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다섯 식구 잠자는 풍경

박철의 <느릿느릿이야기>

등록 2003.07.21 07:18수정 2003.07.2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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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딧줄과 넝쿨이. 아딧줄이 욕심 사납게 사탕을 혼자 먹는다.

아딧줄과 넝쿨이. 아딧줄이 욕심 사납게 사탕을 혼자 먹는다. ⓒ 느릿느릿 박철

어제 몸살로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고생하고 있는데 아내가 내 방에 들어와서 킥킥하고 웃습니다. "이 여자가 미쳤나? 무슨 일이길래 지금 남편은 아파 죽겠는데.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웃냐?"고 했더니 아내가 이럽니다.

“내가 방금 애들 방에서 인터넷 하다 나왔잖아. 그런데 넝쿨이는 끝 방에 가서 시험공부하고, 아딧줄은 교육관에 가서 공부하고 있고, 은빈이는 안방에서 숙제하고 있고 당신은 아프다고 하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안 웃겨요? 온 집안 식구들이 다 뿔뿔이 흩어져서 이산가족처럼 살고 있으니, 좀 붙어 있으면 안되나?”


우리 집은 교육관을 수리해서 목사 사택으로 사용하다 보니 방이 많습니다. 겨울에는 난방비를 아끼느라 방을 다 사용할 수는 없지만, 난방비 걱정할 필요 없는 여름철에는 모든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저녁시간을 보냅니다. 책벌레 넝쿨이는 끝방에 가서 열심히 책을 읽고 은빈이는 이방 저 방 옮겨 다니면서 참견을 하다 오빠들한테 야단을 맞고 징징거리곤 합니다.

아내는 요즘 애들 방에 들어가서 인터넷 웹서핑을 열심히 하다 잘 때쯤 나타납니다. 아딧줄은 가장 넓은 소예배실(새벽기도회실 겸 식당)에 가서 밥상을 펴놓고 공부를 하다 역시 잘 때 나타납니다. 나는 그 시간에 신문을 보거나 <느릿느릿 이야기> 답글을 답니다.

우리집은 저녁 9시 30분 경 잠자리에 듭니다. 아이들 시험기간 빼놓고는 일찍 자는 편입니다. 나는 저녁 9시만 되면 잠이 쏟아져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아내와 은빈이가 내 방으로 건너와 같이 잠자리에 듭니다.

그리고 사내 녀석들은 자기들 방에서 안자고 안방에 들어와 잡니다. 내 방에도 모기장을 치고, 애들이 자는 안방에도 모기장을 치고 잡니다. 그런데 한참 자다보면 사내 녀석들이 다 내 방에 들어와 자고 있는 것입니다. 넓은 안방을 두고 내방에 들어와 자는데,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면서 발길질을 하지 않나, 갑자기 벌떡 일어나 잠꼬대를 하질 않나 가관입니다.

a 작년 여름휴가 중 가평에서.

작년 여름휴가 중 가평에서. ⓒ 느릿느릿 박철

넝쿨이는 모기장을 둘둘 말고 자는 바람에 모기가 모기장 안으로 들어와 모기에 물리기도 합니다. 내가 어느 때는 너무 좁게 자느라고 편히 못 자서 애들한테 야단을 칩니다.
“야 이놈들아, 너희들 때문에 아빠가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 왜 너희들 방 놔두고 아빠 방에 들어와 자는 거야? 아빠는 너희들 때문에 이러단 눌려 죽겠다. 내일부터 다 따로 자란 말이야! 알았지?”


마지못해 “네” 합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 내 방에서 아내와 은빈이랑 셋이서 자고, 넝쿨이는 안방에서 아딧줄은 자기 방에서 잠을 잡니다. 그런데 한참 자다보면 어느 틈엔가 사내 녀석들이 내 방에 들어와 내 배에 다리를 걸쳐놓고 자고 있는 것입니다. 불을 켜고 보면 그것도 두 녀석이 내 이부자리에 한데 얽혀 자는데 꼴이 말이 아닙니다.

아딧줄은 엉덩이가 얼마나 큰지 꼭 함지박 만하게 징그럽습니다. 넝쿨이는 여전히 모기장을 둘둘 말고 자고 있습니다. 애들이 처음에는 따로 자다가 오줌 누러 일어나서 화장실에 갔다가 다 내 방으로 들어와 자는 것입니다. 겨울이고 여름이고 우리 집은 식구들이 자는 모습은 그야말로 진풍경입니다.


a 3년전 은빈이와 넝쿨이. 넝쿨이 머리는 내가 이발기계사서 처음으로 시도한 첫 작품이었다.

3년전 은빈이와 넝쿨이. 넝쿨이 머리는 내가 이발기계사서 처음으로 시도한 첫 작품이었다. ⓒ 느릿느릿 박철

우리집 식구 사정을 잘 아는 후배 목사부인이 우리집 식구들은 <코스비가족>이라고 합니다. 싸우기도 잘하고 웃기기도 잘하고 또 뭉치기도 잘한다고 그렇게 부릅니다.

시골에서 오래 살다보니 염소들의 특징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염소들은 추운 겨울에는 서로 떨어져서 자고, 더운 여름에는 서로 몸을 맞대고 잠을 잡니다. 참 미련하지요. 우리집 식구들은 염소도 아니고, 추우나 더우나 한방에서 자야 할 일이 없는데, 아직까지 한 방에서 뭉쳐서 자야 하는 까닭을 도통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아내가 "꼭 피난살이하는 것 같다"고 해서 같이 웃기도 했습니다.

다 자란 아이들이 조금 징그럽기도 하지만, 그러나 우리집 다섯 식구들이 서로 한데 뭉쳐 잠을 자는 것이 싫은 것은 아닙니다. 가족끼리 깊은 사랑의 연대감을 갖게 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 내 사랑하는 피붙이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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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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