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소리 1호' 는 밤새 우는 개구리 소리

<고향의 소리1>서울서 전남 영암에 조문 갔다가 들은 개구리 소리

등록 2003.06.10 16:10수정 2003.06.10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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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밤 논. 저 불빛은 달입니다. 흑백 사진.

밤 논. 저 불빛은 달입니다. 흑백 사진. ⓒ 김규환

모내기가 끝난 들녘. 누런 보리 빛을 띠다가 한 배미 한 마지기 또 한 다랑지 모내기를 해나가면 논은 연두 빛이었다가 푸른 녹색으로 바뀐다. 품앗이 가신 어머니를 제하고 아버지와 함께 뜬 모를 하고 나면 논두렁에 콩 심는 것은 우리 차지다.


콩 심는 것은 호미를 갖고 갈 필요 없이 오래되어 녹슬고 무딘 무쇠 칼 하나 들고 가면 된다. 차대기에 콩을 담아 책가방으로 쓰던 보자기 하나 넣어 가지고 가면 준비 끝이다. 논가에 이르러서는 그 보자기에 콩을 넣고 전대(錢臺) 차듯 허리에 두르고 왼손에 몇 개만 잡히게 하고 흘러내리지 않게 처매는 일은 스스로 한다.

개구리 우는 소리


아침이나 해질녘 짬을 내어 후딱 해치우는 게 논두렁 콩 심기다. 빈땅에는 죄다 호박이든 뭐든 심어 아직도 마을 어느 귀퉁이엔가 “호박 심어 식량증산!” 이라는 정부에서 내린 구호가 희미하게 살아 있었으니 논두렁에 콩 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콩 자루를 차고 몸을 살짝 수그려 오른 손으로 논흙을 발라 붙인 도톰한 논두렁에 칼을 한 번 비스듬히 툭 쑤셔주고 세 알 넣고 칼을 눕혀 X모양으로 가위표가 되게 두 번 “툭툭!” 쳐주고 다음 구멍을 뚫으러 넘어가는 게 일반적인 공정이다. 그러다 콩이 하나라도 논물에 또르르 굴러 떨어지면 한 손이 젖게 되니 옷에 닦아 대강 말려야 손쉽다. 그러니 완전히 새로 붙인 논두렁이 마르기 전에 해야 더디지 않았다.

a 예전에는 논두렁 콩을 다들 심었는데 요즘은 심을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요즘엔 모를 부어 모종을 하고 마니 재미는 더 없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논두렁 콩을 다들 심었는데 요즘은 심을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요즘엔 모를 부어 모종을 하고 마니 재미는 더 없을 것 같습니다. ⓒ 김규환

논두렁 콩을 심고 나면 개구리밥이 파랗게 동동 뜬다. 3일도 안 되어 채 마르지 않은 습기를 머금고 쏘옥쏘옥 고개 내밀고 있는 콩 싹이 참 보기 좋다. 더 며칠만 지나면 모도 뿌리박음을 끝낸다. 한 개 뽑아보면 누렇던 모 뿌리도 하얀 이(齒)처럼 서너 가닥 드러낼 것이고, 이 때면 온갖 영양분을 쪽쪽 빨아대기 시작해 노랗던 이파리가 파란 녹색으로 변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이 때는 논두렁마다 다니며 콩을 새들이 빼먹지 않았는가, 뱀이 구멍을 뚫어 방천(防川)을 내지 않았는가 등 한 번씩은 꼴 망태를 메고 두루 살피게 되어 있다. 물이 차 있는 논두렁에는 지렁이가 뱀처럼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훌쩍 뛰어 옮겨가고 스르르 기어가는 뱀 한 두 마리는 있게 마련이다. 아직 피신을 못한 땅강아지 서너 마리도 만날 수 있다. 쑥과‘바래기’도 물 만난 물고기처럼 준동(蠢動)하게 된다.

논두렁이 그렇다면 논배미 안에는 더 하다. 논우렁이가 수채 구멍 입구에 몇 마리 물에 떠밀려 들어왔다가 이내 온 논으로 퍼져 벼 아닌 것만 죄다 갉아먹으니 김매기 상 일꾼이 따로 없다.


