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콤달콤한 까만 ‘오둘개’는 고기보다 맛있다

<어릴적 허기를 달래주던 먹을거리-5>뽕나무 열매 ‘오둘개’ 오디

등록 2003.05.20 10:16수정 2003.05.20 15:15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흐미 맛 있겠는거? 삼선교에서 동소문동으로 올라가는 언덕배기에 몇 개 익었더군요. 사나흘 지나면 죄다 익을 것 같습니다. 해강이 솔강이 주니까 냠냠 잘도 먹습니다.

흐미 맛 있겠는거? 삼선교에서 동소문동으로 올라가는 언덕배기에 몇 개 익었더군요. 사나흘 지나면 죄다 익을 것 같습니다. 해강이 솔강이 주니까 냠냠 잘도 먹습니다. ⓒ 김규환




아까시꽃, 오둘개, 앵두, 때왈, 버찌로 이어지는 여름철 먹을거리

참꽃 진달래 꽃잎, 찔레 싹 찔구, 띠뿌리와 삐비, 칡깽이를 따고 꺾어 먹고 나면 아까시꽃이 만발해 허기를 채워줬다. 아까시는 물 건너 온 탓인지 다디달기는 했으나 왠지 확 당기는 맛은 아니었다.

이런 꽃과 잎, 줄기를 다 따먹고 나면 아이들이 실망할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외려 입과 눈은 더 즐거워지고 손놀림은 바빠진다. 바야흐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절이라 밭 가상이고 산자락이던 간에 열매가 푸릇푸릇, 볼그족족 살을 찌우고 이내 검붉게 익어가기 때문이다.

보리밭이 누렇게 바뀔 즈음 오둘개가 맨 먼저 익고, 앵두가 익어 소년 마음 설레게 한다. 차차 때왈도 따라 익는다. 때왈은 산딸기인데 밥그릇에 따 담아와 가족들과 나눠 먹으면 귀염둥이라 칭찬이 자자했다. 때왈 따먹고 나면 여름 한철은 버찌-범을 아버지 막걸리 받으러 다니던 한 되짜리 누런 양은 주전자를 갖고 산골짜기 계곡으로 먼 길을 들어가야 한다.

개구리 뒷다리로 단백질을 충분히 보충하고 열매를 먹어댔으니 풋 열매 무던히 먹어도 탈이 나지 않았던가? 하여튼 뱀 무서운 줄 모르고 양말도 신지 않은 채 검정고무신 찍찍 끌고 시간만 나면 산과 들로 쏘다닌 것이 엊그제 같다.


a 아직은 까맣게 익은 것이 몇 개 안됩니다. 파란 것, 붉은 것이 더 많지요. 이번 주말에는 한적한 곳에 차를 받히고 아이에게 오디를 따 줘보세요. 동소문동에서 어제

아직은 까맣게 익은 것이 몇 개 안됩니다. 파란 것, 붉은 것이 더 많지요. 이번 주말에는 한적한 곳에 차를 받히고 아이에게 오디를 따 줘보세요. 동소문동에서 어제 ⓒ 김규환



뽕나무 열매 오둘개는 까만 게 맛있고 본격적인 여름이다

누에가 먹는 잎이 ‘뽕’이다. 뽕나무와 닥나무, 꾸지뽕나무는 섬유질이 많다. 누에가 뽕잎을 먹고 넉 잠을 자고 나면 하얀 실을 뱉어내 자신이 들어갈 집을 짓게되는데 자그마치 누에고치 하나에서 1200~1500m나 되는 길고 가느다란 명주실을 사람에게 선사한다. 천연섬유의 최고봉인 명주로 비단을 만드니 이 곤충이 이바지하는 바는 꿀벌 못지 않다.


