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농사일, 고단함 속에서 지혜가 샘 솟는다

등록 2003.06.16 12:01수정 2003.06.16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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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적절한 노동은 과연 얼마 만큼일까? 어제 하루 종일 일을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내년부터는 나도 비닐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스콧/헬렌 니어링 부부가 하루 네 시간 일했다지만 설마 기계처럼 매일 4시간만 일 했을까 하고 의문을 품어 보기도 했고 어린이가 참여해야 하는 가사노동의 양은 어느 정도가 좋을지도 생각해봤다.


먹구름만 오락가락 하다가 구름 틈새로 햇살이라도 내 비치면 질급을 하고는 뽑아다 놓은 들깨 모종을 덮었다. 어느새 주렁주렁 달린 풋고추를 처음으로 따다가 된장에 찍어 먹기도 했다. 낮에 한 시간 정도 눈을 붙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구름처럼 흘러가는 생각의 꼬리를 이어가며 새벽 다섯시부터 밤 아홉시까지 일을 했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이렇게 지은 농사를 누가 좀 알아줘야 할텐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어 농사의 전 과정에 함께 동참할 수 있는 뜻있는(?) 소비자를 확보해야겠다. 내 밭에 농기계는 어느 정도 허용해야 할까? 비싸기 짝이 없는 유기농자재는 언제쯤 싸질까? 들깨 모종이 풀 보다 먼저 자라 줘야 하는데 풀이 먼저 자라버리면 어쩌지?
모든 창조와 그 단초는 몸 노동에서 비롯된다는 만고의 진리를 다시 한번 온 몸으로 체득 한 날이었지만 녹초가 되어 버린 나는 먼 길 찾아 온 손님을 맞지도 못하고 골아 떨어져 버렸다.

두번 째 감자밭 매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이웃집 아이가 감자밭에 와서 감자꽃을 따고 있다. 새들이가 사진을 찍었다.
두번 째 감자밭 매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이웃집 아이가 감자밭에 와서 감자꽃을 따고 있다. 새들이가 사진을 찍었다.전희식
다른 일도 그렇지만 특히 계절과 날씨에 큰 영향을 받는 농사일은 때를 놓치면 끝이다. 비가 올 때, 또는 비가 오지 않을 때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시기를 놓치면 일이 몇 배나 힘들어진다. 며칠 전 온 비로 땅이 젖어 있는데다가 소낙비가 온다는 예보를 듣고 좀 덜 자랐지만 들깨 모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탕수육 사 준다는 꼬드김과 푸짐한 '구라'를 풀어가면서 새날이와 그 친구들까지 밭으로 끌고 갔다. 실상사 작은학교 친구들이 주말을 맞아 우리 집에 왔던 것이다. 잔일을 거드는 애들 손도 바쁜 농사철에는 한 몫 하게 마련이다. 이들이 떠나가고 나서도 계속 나랑 일을 하게 된 새들이는 나 들으라고 끙끙 신음소리를 냈지만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다. 몇 시간을 쪼그린 채 오리걸음으로 들깨를 심던 새들이가 바닥에 주저앉아서 혀를 빼 물고 늘어져 버렸다. 오후에는 좀 편한 일을 시켰다. 이날 하루를 놓치면 땅이 말라버려 모종을 옮겨 심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무리인 줄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

김제에 사는 한 분은 십 수 년 농사일을 다 때려치우고 올해 도시로 나갔다. 전농 간부로 일을 하면서 유기농을 했던 분이다. 황토 고구마를 많이 하시는 분이라 올해도 작년처럼 고구마 순을 얻으려고 연락을 드렸더니 고구마 순 대신 농기계까지 모두 헐값에 처분하고 도시로 나갔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작년에 풍작을 이뤄 꿈에 부풀게 했던 황토 고구마가 결정적이었다. 창고에 가득 채워 놨지만 푹푹 썩어가는 고무마가 그를 결국 빚더미에 올려놓으면서 농사일을 접게 했다는 것이다.


일을 하는 도중 새들이가 물어왔다. 지친 몸이 스스로 추스르기 위해 옆 사람과 대화를 하게 하는 것이다. 왜 잡초는 키우지 않아도 이렇게 잘 자라냐는 것이었다. 그건 나도 종종 하는 생각이었다. 아무도 거두지 않고 반기지 않아도 잡초는 눈치코치 다 접어두고 보란 듯이 잘 큰다. 작물들이나 집짐승들이 야생 상태에서는 병도 없을 뿐더러 먹이를 따로 주지 않아도 잘 자란다. 사람들이 자연의 조화를 깨고 한 곳에 몰아넣어 키우다 보니 생명력이 약해진 게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아전인수 격으로 덧붙였다.

“새들아. 사람들이 어릴 때 고생은 사서라도 해야 한다고 하는 게 바로 그거야. 어릴 때 오냐오냐 키우면 이 곡식들처럼 약해지는 거야. 일부러라도 잡초처럼 키워야 돼”
무슨 말인지 눈치가 빠른 새들이는 자기를 고생시키면서 잡초처럼 키우면 사람들이 뽑아버리지 않겠느냐고 되묻는다.


