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재미있는 ‘대사리’ 잡기

<고향의 맛 원형을 찾아서 21> 대사리, 올갱이, 고동 ‘다슬기’ 잡기

등록 2003.06.11 11:06수정 2003.06.1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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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남양주 국립영화촬영소 인근 계곡에서 사진 찍으려고 잡은 다슬기. 다시 풀어 줌.

남양주 국립영화촬영소 인근 계곡에서 사진 찍으려고 잡은 다슬기. 다시 풀어 줌. ⓒ 김규환


다랭이 무논 호미로 파서 심다가 먹는 어죽


백아산 북쪽 헬기가 수도 없이 뜨고 내렸던 차일봉. 차일봉 바로 아래 해발 500m 쯤 되는 곳을 ‘긍내기’ 극락이라 했다. 집에서 5리 쯤 되는 산골짜기 ‘긍내기’ ‘물텅굴’에도 다랑지 논이 네 배미 있었다. 그래봐야 200평이 채 안되었다.

물이 얼마나 차갑던지 2모작 보다 최소 한 달은 이른 때인 5월 중순까지는 모내기가 끝나야 한다. 수로는 논배미 안에서 구불구불 수십 회를 우회하여 넣어준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물의 온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이 차곡차곡 쌓여 있던 때인지라 그래도 집 근처 좋은 논에 모를 먼저 심고 남은 모 타래가 있거나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가족끼리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산을 기어오르듯 한 번 가서 심어 놓고 내려와 가끔 밭에나 갈 때 한 번 씩 들러주는 산 정상 바라보이는 척박한 땅이 있었다.

말이 논이지 논답지 않았고 소로 아무리 잘 갈아줘도 몇 시간 심고 나면 손 마디마디가 퉁퉁 부어오를 지경이었으니 모래땅이라는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오죽하면 갈아놓은 땅을 호미로 파서 모를 심었을까?

그래도 그곳 나락은 참 좋았다. 그 까닭은 위에 아무런 오염원이 없어 청초(靑草)만 지지 않는다면 깜부기 몇 개 있을지언정 병해충 걸릴 염려가 없었으니 그곳 나락은 수확할 때 하도 탱글탱글하여 ‘홀태’로 긴 머리를 빗듯 제아무리 세게 잡아 당겨도 나락귀가 떨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급기야 망을 깔고 돌에 대고 쳐대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인 ‘개상’을 이용하여 털어냈던 기억이 아직 또렷하다.


지금 어머니 묘소가 있는 그곳에 가면 몇 가지 즐거움이 있었다.

한가지는 점심 먹을 때가 되면 쌀, 된장을 넣어 먼저 끓이다가 주변에 있는 도랑에서 가재며 징거미, 어름치, 버들치 몇 마리를 잡아 마저 끓여 철렵 간 기분을 만끽하는 것이다. 둘째는 일하다가 더우면 한 여름에 바위에서 후두둑 떨어지는 폭포수에 멱을 감는 것인데 내 작은 거시기도 바짝 달라붙을 정도로 싸늘한 물이었다. 셋째는 밭에 가서 오이 따먹는 재미였다.


어른들은 조금 늦게 출발하여 빈 짐으로 내려오지 않으셨으므로 곧바로 집으로 내려오셨다.

a 이보다 더 다랑지 논이었습니다. 그곳은 이미 산이 되고 말았지요.

이보다 더 다랑지 논이었습니다. 그곳은 이미 산이 되고 말았지요. ⓒ 김규환

산골짜기에서 일 마치고 다슬기 잡으며 내려오는 즐거움

진정으로 재미났던 것은 일을 마치고 냇가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서 아버지 막걸리 주전자에 돌을 들춰 다슬기 ‘대사리’를 가득 채워 오는 즐거움이다.

조금 이른 시각에는 아직 돌 밑에 붙어 있지만 해가 서산에 기울 무렵이면 모두 어기적어기적 기어 나와서 물과 돌이 만나는 지점에 시퍼렇고 까맣게 줄줄이 돌 모양 따라 둘레를 채워 붙어 있으므로 그걸 물밑으로 떨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훑어서 담으면 50여 미터 안되어 한 그릇이나 되었다. 그릇에 있던 ‘대사리’를 주전자에 툭 털어 넣으면 쇠와 잔돌이 부딪히는 과히 싫지 않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고 몇 번 하다보면 채워지는 그 맛도 즐겁다.

