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긴장하고 있는 까닭은?

산책길에서 만난 반가운 친구들

등록 2003.06.27 07:32수정 2003.06.27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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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예배를 마치고 산책을 할 때도 있고, 특별히 산책이라고 할 것 없이 심방을 가는 길이 산책인 경우도 있습니다. 가끔은 낮에도 산책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저에게 있어서 산책은 보통 한 시간을 넘지 않습니다.


산책을 할 때 꼭 챙기는 것은 카메라입니다. 어제까지는 안보였는데 불쑥 보이는 꽃이 있는가하면 날씨의 조화로 혼자만 보기에는 아까운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지기도 하기에 지난 1월 이후 늘 제 곁에서 분신처럼 따라다닙니다.

요즘은 풀이 우거져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숲길을 걸어갈 때에는 바짝 긴장이 되기도 합니다. 혹시 뱀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해서 미리 발로 풀을 건드리며 뱀이 자리를 비켜줄 시간을 주면서 천천히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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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산책길은 꽃을 만나는 즐거움과 신선한 공기,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말고도 다양한 곤충들을 만난다는 데 즐거움이 있습니다. 아내는 지레 걱정을 합니다.

'저 양반 저러다가 이번엔 곤충에 빠지는 것 아닌가'해서 말입니다. 아내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내가 꽃을 좋아해도 별반 관심이 없더니만 식물도감을 몇 권이나 사고, 그것도 모자라 이틀에 한번씩 꽃에 관한 글을 쓰고 하니 요즘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결혼 생활 14년이니 남편인 나의 성격도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고,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본다는 것도 알기 때문에 긴장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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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 대한 관심도 좀 줄였으면 좋겠는데 게다가 곤충도감까지 사들이기 시작하면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그러나 아내에게 곤충까지는 가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실 아내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합니다. 꽃 사진이야 가만히 있는 것을 찍으니 수월한 편입니다. 바람만 불어도 찍기 힘들어 쩔쩔 매는데 곤충은 어디 가만히 기다려 주질 않으니 언감생심이죠. 게다가 제 디지털카메라는 중저가제품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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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번에는 인내심을 가지고 열심히 쫓아다녔습니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쫓아 다니다 자전거 세워 둔 곳을 가려면 한참을 되돌아가고, 겨우 줌으로 당기고 찍으려는 순간 휙 날아가 버리곤 했습니다.


하필이면 이런 날 반바지를 입고 나왔으니 가시나 풀에 베어서 다리가 성하질 않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들판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산책 아닌 운동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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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만나면 정말 반갑더군요.
'그래, 용케도 살아있었구나.'
산책길에 만난 반가운 친구들을 카메라에 담아와 아내에게 보여주니 아내는 긴장을 합니다.

"이젠 곤충 쪽으로 메뚜기처럼 뛰면 알아서 해! 뱀처럼 확 물어 버릴껴."
"걱정하지 마소. 그게 얼마나 힘든 건데. 나 오늘 이거 찍으면서 곤충사진 찍는 분들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았다고. 그리고 사진기가 이거 가지고 되는 게 아니야. 걱정일랑 저 기둥에 꽁꽁 붙들어 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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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저에게 산책길은 휴식입니다. 그리고 꽃에 대한 관심은 작은 저의 취미생활입니다. 그 이상을 넘어가서는 안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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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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