나는 부모들이 자기자식을 잡초처럼, 남의 자식처럼 키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얘기했다. 자식이 좀 힘들어해도 날름날름 대신 해 주는 게 아니라 지금의 나처럼 지그시 지켜볼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 사랑으로 부모 자신이 성숙해야 하는지도 말해 주었다. 어이가 없는지 새들이는 나를 빤히 올려다봤다. 또 아빠가 잘난체 한다는 눈치다. 그리고는 하는 얘기가 잡초도 아예 밭에다 옮겨 심어서 거름도 주고 곡식이 나면 냉큼 뽑아 주고 해서 약하게 하면 안 되겠냐고 했다. 이번에는 내가 어이가 없어졌다.

잡초문제가 유기농에 제일 큰 일거린데 그래도 올해는 귀농운동본부에서 파는 ‘풀밀어’라는 기계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사야겠다고 하면서도 강박적인 생태농업에 대한 고집으로 괭이 한 자루로 풀하고 씨름을 했었는데 ‘풀밀어’를 사서 사용해 보니 효과 만점이었다. 이걸 사용했더니 한 시간에 콩밭 100평은 너끈히 맬 수 있었다. 물론 풀이 한 치 이하로 자라 있을 때 얘기지만.

'풀밀어'는 정농회 김준권 부회장님이 10여 년 전 스위스 어느 농촌에 6개월간 가 계실 때 보고는 사 오신 것이라고 한다. 한번 밀어 준 콩밭이 제법 깨끗하다.
'풀밀어'는 정농회 김준권 부회장님이 10여 년 전 스위스 어느 농촌에 6개월간 가 계실 때 보고는 사 오신 것이라고 한다. 한번 밀어 준 콩밭이 제법 깨끗하다.전희식
‘풀밀어’를 처음 밭에 가지고 가서 일을 하고 있을 때 멀리서 이장 부인이 “그게 뭐요?” 하고는 고개를 쑥 내밀고 왔었다. 옆 밭 할아버지도 ‘이 사람이 또 무슨 해괴한 짓을 하나’ 하는 눈치로 다가와서 한참을 요모조모 뜯어 보셨다. 따로 설명을 할 필요도 없었다. 일하는 것만 봐도 순식간에 잡초들이 사라지는 게 신기할 밖에는.

내가 하는 일에는 뭔가 트집을 찾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할아버지는 한참을 지켜보더니 “그럼. 이봐아~ 히시기. 그래가지고 되겠어? 포기 사이는 어쩌려고 그래?” 하는 것이었다. 나는 대답 대신 보란 듯이 ‘풀밀어’하고 세트로 되어 있는 ‘딸깍이’를 가지고 포기 사이를 밀어줬다. ‘딸깍이’가 앞뒤로 움직일 때마다 풀들이 납죽납죽 나가자빠졌다. 동네이장도 와서는 어디선가 교육장에 가서 모타가 달린 풀매는 기계를 봤다는 얘기를 했다.

풀을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며칠 전 충북 보은에서 우리집에 온 한살림공동체 농부 김 아무개씨가 자기도 비닐을 쓴다며 비닐 없이는 자기도 수를 다 써 봤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 하길래 나도 내년에는 비닐을 쓸 생각이다. 보은 김씨는 예초기에 세 날 호미를 달아 돌려 봤더니 효과가 좋더라고 해서 그것도 해 볼 생각이다.
노동이 소중하긴 하지만 지나치면 몸과 함께 정신도 망가진다. 평균 노동이 하루 4시간을 넘지 않도록 하면서도 가능하면 어제 같은 소나기식 일이 없도록 머리를 써야겠다. 적절한 수준으로 농자재를 활용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서울에서 울산까지 걸어가는 ‘차별철폐를 위한 100일 문화행진’ 일행이 전주에 도착했다는 전화 연락을 받고 허리를 펴서 시계를 봤더니 저녁 8시가 넘어 있었다. 어둑발도 제법 들어 있었다. 작년 ‘우리쌀 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의 주요 멤버였던 만서씨, 삼태씨, 해솔이네, 순영씨도 다 함께 왔다는 소식에 하던 일을 급히 정리하고 집에 와서 흙투성이 몸을 씻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다.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장소로 가기위해 저녁밥도 거른 채 옷을 갈아입었다. 생활한복 대님을 묶다가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운전을 하고 시내까지 가기 전에 쓰러질 것 같았다. 녹아 난 촛농처럼 몸이 흐물흐물했다. 스콧/헬렌 니어링 부부도 분명 추수 때 비가 온다거나 파종 때 가물면 어떤 날은 십 수 시간을 일 하기도 했으려니 하면서 100일 걷기 친구에게 못갈 것 같다고 전화를 걸고는 맸던 대님을 풀었다.

밤 새 앓으면서 잤다. 오늘은 늦잠 좀 자 보려고 했지만 이른 새벽에 깨어나 버렸다. 아무리 더 자 볼려고 용을 써도 안 되었다. 오래 전에 없어져버린 새벽잠은 이제 두번 다시 나를 찾아오지 않으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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