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와 '뽕짝'

[나의승의 음악이야기 26]

등록 2003.07.17 11:42수정 2003.07.2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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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는 곡을 만들고 연주자는 연주하지만, 그것을 듣는 우리는 가끔 전람회의 인물화에서 그것을 느끼듯 음악과 우리의 자아가 오버랩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흠칫 놀랄 때가 있다. 인간은 때로 원치 않았던 상황에서 원치 않았던 음악에 연주를 당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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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영애의 파격, <비하인드 타임>(BEHIND TIME)


a 'BEHIND TIME' 자켓사진속의 한영애

'BEHIND TIME' 자켓사진속의 한영애

한영애라는 가수는 몇해 전 5집 <난 다>를 내놓았고, 다섯 번째 음악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가 새삼스럽게도 사람들의 마음을 헤집어 놓기도 했다. 그 바람에 술꾼들은 술잔을 깨나 기울였을 것이다.


봄날은 갔고 이제는 삼복에 장마의 나날들을 보낸다. 얇은 유리창 안쪽에 아무 일 없는 듯 앉아 있던 어느 날, 창밖에 비와 바람은 몰아 치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에 새 아가씨 아롱 젖은 옷자락....

아주 짧은 순간 끝에, 창 밖은 목포항으로 바뀌고, 비바람은 태풍이 되어 출렁이는 배들과 선착장을 세차게 후려친다. 기름진, 아니다 아예 '빠다'가 '쫙'발라진 그 여자의 '다국적 뽕짝'은 장마지던 어느 날 오후, 나를 목포항으로 보내 버리고 말았다.

다음날 우연히 그 노래를 들려주게 된 50 후반의 노신사, 술잔을 단숨에 삼키고 "가슴이 펑 뚫리는 것 같구만" 하면서 한숨 섞인 웃음을 "흐흐허허허" 웃고, 'Pump Up The Volume'이라는 영화의 제목이 떠오르면서 볼륨을 팍팍 올리고 싶어지는 '흥'에 겨워 본다.

그때 우리는 보름날 저녁 옛 논두렁에서 어린아이의 작은 손에 매달려 휘휘 돌려지던 '불깡통'처럼 휘돌려지고 마는 것이다. 그 순간 분명 우리는 음악으로부터 어떤 일을 당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음악에 자아를 강탈당한 기억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삶을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내 자아의 일부를 발견했고 작은 행복을 스치듯 느꼈을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피학성 행복발견 이다.

제목이 있다면 '음악 듣다, 한방에 나가떨어지다' 쯤 될 것이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누군가의 시구에 "옛날에는 돌에 맞아 죽었지만, 요즘 사람들은 매스컴에 맞아 죽는다."라는 대목이 있던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때로 '음악에도 맞아 죽는다.'


a 'BEHIND TIME' 자켓

'BEHIND TIME' 자켓

'뽕짝'이라는 이름의 무기에 '감전사'당해 본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인생은 한 두 언덕들을 넘고 있음도 의미한다. '부웅' 소리내며 떠올랐던 마음은 음악이 끝나고 나면, '툭'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추락하고, 곧바로 우리는 1mm의 오차도 없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남아 있는 '나'로 되돌아온다.

하나, 둘 언덕을 넘어가다 남겨진 필름의 조각들은 한편의 영화를 방불케 할 것이다. 영화를 만들고도 남을 만큼의 길이가 되는 필름들….

끊겼다가도 이어지는 필름 조각들은 장마의 빗방울들이 그랬듯이 해가 뜨면 혹은 음악이 끝나면 추억이라는 이름의 회로에 남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아도 작은 폭발의 흔적을 남기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제자리에 남아 있을 것이다.

일제시대, 6·25, 빨치산, 때로 생각하기 싫지만 지울 수 없는 흔적들을 고스란히 품어 안고 있는 약 80년 역사의 SP로부터 시작되는 가요사, 한영애라는 가수는 거기에 작으나마 욕심을 부리고 있어 보인다.

그러나 59년생의, 40대 중반의 기름진 목소리를 가진 그녀에게는 남기고 싶은 발자취일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오래도록 한 목소리로, 꾸준한 모습을 보여 주는, 한국의 대표가수의 한사람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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