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꽃 세가지를 하루에 본 행운의 사람

<만나고 싶은 우리 꽃과 나무 15>함박꽃 세가지

등록 2003.05.23 10:09수정 2003.05.2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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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북한 국화 산목련. 함박꽃나무. 목란1 <가평 유명산 자연휴양림에서 030522>

북한 국화 산목련. 함박꽃나무. 목란1 <가평 유명산 자연휴양림에서 030522> ⓒ 김규환


a 함박꽃 작약 <중미산에서 030522>

함박꽃 작약 <중미산에서 030522> ⓒ 김규환


a 산수국

산수국 ⓒ 김규환


하루 함박꽃 세가지 본 사람은 복에 겨워 입이 함지박만 해져


하루 동안 함박꽃 세 가지를 본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꽃보고 이리 기쁘다니! 행복 찾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함박’이 무언가? ‘함지박’이다. ‘함지박’은 물푸레나무, 미루나무, 소나무 따위 통나무 속을 파서 바가지처럼 만든 것, 구형(球形)에 가깝게 파서 전(*전; <독이나 화로 따위> 물건의 위쪽 가장자리의 약간 넓게 된 부분《동아새국어사전》)을 단 것, 직사각형에 가깝게 만들어 전을 단 목판 그릇이니 곧 나무 바가지다. 나무 바가지만큼이나 큰 꽃이 함박꽃이다. 다소 과장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렇게 크고 어여쁜 꽃이 있을까?

분명 있다. 한 가지는 약초로 쓰이는 여러해살이풀로서 해마다 움을 틔우자마자 꽃을 피우는 ‘작약꽃’이고, 또 한 가지는 젓가락처럼 가는 나무 줄기가 사람 키만큼 곧게 치솟아 더 크지를 않고 휘어져버리는 ‘수국’이라는 꽃이며, 하나는 교목(喬木)으로 크게 자라는 북한의 꽃 야생 목련 즉, ‘산목련’이다. 공히 같은 점이라면 흰 꽃이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a 목란은 목련 만큼 많이 피지는 않지만 가까이서 들여다 보면 매료되고 만답니다.<030522 가평 유명산에서>

목란은 목련 만큼 많이 피지는 않지만 가까이서 들여다 보면 매료되고 만답니다.<030522 가평 유명산에서> ⓒ 김규환


함박꽃나무 산목련

저 김소월 님께서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라 읊은 ‘진달래꽃’ 배경이 영변(寧邊) 약산(藥山)이어서 그런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한의 국화(國花)를 진달래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나아가 통일 국화로 무엇을 삼을까 하면 빠지지 않고 상위권에 오르내리는 꽃이 진달래다. 진정 북한 국화는 무얼까?

인민이 이밥에 고깃국을 배불리 먹고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지라는 뜻에서 그렇게 정한지는 몰라도 이 꽃 이름은 함박꽃이다. 산목련으로도 부른다. 깊은 산중에나 가야 간혹 볼 수 있는 야생 목련이다.


김일성 주석이 1964년 5월 황해북도 한 휴양소에 머물 때 "이처럼 좋은 꽃나무를 그저 함박꽃나무라고 부른다는 것은 어딘가 좀 아쉬운 감이 있다.내 생각에는 이 꽃나무의 이름을 목란(木蘭)으로 부르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였다. 김주석이 91년 4월 "목란꽃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향기롭고 생활력이 있기 때문에 꽃 가운데서 왕"이라며 국화로 삼을 것을 지시하고 목란으로 직접 개명하였다.

a 활짝 웃고 있는 작약꽃<030522>

활짝 웃고 있는 작약꽃<030522> ⓒ 김규환


함박꽃 작약꽃


약재 목단(牧丹)을 꽃으로 부를 때는 모란(牧丹)이라 한다.《화왕계(花王戒)》에 ‘향기가 없어 벌이 모이지 않는다는 꽃’. 정말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꿀벌들이 좋아하는 향기가 없을 뿐 장미향 비슷한 향기는 분명 있던데 왜 향기가 없다고 했을까? 눈이 멀어 환취(幻聚) 효과에 휘둘린 때문인가?