다슬기 줍는 대사리 잡기는 혼자서도 즐겁다. 더 재미나는 것은 오남매가 누가 더 많이 잡느냐 내기하는 거다. 서로 더 많은 곳에 자리잡고 손놀림도 빨라지니 잡히는 숫자가 쏠쏠하다. 간혹 하나씩, 때론 엉겨붙어 있는 서너 개, 어쩌다 열댓 개를 만나면 그릇을 아예 내려놓고 한 손은 쓸어 내리고 한 손은 떨어지지 않게 받쳐서 한 움큼 담으면 옹골찼다.

2km나 되는 긴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 잡듯 할 필요까지는 없다. 하루이틀 다닌 길이 아니므로 계곡의 깊이와 형세를 한 눈에 속속 파악하고 있으니 몇 군데 있을 만한 (*)‘툼벙’(물이 고인 웅덩이) 근처 중심으로 잡아 나가면 되었다.

남매들이 모은 다슬기는 동복댐 근처에서 잡은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10km 하류로 내려가면 크기와 숫자는 훨씬 대단했다. 하지만 두세 시간이고 한정 없이 온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발원지로부터 내려오는 계곡 끝에서 잡은 것은 자잘하면서도 속이 빈 것 하나 없고 삶아보면 국물이 푸르다 못해 짙푸르다. 쌉싸름한 향도 따라 올 수 없다.

내려오면서 주전자를 쳐다보면 수많은 다슬기가 위로 기어올라 촉수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 내 자연공부였다. 한 번 건드리면 이내 안으로 쏙 들어가서 서서히 다시 움직임을 시작하는 다슬기. 평지에서는 탱탱 불은 내 손에 두 마리를 붙여 내려왔다. 그 느낌은 아직 잊을 수 없다. 다슬기가 많던 해는 유난히 반딧불이 찬란했다.

한 주전자 가득 담아오면 어머니는 대사리국을 끓일 준비를 다 해 놓으시고 우릴 기다리셨다. 아욱과 솔(부추)을 뜯어오시고 누렇게 잘 발효된 된장을 한 그릇 퍼 놓으시고 대사리가 오기만을 기다리신 것이다. 우린 젖은 옷을 빨랫줄에 걸쳐놓기만 하고 신발에 있는 모레만 조금 털어 냈다.

a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인 흑산넷<www.heuksan.net> 이영일 님의 사진 협조. 흑산도에 가시면 이 분을 만나시면 모든 게 쉽습니다. 흑산 본 섬 계곡에서 지난 늦 겨울에 찍은 사진.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인 흑산넷 이영일 님의 사진 협조. 흑산도에 가시면 이 분을 만나시면 모든 게 쉽습니다. 흑산 본 섬 계곡에서 지난 늦 겨울에 찍은 사진. ⓒ 이영일

다슬기만 보면...

나는 육류를 잘 먹지 않는다. 소, 돼지, 염소, 개, 닭고기도 생 것 아니면 입에 잘 대지 않는다. 그러니 생선이 우선이고 민물고기는 수라상에 비견한다. 냇가 가서 요것조것 잡아 어죽(魚粥)을 끓이면 제 아무리 더워도 그렇고, 가을 시골 가마솥에 무시래기 넣고 끓인 추어탕도 앉은자리에서 다섯 양푼을 먹어야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고기를 잡을 때도 초고추장은 반드시 지참하는데 ‘꺽지’ 등을 만나면 바로 횟감으로 먹어 치우니 분명 나는 유별난 데가 있다. 그러니 서른 다섯 살 때까지 폐디스토마, 간디스토마를 몸에 달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나는 여름 휴가를 떠날 때는 반드시 계곡으로 갔다. 그 계곡에서 손으로 물고기 몇 마리 잡는 즐거움이 그 어떤 놀이보다 재미있기도 하거니와 물 좋은 곳을 만나면 된장국에 다슬기 몇 마리는 넣어 고향의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홍천강 상류로, 단양 여러 계곡으로, ‘꼴짝나라’ 곡성(谷城)으로, 고향 화순 백아산 계곡으로, 오대산 소금강 계곡으로, 인제 ‘하늘이 내린천’으로 들어간다. 그 곳에 가면 내 미각이 깨어난다.

그곳에 갈 때마다 다르게 불러주는 것도 예의다. 전라도에 가면 대사리고, 충청도에 가면 올갱이며, 강원도에 가면 골팽이다. 깊은 산골짜기로 들어갈수록 고동이라 많이 부르니 말이다.

a 툼벙에 때까우가 왜 없을까요? 툼벙에서 놀았던 추억을 다들 갖고 있을 겁니다. 여기서 다슬기를 잡으려면 온 몸이 물에 젖고 말지요.