마땅히 가욋돈을 마련하기 힘든 때에는 집집마다 누에를 쳤다. 단군 이래로 누에치기가 장려되어 왕실에서는 선잠단(先蠶壇)에서 제를 지내고 국가적으로 장려했으니 그 중요성은 농사에 버금가는 대단한 것이었다. 또한 그러니 70년대는 뽕나무가 밭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줄지어 늘어선 뽕나무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무릇 뽕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를 ‘오디’라고 하는데 나는 ‘오둘개’가 더 친근하다. 자주 부르기도 했고 어디 어디가면 몇 그루가 있는 걸 훤히 알았다. 수꽃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푸르스름한 열매가 차차 건조한 봄바람과 따스한 햇살을 받아 붉으스름 해진다. 그렇다고 붉은 게 다 익은 건 아니다. 검붉게 변하고 이내 ‘맛탱아리’ 하나도 없게 생긴 검은덩어리가 다 익은 열매다. 다 익으면 마치 누에가 잔뜩 웅크리고 있는 모양인데 얼른 따서 먹지 않으면 땅으로 떨어진다.

a 서울 성북구 성북동 '선잠단(宣蠶壇)' 건너편에 무리지어 있는 뽕밭.

서울 성북구 성북동 '선잠단(宣蠶壇)' 건너편에 무리지어 있는 뽕밭. ⓒ 김규환



오둘개는 풋풋하고 시큼하고 달콤하든 간에 고기보다 맛있다

여름에 익는 열매 중 가장 이른 철에 익는 오둘개. 오둘개 따먹는 재미는 시골에 살아본 아이들은 안다. 모내기 할 무렵 학교를 오가며 밭 가상에 하나 덩그마니 버티고 있는 뽕나무가 왜 그리 반갑던지. 하지만 우린 오디가 까맣게 익을 때까지 참지 못했다.

오디도 열매라고 주렁주렁 맺어 가지를 늘어뜨리면 깨금발을 하고 한 가지 붙들고 떨떠름한 푸르댕댕한 것을 한 두 개 따먹고, 삼사일 지나서는 시큼하고 씨가 씹히는 시뻘건 열매를 대여섯 개 따먹는다. 이러기를 며칠이나 했을까? 하루가 멀다하고 이놈저놈 지나치며 제 것 인양 누에가 뽕잎을 먹듯 야금야금 먹어대니 온전히 익을 때쯤이면 몇 개 남지 않게 되어 허전한 속을 멍들게 했다.

이런다고 오둘개 먹는 걸 그만 둘 리 없다. 꼴 베러 가서 봐둔 뽕나무, 퇴비에 쓸 풋나무를 베러 갈 때 봐둔 뽕나무, 십리 밭에 오가며 본 산뽕나무를 찾아 달음박질을 한다. 산에 있는 것들은 열매가 굵지는 않지만 과육(果肉)이 더 실하여 야생 열매의 맛을 제대로 볼 수 있다.

한참 같이 길을 가다가 아무 소리 없으면 오디나무 아래서 죽치고 배를 채우고 있는 것이고 잘 찢어지지 않는 나무 위에 올라 손으로 훑어서 한 줌 툭 털어 넣으니 입 주위가 버찌 따먹을 때처럼 한기(寒氣)들어 시퍼렇게 변한 아이 모양이 되고 만다. 혓바닥은 붉은 기운은 사라지고 까맣게 되었다.

오둘개는 풋풋하고 시큼하고 달콤하든 간에 고기보다 맛있다.

a 오돌토돌한 오둘개. 오디 따다 술 담가 먹으면 당뇨에 좋다네요. 이번에는 꼭 담가봐야겠습니다. 100여 가지 담가봤는데 오디만 못담가봤거든요.

오돌토돌한 오둘개. 오디 따다 술 담가 먹으면 당뇨에 좋다네요. 이번에는 꼭 담가봐야겠습니다. 100여 가지 담가봤는데 오디만 못담가봤거든요. ⓒ 김규환


a 묵고잡죠? 제 손금을 봐주면 다 드리리다. 손에 하얀 가루가 묻었습니다.

묵고잡죠? 제 손금을 봐주면 다 드리리다. 손에 하얀 가루가 묻었습니다. ⓒ 김규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이 기자의 최신기사 역시, 가을엔 추어탕이지

AD

AD

AD

인기기사

  1. 1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2. 2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3. 3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4. 4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5. 5 '바지락·굴' 하면 여기였는데... "엄청 많았어유, 천지였쥬" '바지락·굴' 하면 여기였는데... "엄청 많았어유, 천지였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