천주교 대전교구 태안교회)가 '야외미사'를 지내는 날입니다. 장소는 몽산포 해변.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모두 야외미사에 참례하는 우리 가족은 또 한번 가족 나들이를 하는 셈일 겁니다.


나는 오늘도 몽산포의 송림 속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쏘이며 내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체온을 실팍하게 나누어 줄 생각입니다. 조카아이들에게도, 어머니와 아내와 동생 부부에게도 다시 한번 '가족 사랑'의 실체를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 뜨거운 가족 사랑의 실체 속에서 한 가정의 가장, 한 집안의 맏이로서의 내 책무는 좀더 오롯해 질 것임을 믿으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4. 4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5. 5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