며칠 전 서울 신설동 관우 장군 사당이 있는 동묘에 ‘모란꽃’ 보러 갔다가 때를 못 맞춰 모란(牡丹) 피는 걸 놓치고 말아 한탄한 적이 있다. 넓게 보면 모란도 함박꽃인데 하나를 놓쳐 상심했지만 또 하나의 함박꽃, 작약이 있으니 곧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모란도 작약과(芍藥科)임에는 틀림없다. 목단과 작약은 없어서 못하는 귀중한 약재다.

작약은 재배하는 사람들이 많던 7~8년 전까지만 해도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꽃이었지만 요즘 쉽게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나는 이 꽃을 보고야 말았다. 양수리를 거쳐 양평 서종면을 지나 가평군 ‘유명산’으로 가는 ‘중미산’을 오르는 어느 농장 화단에 몇 그루 심어져 있었다.

‘함박꽃나무’가 ‘산목련’ ‘목란’이라면 ‘함박꽃’은 ‘작약 꽃’이다. 작약 중 으뜸은 산에서 야생으로 자라는 ‘백(白)작약’이니 오대산, 설악산 등 큰 산 깊은 골짜기 습한 곳에서나 볼 수 있는데 때를 맞추지 못하니 꽃을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집 작약으로도 그 향기와 풍모를 접하여 푹 빠질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단지 꽃 색깔과 크기가 조금 다를 뿐이다. 재배하면 백장미 같은 연분홍 백작약을 볼 수 있고, 꽃잎은 푸른빛을 감추고 붉게 피는 작약 꽃도 볼 수 있다.

줄기 크기에 어울리지 않게 무지막지하게 큰 꽃에 꽃술에는 벌집 짓기 좋을 노오란 꿀을 철철 넘치게 묻혀 놓고 사람과 벌을 기다리고 있다. 꽃가루 바람에 흩날려 떨어지는 모습도 지켜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큼지막한 함박꽃은 그래서 예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다.

a 수국1 <030522 가평군 설악면 가일리에서>

수국1 <030522 가평군 설악면 가일리에서> ⓒ 김규환


또 하나의 함박꽃 수국

간혹 함박꽃이라는 별명을 달고 함박꽃 행세를 하는 꽃이 수국(水菊)이다. 어릴 적 화단 가꾸시던 어머니께서는 이 꽃을 함박꽃이라고 부르시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흰 설탕을 발라놓아 ‘백당(白糖)’이라 하는가?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눈을 토해놓아 ‘설토화(雪吐花)’라 한 것인가? 한 송이 크기가 어른 주먹보다 큰 봉오리를 피워대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함박꽃.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무수히 나무 줄기를 뽑아내는 수국은 마당 언저리에 한 두 그루 심겨있어 나와 꽤 친근한 꽃이다.

양평 중미산을 넘어 가평 유명산 아는 집 담장을 넘어 피어있었고 휴양림 매표소를 통과해 골짜기로 접어드니 산수국(山水菊)이 물먹느라 여념이 없다. 몇 걸음 옮기면서 아무리 관찰해도 분명 나무 줄기와 잎은 같은데 쪽빛 청남색 꽃, 하양 꽃, 분홍 또는 붉은 색으로 환경에 따라 변하니 ‘칠변화(七變花)’라는 이름을 얻게도 생겼다.

이렇게 꽃잎의 변화가 심한 이유는 토양의 산도 때문이다. 토양이 중성이면 흰색이지만, 산성이면 청색이나 남색으로, 알칼리성이면 분홍 또는 붉게 핀다. 그래서 꽃 주위에 명반을 묻어두고 수분을 보충하면 흰색이던 꽃이 청색으로 변하니 산성 땅임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고, 잿물이나 석고가루, 회를 뿌리고 물을 주면 분홍색으로 변하니 알카리성 토양임을 먼저 알아본다.

이 탐스런 수국 꽃 한 송이 따다가 그이 방에 줬다가는 언제 마음 변할지 모르니 주의할 일이다. 대여섯 송이만 꺾어도 한 아름 안기는 모양새가 첫사랑의 기억처럼 두근두근 포근하니 한 번 쯤 빠져 볼만한 꽃이다.

a 수국 <030522 가평 유명산에서>

수국 <030522 가평 유명산에서> ⓒ 김규환


a 수국 <030522 가평 유명산에서>

수국 <030522 가평 유명산에서>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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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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