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째 감자밭 매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이웃집 아이가 감자밭에 와서 감자꽃을 따고 있다. 새들이가 사진을 찍었다.전희식
다른 일도 그렇지만 특히 계절과 날씨에 큰 영향을 받는 농사일은 때를 놓치면 끝이다. 비가 올 때, 또는 비가 오지 않을 때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시기를 놓치면 일이 몇 배나 힘들어진다. 며칠 전 온 비로 땅이 젖어 있는데다가 소낙비가 온다는 예보를 듣고 좀 덜 자랐지만 들깨 모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탕수육 사 준다는 꼬드김과 푸짐한 '구라'를 풀어가면서 새날이와 그 친구들까지 밭으로 끌고 갔다. 실상사 작은학교 친구들이 주말을 맞아 우리 집에 왔던 것이다. 잔일을 거드는 애들 손도 바쁜 농사철에는 한 몫 하게 마련이다. 이들이 떠나가고 나서도 계속 나랑 일을 하게 된 새들이는 나 들으라고 끙끙 신음소리를 냈지만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다. 몇 시간을 쪼그린 채 오리걸음으로 들깨를 심던 새들이가 바닥에 주저앉아서 혀를 빼 물고 늘어져 버렸다. 오후에는 좀 편한 일을 시켰다. 이날 하루를 놓치면 땅이 말라버려 모종을 옮겨 심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무리인 줄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
김제에 사는 한 분은 십 수 년 농사일을 다 때려치우고 올해 도시로 나갔다. 전농 간부로 일을 하면서 유기농을 했던 분이다. 황토 고구마를 많이 하시는 분이라 올해도 작년처럼 고구마 순을 얻으려고 연락을 드렸더니 고구마 순 대신 농기계까지 모두 헐값에 처분하고 도시로 나갔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작년에 풍작을 이뤄 꿈에 부풀게 했던 황토 고구마가 결정적이었다. 창고에 가득 채워 놨지만 푹푹 썩어가는 고무마가 그를 결국 빚더미에 올려놓으면서 농사일을 접게 했다는 것이다.
일을 하는 도중 새들이가 물어왔다. 지친 몸이 스스로 추스르기 위해 옆 사람과 대화를 하게 하는 것이다. 왜 잡초는 키우지 않아도 이렇게 잘 자라냐는 것이었다. 그건 나도 종종 하는 생각이었다. 아무도 거두지 않고 반기지 않아도 잡초는 눈치코치 다 접어두고 보란 듯이 잘 큰다. 작물들이나 집짐승들이 야생 상태에서는 병도 없을 뿐더러 먹이를 따로 주지 않아도 잘 자란다. 사람들이 자연의 조화를 깨고 한 곳에 몰아넣어 키우다 보니 생명력이 약해진 게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아전인수 격으로 덧붙였다.
“새들아. 사람들이 어릴 때 고생은 사서라도 해야 한다고 하는 게 바로 그거야. 어릴 때 오냐오냐 키우면 이 곡식들처럼 약해지는 거야. 일부러라도 잡초처럼 키워야 돼”
무슨 말인지 눈치가 빠른 새들이는 자기를 고생시키면서 잡초처럼 키우면 사람들이 뽑아버리지 않겠느냐고 되묻는다.
나는 부모들이 자기자식을 잡초처럼, 남의 자식처럼 키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얘기했다. 자식이 좀 힘들어해도 날름날름 대신 해 주는 게 아니라 지금의 나처럼 지그시 지켜볼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 사랑으로 부모 자신이 성숙해야 하는지도 말해 주었다. 어이가 없는지 새들이는 나를 빤히 올려다봤다. 또 아빠가 잘난체 한다는 눈치다. 그리고는 하는 얘기가 잡초도 아예 밭에다 옮겨 심어서 거름도 주고 곡식이 나면 냉큼 뽑아 주고 해서 약하게 하면 안 되겠냐고 했다. 이번에는 내가 어이가 없어졌다.
잡초문제가 유기농에 제일 큰 일거린데 그래도 올해는 귀농운동본부에서 파는 ‘풀밀어’라는 기계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사야겠다고 하면서도 강박적인 생태농업에 대한 고집으로 괭이 한 자루로 풀하고 씨름을 했었는데 ‘풀밀어’를 사서 사용해 보니 효과 만점이었다. 이걸 사용했더니 한 시간에 콩밭 100평은 너끈히 맬 수 있었다. 물론 풀이 한 치 이하로 자라 있을 때 얘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