소금쟁이도 들어와 띄엄띄엄 서 있는 모 포기 사이사이를 한가하게 드문드문 떠다닌다. 못자리에서는 까만 올챙이가 흰 배를 들이대고 이게 자라 참 개구리가 될지 무당개구리가 될지, 맹꽁이가 될지 어린 아이 헷갈리게 하더니만 이 논에서는 자랄 만큼 자라 본 모습을 드러낸다.

이 개구리가 아직 굳지 않은 무논을 헤집고 다니면서 구정물을 일으키므로 며칠간은 풀이 자라는 걸 지연시켜 주니 개구리도 농사꾼이다. 간혹 개구리도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 튀어나올 것 같은 상을 하고 피신을 한다. 온갖 학(鶴)도 찾아온다.

논두렁이고 논바닥이고 간에 뭇 생명이 몰려와 노니는 고향 들녘을 걷는 사람은 애 어른 할 것 없이 뒷짐을 지고 조금은 여유롭게 걸을 수 있다. 그래서 농사를 지으면 마음이 부자였던가 보다.

a 논 메고 있는 학(鶴) 두마리. 남양주 월문리에서

논 메고 있는 학(鶴) 두마리. 남양주 월문리에서 ⓒ 김규환

고향 생각나게 하는 소리는 다양하다.

"음머~" "음메~"
"삐약삐약" "꼭꼭꼭" "꼬꼬댁꼭꼭 꼬꼬댁꼭꼭" "꼬끼요~"
"멍멍", "컹컹"
“꾸울~꿀”
"메~~"
“꽥꽥꽥”
"야옹"

"짹!짹!짹!” 울음을 털어 내는 까치소리. “뻐꾹”, “부엉” 하는 새도 음악소리에 비견할 바 아니었다. “지지배배 지지배배” 남의 동네 처마 밑에 집 지어 놓고 빨랫줄에서 지저귀느라 마루에서 곤히 낮잠 자는 동생을 깨우고 가는 강남 제비 소리도 요란했다.

한 때 이보다 더 다양한 소리가 들려 초여름 낮과 밤은 풀벌레 마저 노래를 해대니 그 곳이 자연이고 고향이고 시골이다. 대부분 사라진 고향 마을은 적막하기만 하다. 이 많은 소리가 있어도 밤에 개 짖는 소리만큼은 아니다. 하지만 제 아무리 목청이 큰 누렁이 일지라도 이들의 무리는 절대 따를 수가 없으니 한 번 들어보자.

a 농사철이  조금 지난 어제는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저는 상가에는 꼭 가고야 맙니다.

농사철이 조금 지난 어제는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저는 상가에는 꼭 가고야 맙니다. ⓒ 김규환

우지마라 울지마
귀천 돕는 소리

우지마라 울지마 인생사 다그렇다
우지마라 울지마 명다해 간어르신
우지마라 울지마 너마저 슬피울면
우지마라 울지마 더흘릴 눈물말라
우지마라 울지마 살기력 못차린다
우지마라 울지마 울어도 소용없어
우지마라 울지마 술고래 놀러오고
우지마라 울지마 밥벌레 기어오라
우지마라 울지마 차린찬 이정도면
우지마라 울지마 낼아침 산에가서
우지마라 울지마 쉬보내 귀천하게
우지마라 울지마 또빌고 빌어주세
우지마라 울지마 오실이 아니거늘
우지마라 울지마 가신님 언제오나 / 김규환
“개굴개굴”
“개골개골”은 아무 것도 아니다.
물을 한 모금 머금고 몇 번 맹꽁이처럼 목쉰 소리로 “머~” “무~” 하다가,

“꽥꽥꽥”
“꽥꽥꽥-------------”

한 마리도 아니고 수백 수천 마리가 밤새 울어대니 도시 사람이 오랜만에 이중창 아닌 시골집 가서 쉬 잠을 이루기는 쉽지 않다. 칠흑 같은 밤 잠 못 이루는 이를 위한 전원교향곡, 고향의 소리 1호로 개구리 소리를 지정하면 어떨까?

전남 영암 도포의 한 마을에 조문 갔다가 잠시 짬을 내어 밤 1시 경 잡은 소리다. 오늘 비가 내리지도 않았는데도 밤새 개구리가 울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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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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