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난 찰밥은 싫은데..."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39>찰밥

등록 2003.01.07 10:41수정 2003.01.0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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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부산 태종대에서 바다를 향해 힘껏 돌 팔매질을 하고 있는 빛나(왼쪽)와 푸름이

부산 태종대에서 바다를 향해 힘껏 돌 팔매질을 하고 있는 빛나(왼쪽)와 푸름이 ⓒ 이종찬

"푸름아, 빛나야! 빨랑 일어나!"
"왜에에~"
"아~항~"
"소한 집에 놀러온 대한이 얼어죽었대."
"뭐어어?"
"엄마! 그게 무슨 소리야?"


깊은 잠에 빠졌던 귀여운 두 딸 푸름이와 빛나가 아내의 재미있는 말에 이내 놀란 토끼눈을 뜨면서 부시시 일어난다. 내 딸 내 핏줄이라서 그런지 푸름이와 빛나의 여러 가지 표정과 행동들은 언제 보아도 늘 귀엽기만하다. 특히 오늘 아침에 바라보는 두 딸의 모습은 더욱 귀엽다. 잠에서 마악 깨어나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한 뒤 이내 놀란 토끼눈을 뜨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모습하며...

"얼른 씻고 와!"
"왜? 어디 가?"
"엄마! 왜?"
"오늘은 아빠 생일이잖아. 그러니까 빨랑 씻고 와서 아빠랑 맛있는 찰밥하고 미역국 먹어야지."
"아~ 난 찰밥은 정말 싫은데..."
"아싸~"

큰딸 푸름이는 찰밥뿐만 아니라 잡곡밥 그 자체를 싫어했다. 특히 팥이 들어간 붉은 찰밥을 유난히 싫어했다. 또한 평소 식사를 할 때에도 가리는 것이 무척 많았다. 미역국뿐만 아니라 다른 국을 먹을 때에도 건더기는 모두 건져내고 국물만 먹었다. 내가 음식은 골고루 먹어야 하는 여러 가지 설명을 아무리 늘어놓아도 푸름이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아빠! 그건 나도 알아!"
"근데?"
"그래도 먹기가 싫은 걸 어떡해."
"좋은 약은 입에 쓴 거야."
"그럼 입에 쓰지 않은 것은 모두 나쁜 것이겠네."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편식을 하지 말란 뜻이지, 하고 말하려고 그랬지? 아빠!"

큰딸 푸름이가 하얀 쌀밥만 좋아하고 편식을 하는 것에 비해 작은 딸 빛나는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빛나는 특히 찰밥을 좋아했다. 아싸~ 라고 말 할 정도로. 성격도 그랬다. 일기 하나를 쓰는 것만 보아도 푸름이는 꼼꼼하게 일기장을 모두 채웠고 논리가 정연했다. 하지만 빛나는 칸 채우기에 급급했던지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어떤 때 내가 그런 부분을 지적을 하면 빛나는 금세 '아빠아~ 오늘부터 진짜 잘 쓸게'라며 애교로 넘겼다.

아버지께~ 정말 사랑해요♥


아빠에게-♥ ^^
아빠! 안녕하세요?
저 빛나예요*^^*
아빠! 생신 축하드려요!!^^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아빠의 생신을 축하합니다!!^^
생일케익이 조금 작더라도 많이 드세요 아빠!!^^

(빛나의 첫 번째 편지)


지난 월요일은 내가 태어난 날이다. 두 딸들은 생일을 양력과 음력 모두 다 찾아먹지만 나는 늘 생일을 음력으로 찾아먹는다. 그날 우리 가족들은 정말 오랜만에 모두 한 상에 마주앉아 찰밥과 미역국을 먹었다. 일년 중 가족모임이 제법 많이 있었지만 그동안 아내가 있어야 할 그 자리는 늘 비어 있었다. 왜냐하면 백화점 매장에 나가는 아내는 일요일에도 쉬지 못하는 것은 물론 매일 같이 밤 9시 30분이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아빠! 자~"
"그게 뭔데?"
"그냥 읽어봐."
"아빠! 미안해. 날씨가 너무도 추워서 밖에 나갈 수가 없어서 아빠 생일선물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어."
"그래, 괜찮아. 그런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선물을 준거나 마찬가지야. 그래, 모두 고마워."

그날, 붉은 찰밥과 미역국이 놓인 생일상 앞에서 푸름이는 몹시 미안한 얼굴로 내 눈치를 살폈다. 빛나 또한 평소와는 달리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닌 듯했다. 빛나 또한 선물을 준비하지 못하고 편지로 떼우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옳거니, 싶어서 푸름이와 빛나를 바라보며 오늘은 아빠 생일날이니까 아빠의 생일상에 올라온 찰밥과 미역국을 잘 먹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때서야 푸름이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팥이 섞인 찰밥과 미역국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먹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찰밥을 좋아했던 빛나는 더욱 신이 났던 모양이었다. 빛나는 또 다시 아싸~ 하면서 찰밥을 푹푹 떠서 입에 넣더니 이내 후루룩 후루룩 소리까지 내면서 미역국을 맛있게 먹었다.

빛나의 편지는 두 통이었다. 손바닥만한 예쁜 편지봉투 속에 담긴 빛나의 편지 곳곳에는 예쁜 하트와 웃음표가 수없이 붙어 있었다. 빛나의 편지를 다 읽은 나는 빛나를 바라보며 그 작은 생일케이크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빛나는 첫 편지 마지막 구절 앞에 있는 하트 두 개를 가리키며 씨익 웃었다. 그 작은 하트 속에는 아주 작은 생일케이크가 그려져 있었던 것이었다.

아빠에게 ^^

아빠! 저 빛나예요. ^^
아빠에게 죄송한 마음 들어요.vv
아빠의 생신인데 아무 것도 못해주고...ㅠㅠ
아빠! 저 정말 아빠에게 감사드리고 있어요. ^^
아빠는 일요일마다 삼겹살도 해주고, 재미 있는 말도 많이 해주잖아요??
아빠 정말 감사하고 또 죄송해요.vv
아빠에게 생일인데 좋은 선물도 못드리고ㅡ 그냥 이 편지 한 장만 주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만 그래도 이 편지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 ㅠㅠ
아빠! 이제 아빠 일요일 쉬시면요? 저희가 치우고 설거지도 하고 그럴게요. 그렇지 않으면 아빠만 힘들잖아요.vv
아빠는 경주에서 힘들게 일하다가 집에 오시면 쉬지 못하고 아빠가 밥하고 설겆지까지 하잖아요.vv
죄송합니다... 아빠!!
이만 줄이겠습니다...ㅠㅠ
편지지도 몇줄 안 남았네요^^
아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럼 이만♥

(빛나의 두 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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