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어린이 친구되기

등록 2003.05.04 01:30수정 2003.05.04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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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이는 왜 말을 잘 못해요?" 초등학교 같은 반 아이들이 딸 아이를 보고 처음 물어보는 말이다. 아내는 "하은이는 어릴 적 아파서 말 배우기가 늦었단다. 네가 친구가 되어서 도와 주렴"하며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해 준다. 발달장애 딸 아이의 학교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 두어달 동안 우리 가족은 하루하루가 바빴고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학교에서는 딸아이를 좋아하고 도와 주려는 친구들이 생겼다. 또한 귀찮게 여기고 내심 싫어하는 아이들도 꽤 많다. 딸아이가 아무때나 아이들의 손을 덥썩 잡고, 발음을 잘 못해 말 보다는 신체적인 의사표현을 하려 들기 때문이다.

담임 선생님도 만나 아이의 교육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자기 자리에 앉아 있질 못하고 수시로 교실 밖으로 드나들어 힘들다고 하신다. 바뀐 짝꿍을 몰라 지나간 짝궁자리에 앉아 있기도 하고, 자기 자리가 어디인지 몰라 헤매기도 한다. 공부시간에 선생님 말씀에는 아랑 곳 않고 교실 뒷편에 앉아 혼자 그림책을 보기도 한다. 어느 때에는 배고픈 것을 참지 못하고 수업시간에 도시락을 먹고 말았다.

통합교육 두달 동안 내 딸이 보여준 것은 유아기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장애 어린이로서 아홉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생활연령은 아직 5세 정도로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나마 신변처리에 큰 문제가 없었고, 아이가 학교에 가는 것을 무척 좋아해 다행스럽고 고마울 뿐이다.

아내는 명예교사로서 함께 등교하여 교실 안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주로 딸아이의 학교생활 적응을 위해 어떤 훈련이 필요한지 관찰하고 보조하기 위해서다. 아이의 학교생활을 챙기기에 정신없어 하는 아내는 매일 전쟁을 치르는 듯하다고 한다. 아내와 나는 아이의 통합교육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고민하게 된다. 물론 '통합교육 도우미제도'가 속히 도입되면 훨씬 나을 것이다.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딸아이가 친구들과 선생님을 무척 좋아 한다는 점이다. 선생님과 친구들 이야기가 나오면 활짝 웃으며 어쩔 줄 몰라 한다. 처음에는 말이 안 통하고 어색해하던 아이들이 제법 친해져서 도와주기도 한다. 딸아이는 친구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잘 들어보니 믿음이, 주희 등 여자 아이들도 있고, 대현이, 민규, 성환이 등 남자 아이들도 있었다. 그 아이들은 내 딸이 가진 장애를 알고 있어 자연스럽게 도와주는 것 같다.

아내는 뚜렷한 인성을 가진 그 아이들의 어머니들과도 인사하고 교류하게 되었다. 그 부모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장애 어린이의 친구가 되어 도와주도록 아이들을 교육시켜 왔다는 인상을 받았다. 보통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장애 어린이와 친구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직도 장애 어린이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아 비장애 아동들만의 분리교육이 주를 이뤄왔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해프닝도 있었다. 몇주전 하은이는 주희의 생일 잔치에 초대받았는데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내는 딸아이가 생일잔치에 초대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했다. 하지만 하은이는 결국 생일 잔치에 가지 못했다. 초대받은 아이들 중에서 하은이와 같이 있는 걸 꺼려해 내색을 한 모양이었다. 아이들 세계에 간섭하지 말고 꼭 보내라는 의견이었지만, 아내는 조용한 평화를 선택한 것이다. 사실 우리 부부는 보내느냐 마느냐 꽤 논란을 빚었다.

그러는 사이 아내는 유치원시절 하은이와 단짝 친구였던 보빈이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보빈이가 유치원을 먼저 졸업한 하은이를 보고 싶어 하고 궁금해 한다는 것이었다. 보빈이는 장애, 비장애아동이 유아기부터 함께 생활했을 때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 것인지 가르쳐주는 선생님이다.


초등학교 1학년 장애 어린이인 내 딸의 친구들을 보면서 편견을 뛰어 넘는 힘은 바로 교육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또한 그런 교육의 힘은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배어있는 또래의식을 통해서 강화되고 비약하고 있지 않은가. 장애 어린이인 내 딸을 좋아하고 친구가 되어준 훌륭한 그 아이들 처럼 어른인 나도 성인 장애인들과 동지가 되어 '차별없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 연대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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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부모연대 <함께웃는날> 편집위원 장애인교육권연대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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