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가 와 저래 울어쌌노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44> 까치

등록 2003.01.24 14:15수정 2003.01.24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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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창원의 시조 까치

창원의 시조 까치 ⓒ 창원시

깍! 깍깍깍! 깍깍깍깍!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깍! 깍깍깍! 깍깍깍깍!


우리 마을에는 까치가 무척 많았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이른 새벽마다 늘 까치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났고 하루종일 까치 소리를 들으며 일을 했다. 특히 설날이 다가오는 이맘 때가 되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하늘로 쭉쭉 뻗어 올라간 미루나무 꼭대기에 뱃살 하얀 까치가 앉아 까만 꼬리를 까딱까딱거리며 땡겨울 찬바람을 사정없이 갈랐다.

까치집도 무척 많았다. 마을 곳곳에 전봇대처럼 서있는 미루나무 가지에는 마치 엉긴 전깃줄처럼 얼기설기 지은 까치집이 당연하다는 듯이 덩그러니 매달려 있었다. 어떤 미루나무에는 까치집이 2-3개씩 매달려 있는 곳도 있었다. 또 우리 마을 한가운데 왕 무덤처럼 우뚝 솟은 '똥뫼'(동산)를 푸르게 덮고 있는 소나무에도 까치집이 그물뭉치처럼 곳곳에 매달려 있었다.

붉은 비늘이 다닥다닥 붙은 50-100살 남짓하게 먹은 그 소나무는 언뜻 보면 비늘을 촘촘하게 단 용의 몸뚱아리 같았다. 담쟁이 넝쿨이 다닥다닥 붙어 올라간 그 소나무를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용이 비늘을 몇 점 떨구고 하늘로 날아 올라갈 것만 같았다. 특히 그 소나무 꼭대기, 그러니까 용머리에 앉아 깍깍깍 울고 있는 까치를 바라보면 마치 까치와 용이 여의주를 놓고 서로 싸우는 것처럼 보였다.


"어어어~ 니 시방 저기 눈에 비나(보이나). 저거 좀 보라카이. 용이 까치한테 방금 여의주로 뺏깄다카이"
"야, 이 문디야! 니 눈에는 까치가 물고 있는 저 솔방울이 여의주로 비나?"
"소나무로 용이라 카모 용이 물고 있는 저기 여의주가 아이고 뭐꼬"
"니 말대로 하모 시방 용이 여의주로 몇 개나 물고 있다 말이고? 그라이 저기 소나무지 용이 아이라 이 말이다"
"니는 아(아이)가 와 그래 멋대가리가 하나도 없노. 인자부터 니캉 말하기 싫다. 아싸리(차라리) 똥뫼에 있는 방구캉 이야기로 하는 기 더 재미있것다 고마"

예로부터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마을에서는 매일 같이 까치가 깍깍깍 울었지만 반가운 손님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간혹 찾아오는 손님이라고는 각설이타령을 희한하게 잘 부르는 엿장수 아저씨와 정신이 반쯤 나간 그 팔푼이와 덕순이뿐이었다.


"오늘따라 까치들이 와 저래 세기(세게) 울어쌌노"
"혹시 까치집을 누가 건드린 거 아이가?"
"내가 보이(보니까) 그거는 아인 거 같은데. 저 봐라. 한두 마리도 아이고 떼로 지어서 시기(많이) 설치는데"

그날은 설날을 노루 꼬리만큼 남겨놓은 날 오전 10시경이었다. 시계조차 없었던 우리 마을이었지만 우리는 눈대중이나 배고픔으로 시각을 가늠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각은 거의 정확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유별나게 까치들이 똥뫼의 소나무 숲 속에서 떼를 지어 깍깍 거리고 있었다. 까치떼들은 신작로 쪽을 바라보며 마을이 떠나가도록 시끄럽게 깍깍댔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점심나절이 되어 까치떼들이 울음을 뚝 그친 것과 동시에 신작로 저 편에서 제법 낯익은 얼굴이 우리 마을을 향해 열심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 사람의 양손에는 제법 큰 선물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또한 그 사람은 연방 신작로 주변과 우리 마을 여기 저기를 쭈뼛거리며 마을로 걸어오고 있었다.

"저기 누군 거 같노?"
"가만. 용호, 용호 아재다아~"
"용호 아재가 학실하나? 내가 보기에는 아인 거 같은데"
"니는 인자 용호 아재 얼굴도 잊자뿌릿나. 빨리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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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똥뫼에서 급히 내려온 우리들은 막 우리 마을로 들어서는 용호 아저씨를 이내 빙 둘러쌓다. 용호 아저씨는 빨간 넥타이에 양복 한 벌을 쭉 빼 입고 있었다. 또 손에 들고 있는 선물꾸러미에는 알록달록한 종이가 예쁘게 포장되어 있었다. 얼굴이 흑인처럼 까맣게 그을린 용호 아저씨는 우리들에게 제법 큰돈인 10원짜리를 한 장씩 나눠주었다.

용호 아저씨는 몇 해 전 "쇠 받으러(돈 벌러) 간다" 면서 집을 나갔던 스무 살 남짓한 우리 마을 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우리 마을을 떠난 용호 아저씨는 그 이후부터 소식 한번 없었다. 마을에서는 부산에서 원양어선을 타겠다고 집을 나간 용호 아저씨가 아마도 사고로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용호 아저씨네 집에서도 처음에는 곡소리가 끊기지 않다가 어느날부터는 아예 포기하고 말았다.

"용호야, 이 무정한 넘아! 니가 이렇게 팔팔하게 살아서 돌아오다니..."
"죄송합니더. 저도 첨에는 죽는 줄로만 알았어예"
"그래 인자 됐다. 이렇게 살아서 돌아와줘서 고맙다, 용호야"

그때 까치가 용호네 집을 바라보며 또다시 깍깍깍 하고 울었다. 용호 아저씨는 처음에는 꽃게잡이를 하는 원양어선을 탔다고 했다. 그런데 그 배는 한번 타면 최소한 6개월에서 1년 이상을 물위에 떠있었어야만 했단다. 하루에 4시간 정도 잠을 자는 것을 빼고는 진종일 뼈가 바스라지도록 일을 해야 했단다. 그리고 간혹 우리 나라 부두에 닿아도 뱃사람들이 행여나 도망갈까봐 감시가 대단했다고 한다.

용호 아저씨도 결국 5년이 지나서야 그들에게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아 이렇게 집에 돌아올 수가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는 적은 돈이지만 논 두어 마지기는 살 수 있는 돈을 모았기 때문에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들에게는 꼭 돌아오겠다는 각서까지 써주긴 했지만.

깍깍깍! 깍깍깍깍!

"허어~ 용호 그넘 울매나 고생을 했는지 손바닥이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보다 더 단단하더만"
"아 그라이 집 나가모 고생이라 안 캅디꺼"
"그래도 그 넘이 용키는 용타, 용해. 지 죽는 줄도 모르고 일을 해가(해가지고) 보아란듯이 논 살 돈을 떡 장만해가 왔다 아이가"

깍깍깍! 깍깍깍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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