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근처 살 붙는 소리가 요란하다

[까탈이의 세계여행] 라오스 여행기 4 - 폰사반

등록 2003.07.31 19:17수정 2003.08.01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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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차이나 전쟁 때 폭격을 맞아 부서진 불상. 윙크하는 눈을 가진 부처님.
인도차이나 전쟁 때 폭격을 맞아 부서진 불상. 윙크하는 눈을 가진 부처님.김남희

인도차이나 전쟁 때 주요 폭격 대상지였던 폰사반에는 이렇게 전쟁의 잔해들을 일상에 이용한 경우가 많다. 내가 머물렀던 빈통 게스트 하우스의 간판.
인도차이나 전쟁 때 주요 폭격 대상지였던 폰사반에는 이렇게 전쟁의 잔해들을 일상에 이용한 경우가 많다. 내가 머물렀던 빈통 게스트 하우스의 간판.김남희
지난 밤, 바람이 얼마나 거세게 불던지 얇은 이불만으로는 추위가 느껴질 정도였다. 루앙프라방에서 열흘을 머문 후 다시 짐을 챙겨서 폰사반으로 떠난다. 8시 폰사반 행 버스표를 끊고, 주변 식당에서 사온 샌드위치와 우유로 아침 식사를 한다.

라오스로 넘어온 후 처음 타 보는 진짜 버스다! 그동안 내내 트럭만 타고 다녔는데, 버스를 타다니. 에어컨도 없고, 우리나라에서 70년대에나 굴러다녔을 것 같은 낡은 현대차이지만 버스를 탄다는 것만으로 기쁘다.


찌그러지고, 이것저것 떨어져 나간 낡은 버스 안에는 세 대의 선풍기가 천장에 매달려 있다. 사람과 짐으로 발 디딜 틈조차 없이 가득 차기는 버스나 트럭이나 마찬가지다.

폰사반으로 가는 버스는 내내 고지대의 산들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달린다. 도로변으로는 초가를 인 작은 집들이 늘어선 마을이 점점이 이어진다. 어떻게 이렇게 위태롭게 도로와 절벽 사이에 집을 짓고 살 수 있는지 신기하다.

산 사이의 좁은 도로를 곡예 하듯 빠져 나오니 넓은 구릉지대가 이어진다. 폰사반에 도착하니 4시. 12시간 걸린다기에 바짝 긴장하고 있었는데 8시간밖에 안 걸렸다.

도로변의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인 항아리평원을 어떻게 갈지 알아본다. 비수기라 그런지 대여섯 군데의 볼 만한 곳을 묶어서 하는 일일 투어가 4명 이상이면 5달러에 가능하다고 한다. 숙소의 외국 아이들을 모아 네 명을 만들어 투어를 신청한다.

눈을 뜨니 6시 반이다. 지난 밤 내내 쥐들이 천장을 뛰어다니는 소리에 얼마나 놀랐는지. 쥐들이 모기장을 뚫고 내 얼굴로 떨어지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새벽을 맞았다. 라오스에서는 방갈로에서 팔뚝만한 쥐를 봤다는 등, 박쥐가 날아다녔다는 등의 이야기들이 전설처럼 이어지는데 결코 전설이 아닌 사실이다.


에이미 역시 "너, 밤새 쥐들 뛰어 다니는 소리 들었니?"라고 묻는다. 우리는 서둘러 씻고 가방을 챙긴다.

7시에 시작한 투어의 일행은 에이미와 나, 프랑스에서 온 캐서린과 캐나다인 조, 이렇게 4명. 우선 시장에 가서 아침거리와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고, 항아리 평원 site 1으로 출발한다.