툼벙에 때까우가 왜 없을까요? 툼벙에서 놀았던 추억을 다들 갖고 있을 겁니다. 여기서 다슬기를 잡으려면 온 몸이 물에 젖고 말지요. ⓒ 김규환

고사리 꺾으러 갔다가 허탕치고 10분 동안 2kg을 횡재한 사건

2001년 일시귀농 했을 때 일이다. 아직 살집을 알아보지 못하고 잠시 고향 인근에 살고 있는 형님 댁에 머문 적이 있다. 고향 마을에서 5km 떨어진 곳이다. 고사리가 한창이던 어느 날 제사 때 쓰려고 고사리를 꺾으러 갔다. 예년에는 고사리 밭이었으므로 그곳에 가면 두세 근은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웬걸? 2시간을 헤매었지만 한 줌도 안되게 꺾었으니 산에 간 것이 창피할 뿐이었다.

고사리 꺾기는 포기하고 집으로 다시 돌아온 나는 큰 양푼을 들고 생판 모르는 마을을 빠져나가 아무 계곡이나 들어갈 심산으로 밥 한 술 떠먹고 집을 나섰다. 그 마을이 곡성군 오산면 선세리인데 ‘효녀 심청이’를 기리는 공원과 유래설화가 모셔져 있는 작은 절 관음사(觀音寺)가 있는 곳이다. 멀리 가지도 않았다. 20여호 되는 작은 마을 끝 계곡 초입에 이르러 탐색을 시작했다.

마침 ‘흑염소탕집’ 주인을 만났다. 한 두 번 먹어보아 ‘한글’이 ‘세종’이 삼촌이라는 걸 기억하고 인사를 해왔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형수님 안녕하세요. 고사리 꺾으러 갔다가 허탕치고 왔습니다. 대사리나 몇 마리 잡아 볼려구요.”
“없을 것인디요.”
“많이도 필요 없어요. 몇 마리만 잡아서 오랜만에 냄새나 맡아보려고 합니다.”
“맨날 뭐 씻으러 내려가 봐도 별로 없던데요.”
“재미로 하는 거죠 뭐.”

둘 간의 대화는 이랬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식당 아래 계곡으로 내려갔다.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물에 풍덩 발을 담갔다. 찬찬히 들여다보니 서너 마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지난 번 나무 심을 때 보니 몇 마리 있었어! 이 골짜기도 분명히 있을 거야!’

그러기를 2분도 안되었다. 작은 계곡을 따라 몇 걸음 위로 올라갔다. 물은 암반 위로 좁게 돌 돌 돌 흘러내리고 있었다. 바닥을 내려다본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정말이지 다슬기탕 집에서 큰 바구니에 알맹이만 빼먹고 누가 쏟아 부어 놓은 줄 알았다. 하나 둘 건져가며 점검해 보았다.

‘어? 촉수도 내밀고 있고 비닐 같은 망도 있잖아?’

대사리 잡는 걸 잠시 멈추고 서울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해강이 엄마, 나요.”
“왜 대낮에 전화를 다 하시구요?”
“정말 놀랍습니다.”
“대체 뭐가요? 술 한 잔 하셨구나. 뜬금 없는 소리를 다 하시네요.”
“아니, 그게 아니고‥.”
“뭐요?”
“글쎄, 대사리‥. 다슬기 말이요. 여기에 누가 부어 놓은 것처럼 바닥에 쫘악 깔려 있어요.”
“대체 얼마나 많은데요?”
“손이 작아서 훑지를 못하겠어.”
“혼자 재미보기예요?”
“하여튼 엄청나구만. 다 잡고 나서 다시 전화할게요.”

휴대용 전화를 끊고 나서 다슬기를 잡는데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보물 만나 반 미친 사람이 모래를 퍼 담듯 위에서 아래로 살살 끌어 모아 양손으로 쓸어 담기를 스무 번 해댔다. 갖고 간 큰 양푼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세 시간을 잡아야할 분량을 잡았으니 횡재를 한 셈이다.

형님네 돌아오는 길에 다시 전화를 했다. 기쁜 맘으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일부러 저울을 찾아 떠보았다. 그 짧은 시간에 잡은 다슬기는 2.25kg이나 되었다. 다음 해 그곳에 갈 일이 있어 더 큰그릇을 갖고 가보았는데 큰물이 지고 난 다음이어서 인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몇 마리 없었다.

a 다슬기 탕에 가깝겠네요. 내일 쯤 다슬기국을 맛나게 끓여 드리겠습니다. 요즘은 체인점이 꽤 늘었더군요.

다슬기 탕에 가깝겠네요. 내일 쯤 다슬기국을 맛나게 끓여 드리겠습니다. 요즘은 체인점이 꽤 늘었더군요.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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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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