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생명력의 향연 속에서

<참된 세상 꿈꾸기> 안면도 세계꽃박람회 현장 르포

등록 2002.05.09 11:32수정 2002.05.09 12:53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꽃은 아름다움의 상징이자 표상이다. 꽃이라는 명사에는 아름다움이라는 형용사가 자연적으로 따라붙는다. 모양, 색깔, 향기, 세 가지 요소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꽃은 그리하여 조화의 상징이기도 하고, 젊음·중심·절정 따위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아름답지 않은 꽃이 있을까? 세상에는 검은 빛깔이 흉흉한 느낌을 주는 꽃도 있고, 묘하게 악취를 풍기는 꽃도 있다고 들었지만, 우리가 손쉽게 접하고 사는 세상의 거의 모든 꽃들은 누구도 싫어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실체이자 극치다.


그런데 꽃은 왜 피어나는 것일까? 누구나 아는 것이지만 꽃은 식물의 생식기이다. 그 식물의 발정 상태가, 다시 말해 발정기를 맞은 식물의 생식기가 꽃으로 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꽃은 번식을 위한 생명운동의 최고 절정의 모습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꽃을 통해서도 신(조물주)의 존재를 느끼는 이가 있을 것이다. 아름다움의 극치인 꽃이 실은 식물의 발정 ―생명운동의 중요한 한 과정이라는 사실에서 오묘한 신의 설계를 느끼며 무한히 감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꽃은 이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사물로서, 조물주가 세상을 지배하는 인간에게 베푸신 가장 좋은 선물이기도 할 터이다. 꽃을 보며 단순히 아름다움만을 느끼고 즐기는 사람도 많겠지만, 꽃을 통해서 저 피안(彼岸)의 정토(淨土)에까지 연결될 수 있는 상념과 사유의 맥을 얻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1일 아침, 비온 뒤의 상쾌한 기온을 체감하며 안면도 꽃박람회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전국 방방곡곡, 세계 만방 모든 꽃들의 향연을 직접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게 된 사실이 참으로 신선한 설렘을 갖게 했다. 더불어 온갖 식물의 발정 상태―그 생식기들의 아름다운 개화(開花)앞에서 필자는 어떤 몸가짐을 해야 할지 조금은 막연한 심정이기도 하면서 절로 숙연해지는 것을 느껴야 했다.

박람회장 정문을 통과하면서 맨 먼저 접한 것은 안면도 세계꽃박람회의 마스코트인 '꽃보미'의 우람하면서도 정다운 모습이었다. 충청남도의 마스코트인 '귀도리'를 세계 속의 '꽃보미'로 그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거북을 조형의 기본으로 하여 만들었다고 했다.

건강하고 친근감이 있는 어린 꽃보미의 표정을 통해 행사의 이미지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표현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개최지인 안면도의 자연 환경과 어울리는 동물이 거북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도….

마스코트 꽃보미의 키는 자그마치 10미터. 머리 부분에만 1만 송이의 꽃이 투입되었다니 전체를 놓고 보면 수만 송이의 꽃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눈으로 대략 어림잡아보아도 10가지 이상의 꽃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필자는 꽃보미의 모습에서도 '조화'의 실체를 느낄 수 있었다. 열 가지 이상의 꽃들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에서 조화의 극치를…. 아울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조화가 절대로 필요함을….

마스코트 꽃보미의 모습이 안면도 세계꽃박람회의 성격을 잘 말해 줄 거라는 느낌을 키우며 <꽃과 새문명관> 관람을 시작으로 꽃지 주전시장 안의 여덞 개 전시관을 모두 찬찬히 둘러보았다. 전시관 안에서 느끼고 체감한 것들을 제한된 지면에 고루 담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지만, 한편으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몽롱한 상태였다는 말도 가능할 것 같다.

전시관 사이사이에 조성해 놓은 갖가지 이름의 공간들은 또 얼마나 멋지게 조화미를 발휘하는지, 거의 북새통을 이루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별천지에 와 있는 느낌은 변함이 없었다. 몇 사람을 붙잡고 소감을 물어보았다. 오는 길이 고생스러웠고, 가는 길도 고생스러울 테지만, 참으로 기쁘고 보람을 만끽하는 기분이라고들 했다.

모든 전시관들의 관람을 마치고, 조성이 잘된 휴식 공간에서 잠시 바닷바람을 쏘이면서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인간의 창의와 지혜의 세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꽃박람회를 유치하고, 박람회장을 설계하고 꾸미고 구색을 갖추어놓은 사람들, 운영을 책임 맡은 사람들의 창의력과 선한 의지, 그리고 그 노고에 한량없이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인간이 꽃과 어떻게 친화를 이루며 '꽃의 문화'를 발달시켜 왔는지를 느끼게 해주는 <꽃과 새문명관>, 우리 나라 꽃의 아름다움과 다양함을 알게 해주는 <무궁화관>, 산과 들의 후미진 곳에서 피어나는 숱한 '이름 모를' 꽃들의 재미로운 이름들 앞에서 왠지 숙연한 느낌을 갖게도 하는 <야생화관>, 꽃을 갖가지 음식에도 활용해 온 우리 조상들의 슬기를 깨닫게도 하는 <꽃음식관>에서 얻은 감흥들은 내 가슴속에서 오래 감미로운 여운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섭섭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것도 있었다. 31개국 85개 단체가 참여했다는 <코스모스관>에서는 우리 한글의 망실과 학대 현상을 접해야 했다. 31개국 나라 이름과 단체 이름 표기가 모조리 철저히 영문으로만 되어 있는 것이었다. 여기에서도 우리 모국어와 문화에 대한 자존심의 상실을 읽는다면 지나친 독선일까.


5천 원 짜리 국밥이 일반 음식점의 국밥에 비해 많이 부실한 점, 한 회사가 독점적으로 판매하고 있는 우유 제품과 라면이 너무 비싼 점, 주차장에서 차를 빼내는 데만 1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점, 그리고 유채꽃밭의 파손 상태 등은 꼭 지적하고 싶은 사항들이다.

유채꽃밭에는 꽃밭으로 들어가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통로가 있는데도 왜 굳이 멋대로 침입을 해서 보기 흉한 꼴을 만들어내는 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너무 황홀해서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그냥 미치고 싶었어요"라고 말한 어느 중년 여인의 행동은 애교로 보아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 말짱한 정신으로 유채꽃들을 밝고 들어간다는 건 지나친 몰상식이 아닌가.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들 속에서 공중 도덕의 망실 현상을 보자니 정신적 피로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오고 가는 고생을 너끈히 보상해 줄 정도로 큰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는 어느 광주 시민의 말에 필자는 크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에는 취재 목적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관람 목적만을 안고 다시 올 것을 기약하면서 (가까이 살고 있는 이점을 살려 저녁 무렵의 관람을 생각하면서) 필자는 즐겁게 안면도 꽃지를 떠날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5월 5일자 충남남도 <도정신문>에 게재된 글에 약간의 보충을 가한 글임을 밝힙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5월 5일자 충남남도 <도정신문>에 게재된 글에 약간의 보충을 가한 글임을 밝힙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4. 4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5. 5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