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어데 금테 두르고 나온답디까

[인터뷰] <오중주>의 연출자 류근혜

등록 2003.01.16 13:13수정 2003.01.16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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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딸 하나만 낳아도 남부럽지 않게 잘 키우지만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이 땅의 여자들은 사상이라고 부를 수 도 없는 병적인 “남아선호증”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 아들을 통해 대를 이어야 한다는 범국민적 강박증은 지식의 높고 낮음, 재산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었다.

a <오중주>의 아버지와 네명의 딸

<오중주>의 아버지와 네명의 딸 ⓒ 로얄씨어터

시집 가 아들 못 낳는 여자는 마땅히 해야 할 것을 못한 죄인이었다. 아들을 낳기 위한 수단이라면 남자의 외도는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아들 못 낳는 여자는 모든 것이 자신의 죄인 양 아픔을 속으로 삭혀야 했다.


아들이 없는 집에서 딸들은 천덕꾸러기일 뿐이다. 특히 어린 나이에 죽어버린 아들이라도 있다면 그 죄는 딸에게 돌아간다. 아들 잡아먹은 딸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평생을 구박과 원망의 표적으로 살게 된다.

유교적 악습이 천착되어 있는 이 땅에 여성이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는 연극이 무대에 올려졌다.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공연중인 <오중주>(로얄씨어터 / 김윤미 작 / 류근혜 연출)는 경상도 안동을 배경으로 남아선호증에 피해 받는 여성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1월 15일 <오중주>를 공연하고 있는 문예회관대극장에서 연출가 류근혜를 만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a 류근혜

류근혜 ⓒ 한상언

- <오중주>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이 작품은 아버지와 딸 그리고 가부장제도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말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가족이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 좋았다가도 금방 상처를 준다. 이 작품은 무의식중에 있는 가족들의 상처를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다.

이 작품은 또한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원죄와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죽음을 앞두고 한 노인이 자기가 살아온 인생이 뿌리부터 생생했었는지, 아니면 줄기를 생각하다보니 뿌리를 잃어버린 것이 아닌지 질문하는 얘기이다."


- 제목이 오중주인데 가족간의 오중주는 불협화음이다?
"아버지의 배다른 딸들이 넷이나 된다. 한 어머니한테 태어났어도 성장하면서 티격태격한다. 엄마가 다 다른 그런 환경에서 자라났을 때 많은 상처들이 작은 부분에서부터 생긴다. 그 상처는 성장을 해서, 30대 50대가 됐을 때도 이어가고 그 다음 대까지도 이어간다. 슬픈 일이다.

이 연극은 하루 동안, 낮 1시에서부터 그 이튿날 9시까지 같이 생활하면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 동안 쌓였던 상처가 아물었다고 믿었는데 2~30년 후까지 이어진다. 반면에 일상적인 코믹함도 묻어있다. 딸 넷과 아버지와의 관계가 불협화음을 내는 것 같으면서도 그것이 인생이 아닌가 생각한다."


- 인생을 연주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가족과의 화합에서도 연주지만 인생 자체가 자기 내면과 외면이 딱 맞아 떨어져야 하는 연주이다. 그런데 우리 인생은 그렇지 못 한 것 같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욕망들이 얼마만큼 충족될 수 있을까? 충족하지 못하면 그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의 불협화음이다.

작품에서는 딸 넷과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불협화음이 될 것이다. 완만한 연주라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하다.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도 어느 순간에 딱 느껴지는 느낌이 있다. 거기서도 좋은 선(善)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선과 악, 인간의 욕망의 갈등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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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언

- 배냇저고리를 태우면서 유령이 사라진다. 그렇지만 가족간의 갈등은 계속 진행되는데.
"인간은 죽음에 다다를 때까지 노력한다. 좀 더 잘 살기위해 노력하고, 좀 더 잘 죽기위해 노력한다. 인간이 가장 막다른 길목에 처했을 때, 이 작품에서는 큰 딸이 자기 딸을 잃었을 때 인연의 마지막 끈까지 다 끊어졌다고 생각하는 장면에서 배냇저고리를 유령들이 다 찢어가듯이 가져간다. 배냇저고리를 통해 갈등이 다 해소되지 않는다.

나약한 인간이 마지막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이 신에 대한 의지이다. 하지만 갈등이 해소되지 않음으로 인간이 과연 신에 대해 구원을 받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 만큼 현대인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작은 것 하나도 놓지 못하다 보니 자기 내면의 의지는 약해지고 신에 대한 의지는 강해질 수밖에 없다. 종교를 믿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뛰어넘기 위한 욕망이다. 그 욕망을 뛰어넘을 수 있는지. 그것은 관객 여러분들의 생각에 달렸다."

- 나무덩굴이 세트를 두르고 있는데?
"무대 세트는 한 집안을 나타낸다. 나무가 타버리면서 노인은 인생을 다 살았을 때 튼튼한 뿌리로 살았는지, 아니면 뿌리는 다 썩었는데 그것을 못 느끼고 있었는지 생각한다.

집 한 채인 세트를 나무덩굴로 이었다. 이것은 우주라고 생각했다. 거대한 우주 안에 외소한 인간을 표현했다. 인간의 힘이라는 것이 보잘 것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세트를 웅장한 느낌이 들도록 만들었다."

- 연기공간이 객석과 많이 떨어져 있는데
"이 작품은 한 가정의 얘기이다. 객석에 아주 가깝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조금 거리감을 두고 관객들이 보셨으면 했다. 관객들이 작품의 딸들과 아버지를 보면 마치 나와 똑같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것을 묻혀서 보기 보다는 한번쯤 그림을 보듯이 떨어져서 객관적 시각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떨지 생각해서 무대에 거리감을 두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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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언

- 여성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들을 만들어 왔는데
"성장할 때 여성이기 때문에 받는 손해나 억울함은 없었다. 그러나 자라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끼게 됐다. 이런 작품을 오히려 나이 들면서 한다.

기억 속에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갔을 때, 가르마를 남자가 타는 방향으로 했다고 교칙에 걸린다고 했다. 그런 우스운 기억이 있다. 나이 들면서 하나 하나 느껴지는 것이 우리 사회가 남성위주의 사회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항상 강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여성이기 때문이다. 나이 들면서 이런 작품들을 선호하게 된다."

- 이 작품을 보지 못한 관객들에게 한마디
"<오중주>는 관객 한분 한분한테 다 해당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극장을 찾아 우리 가족들은 얼마만큼 따뜻하게 살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 가족들이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는가 짧은 시간이나마 되돌아보길 바란다.

그리고 나 같은 인물들이 무대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 아마 관객 여러분 한분 한분이 속해있는 그런 인물이 등장하니까 지루하지 않게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다. 한번 찾아와서 오중주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관람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공연정보
공 연 명 : 오중주
공연기간 : 2003. 1. 15 ~ 1. 19
공연장소 : 문예회관 대극장
문의전화 : 02-358-5449

덧붙이는 글 공연정보
공 연 명 : 오중주
공연기간 : 2003. 1. 15 ~ 1. 19
공연장소 : 문예회관 대극장
문의전화 : 02-358-5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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