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꼭 달아야 돼"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75> 어버이날

등록 2003.05.08 11:46수정 2003.05.0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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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살아생전의 부모님

살아생전의 부모님 ⓒ 이종찬

"아빠! 내일 와?"
"왜?"
"어버이날이잖아."
"어버이날은... 아니, 내일은 못가고 토요일에 갈 거야."
"에이! 그럼 토요일에 빨리 와."
"왜?"
"아빠에게 달아줄 카네이션을 만들어 놓았단 말이야."


어버이날과 부처님 오신 날을 하루 앞둔 날 저녁, 푸름이와 빛나에게서 번갈아가며 숨가쁜 목소리가 담긴 전화가 왔었다. 둘 다 내일 아빠가 집으로 오느냐고 묻는 전화였다.

처음에 큰딸 푸름이의 전화를 받은 나는 어버이날은 공휴일이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이내 토요일에 갈 거라고 말을 바꾸었다. 올해는 부처님 오신 날과 어버이날이 겹쳤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카네이션 안 달아도 돼. 대신 엄마에게 달아주면 되잖아."
"안돼. 아빠도 꼭 달아야 돼."
"참, 그리고 어린이날에 아빠가 선물을 한다는 걸 할아버지 생신 때문에 깜빡했구나. 어쩌지?"
"괜찮아, 아빠! 아빠는 우리들에게 늘 용돈을 주잖아."

지난 주말에는 연휴가 겹쳤지만 나는 무척 바쁘게 보냈다. 일요일은 이선관 시인 둘째 아들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리고 그 결혼식을 핑계 삼아 가까운 사람들과 이곳 저곳을 옮겨다니며 하루종일 술을 마셨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지난해 가을에 이 세상을 훌쩍 떠나가신 우리 아버지의 첫 생신이었다.

"아빠! 방정환 선생님께서 어린이날을 만들었지?"
"그래."
"근데 언제부터 만든 거야?"
"어린이날은 방정환 선생님께서 1922년에 만든 거야. 그때는 5월 1일이 어린이날이었지. 그러다가 1946년부터 매년 5월 5일이 어린이날이 된 거야."

어린이날이기도 했던 그날 아침, 4남1녀의 우리 형제 모두가 큰집에 모여서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부모님 산소에 가서 잡초를 뽑은 뒤 다시 큰집으로 돌아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다보니 나는 어린이날이라는 것을 그만 깜빡 잊어먹고 말았다.


큰딸 푸름이와 둘째딸 빛나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큰집에 간 두 딸들은 형제들과 어울려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마도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 맞이하는 첫 생신을 어린이날에 맞추어 손자와 손녀들에게 큰 선물을 주신 것만 같았다.

그래. 선물이 꼭 무엇을 주고 받아야만 하는 것인가. 형제들끼리 단 하루라도 오손도손 어울려 지내는 그것이 가장 큰 선물이 아니겠는가.


"근데 아빠! 푸름이 언니는 가게에서 카네이션을 샀다? 그리고 선물도 준비했다?"
"근데 왜?"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카네이션을 직접 만들었거든. 그리고 선물은 못 사고 엄마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거든."
"그래? 빛나가 직접 카네이션을 만들었어?"
"응. 카네이션은 학교에서 만들었고, 편지는 내가 그냥 썼어."
"그래. 아주 잘했어."

그리고 빛나는 이렇게 덧붙혔다. 아빠는 카네이션을 두 개를 달아야 된다고. 내가 왜냐고 묻자 그냥이라고 대답했다. 그냥? 그래. 둘째딸 빛나는 마땅히 대답할 말이 궁색하기만 하면 그냥이라는 말을 했다. 빛나의 그냥이라는 그 말은 아마도 아빠를 사랑하니까란 말의 준말인 모양이었다.

a 카네이션 꽃바구니

카네이션 꽃바구니 ⓒ 이고향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보다도 높은 것 같애


그랬다. 내가 푸름이와 빛나만 할 적에는 매년 5월 8일은 어버이날이 아니라 어머니날이었다. 그리고 둘째딸 빛나의 말처럼 그 당시에는 카네이션을 살 돈도 선물을 살 돈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대부분 종이로 카네이션을 만들어 어머니 가슴에 달아 드리고 '어머니 은혜'라는 노래를 불렀다.

어머니날에 대한 유래는 미국의 한 소녀가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 추모식때 어머니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추모식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준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913년 이후부터 5월의 두 번째 일요일을 어머니의 날로 정했다고 한다.

어머니날에 다는 카네이션도 두 종류다. 살아계신 어머니께는 빨간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람들은 자신의 가슴에 흰 카네이션을 단다. 우리나라에서는 1956년부터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지정했다가, 이에 섭섭한 아버지들이 '아버지의 날'을 거론하자 1973년부터 '어머니날'을 '어버이날'로 바꾸었다.

하지만 올해부터 우리 형제들은 해마다 어버이날이 돌아오더라도 카네이션 한송이 달아줄 부모님이 없다. 지난해 가을에 아버지마저 그렇게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큰 형님의 말처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자 한 세대가 완전히 물갈이가 되고 만 것이었다.

그래. 이제는 우리 형제들이, 우리 부모님의 가슴에 달아드려야 할 그 카네이션이, 우리 형제들의 가슴에 달리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 아내는 푸름이와 빛나가 마련한 예쁜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았을 것이다. 또한 우리 형제들도 조카들이 마련한 빨간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았을 것이다. 나 또한 이번 토요일에 가면 그 카네이션을 달 것이다.

오늘따라 부모님이 몹시 그립다. 그래서 간밤에 그런 꿈을 꾸었는가? 지금은 창원공단 조성으로 모두 사라졌지만 당시 내 고향집 뒤에는 작은 텃밭이 하나 있었다. 그 텃밭에는 배추와 무, 상치, 고추, 고구마 등을 주로 심었다. 근데 꿈속에 부모님께서 나타나셔서 그 텃밭에 각종 채소의 모종을 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니 퍼뜩 도랑가에 가서 이 모종에 덮을 부드러운 흙 좀 파 온나"

나는 우리 집 앞을 흐르는 도랑가에 나가서 부드러운 흙을 퍼 담았다. 그리고 부모님께서 나란히 심어둔 그 모종 위에 부드러운 흙을 덮었다. 그러자 흙에서 갑자기 환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모종들이 쑥쑥 자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부모님께서는 햇살처럼 환하게 웃으셨다.

그래. 오늘은 '부모님 은혜'라는 노래를 되새기며 다시 한번 돌아가신 우리 부모님의 높고 드넓었던 은혜를 되새겨 보아야겠다. 그리고 오후에는 가까운 사찰에라도 가서 향이라도 꽂고 삼배라도 올려야겠다. 향 하나는 부모님 영전에, 또 하나의 향은 부처님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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