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동 김치 담는 날

강제윤의 보길도 편지

등록 2003.03.03 10:21수정 2003.03.03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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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김치 담그는 일로 부산합니다. 어제 오전에 텃밭에서 뽑아다 절여 놓았던 채소들을 저물 녘, 물에 씻어 물기가 빠지게 해두었지요.

아침에 보니 어제는 숨이 죽었던 채소들이 밤새 살아나 다시 밭으로 가겠다고 아우성입니다. 조금 싱겁게 간해졌던가 봅니다. 그렇다고 또 절일 수는 없고 양념을 좀더 짭짤하게 하면 되겠지요.


겨우내 노지에서 눈서리 맞으며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커 온 월동 배추와 무, 갓. 막 동이 올라오기 시작한 봄 동 배추는 백 김치로 담습니다. 겨우내 밭에 두고 생 배추로 뜯어다 먹고, 나물해 먹고, 더러 겉절이도 해 먹었지만 텃밭에는 아직도 몇 십 포기의 배추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배추 때문에 난리라는데 몇 포기 뽑아 인천의 부모님께도 보내 드려야겠습니다.

배추는 동이 솟아도 꽃 피기 전까지는 먹을 수 있으니 일부는 그대로 밭에다 두고 수시로 뜯어다 먹고, 또 일부는 살짝 데쳐서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 된장국 끓여 먹어야겠습니다.

갓은 재배한 것이 아니라 저절로 씨앗이 날아와 싹트고 자라난 돌 갓입니다. 여기 사람들은 돌 갓이 조금 뻣뻣하고 독하다 해서 잘 먹지 않습니다. 염소들은 아주 즐겨먹는 채소인데 지금 들판에는 돌 갓이 아니더라도 염소들 먹거리가 넘쳐 납니다.

염소들이 막 솟아오른 연하고 달콤한 봄 풀들에 눈이 팔려 있는 틈을 타 돌 갓을 몇 무더기나 뽑아 왔습니다. 포기가 어찌나 큰지 어떤 것들은 한 포기가 그대로 한아름 되는 것도 있습니다.

큰 것들은 추려서 염장을 하고 나머지는 고춧가루 양념에 버무려 김치를 담습니다. 염장할 갓은 숨이 팍 죽도록 소금에 절여 두었었지요. 잘 저려진 돌 갓을 다시 소금물에 깨끗이 헹굽니다. 찹쌀가루로 묽게 풀 국을 쑤었다 식혀 소금간을 맞춘 뒤 갓이 풀 국에 푹 잠기도록 돌로 꾹 눌러둡니다. 이제 염장 갓김치는 오랜 날들 동안 때때로 시간의 전령이 찾아와 알맞게 익혀주기만을 기다리면 됩니다. 그렇게 저려둔 갓은 냉장 보관했다 여름에 꺼내먹는데 그 시원하면서도 상큼한 맛은 오이피클이나 어떤 절임 채소 보다 낫습니다.

겨울을 난 월동 무는 꽃대가 나오기 시작하면 심히 박혀 먹을 수 없게 됩니다. 잘 간해진 월동 무들은 동치미로 담급니다. 재작년에는 한독 가득 담아 먹었었는데 지난겨울에는 걸렀었지요. 살얼음 낀 겨울 동치미만은 못하겠지만 봄 동치미의 맛도 그런데로 괜찮을 듯 합니다.


김치 세 가지를 담다보니 어느새 하루가 갔습니다. 각각 서로 다른 김치들이 담긴 항아리와 김치 통을 보며 괜히 저 혼자 뿌듯해 웃습니다. 저 김치들로 인해 또 많은 날들의 밥상이 풍성해 지겠지요. 막 버무린 갓김치 한 접시를 저녁 밥상에 올립니다. 뜨거운 쌀밥 한 그릇, 코를 찌르는 돌 갓 김치 향에 행복한 밤이 깃들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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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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