항아리 평원 사이트 1에 펼쳐진 항아리들. 항아리 속에서 사람의 이빨과 뼈, 옷가지 등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항아리 평원 사이트 1에 펼쳐진 항아리들. 항아리 속에서 사람의 이빨과 뼈, 옷가지 등이 발견되었다고 한다.김남희

넓은 평원에 도착하니 수많은 항아리들이 평원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다. 이 사이트에 흩어져 있는 항아리의 수는 334개
넓은 평원에 도착하니 수많은 항아리들이 평원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다. 이 사이트에 흩어져 있는 항아리의 수는 334개김남희

항아리 평원 사이트 2에서 바라보는 풍경. 이 돌 항아리들의 무게는 보통 600킬로그램에서 1톤까지 나가는데 가장 큰 항아리는 무게가 무려 6톤.
항아리 평원 사이트 2에서 바라보는 풍경. 이 돌 항아리들의 무게는 보통 600킬로그램에서 1톤까지 나가는데 가장 큰 항아리는 무게가 무려 6톤.김남희

넓은 평원에 도착하니 수많은 항아리들이 평원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다. 이 사이트에 흩어져 있는 항아리의 수는 334개란다. 이 돌 항아리들의 무게는 보통 600키로그램에서 1톤까지 나가는데 가장 큰 항아리는 무게가 무려 6톤이나 나간다고 한다.

누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는지 아무 것도 정확히 밝혀진 적 없는 항아리들. 라오스 인류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B.C. 5세기, 약 2500년 전에 장례용으로 만든 항아리들이라고 한다.

항아리 속에서 사람의 이빨과 뼈, 옷가지 등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어떤 항아리는 돌로 된 뚜껑도 가지고 있다.

푸른 초원에 흩어진 항아리들의 그림자와 몇 그루 나무들, 그 근처를 놀라움으로 서성이는 우리들. 흰 구름이 흘러가는 푸른 하늘과 산들바람, 초원의 적막. 경이와 놀라움 속에 한참을 서성이다 가이드의 재촉을 받고서야 우리는 차로 돌아온다.

인도차이나 전쟁 때 집중 폭격을 받아 황폐하게 부서진 몇 개의 불탑과 절이 남아 있는 무앙 쿤을 둘러본 후, 몽(hmong) 마을에 들린다. 이 부족은 여러 명의 아내를 둘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들른 집도 두 명의 아내와 열 두 명의 아이가 있는 집이다.

폰사반 주변의 작은 마을.
폰사반 주변의 작은 마을.김남희

시엥 쿠앙 지방의 옛 수도였던 무앙 쿤에는 절과 탑들이 폐허로 남아 있다.
시엥 쿠앙 지방의 옛 수도였던 무앙 쿤에는 절과 탑들이 폐허로 남아 있다.김남희

집으로 들어가니 가장은 들일을 나갔는지 보이지 않고, 좁은 집 안에는 아이들이 바글거린다. 대충 아이들을 세어봐도 10명에 가깝다. 판자로 얼기설기 지은 집 안에는 가구라고 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아이들은 때에 절은 낡은 옷을 입고 비닐 봉지 따위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논다.

이렇게 가난한 살림살이에 제대로 배우지도, 입히지도, 먹이지도 못할 거면서 어쩌자고 아이들은 이렇게 많이 낳았는지 괜히 내가 안타깝다. 하지만 이 모든 판단조차 어리석은 내 생각일 수도 있다.

없이 살고, 배우지 못하고, 도시의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없이도 어쩌면 그들은 행복하게 일상을 영위할지도 모르는데.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놀다가 나와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한다.

site 2에 도착하니 11시 반. 이곳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을 나무 그늘에서 먹는다. 망고와 시장에서 산 빵, 그리고 바나나가 점심이다. 서늘한 나무 그늘에서 2500년이 된 돌 항아리를 눈앞에 두고 먹는 점심.

마치 내가 이 항아리 안에 묻힐 누군가의 장례를 치르러 와 있는 것 같다. site 3까지 다 둘러보고 차에 오르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숙소로 돌아오니 3시. 양철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요란하다. 비가 그친 후 에이미, 루앙프라방에서 만난 일본인 코헤이와 그린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다. 송탐(그린 파파야 샐러드)으로 밥 한 그릇을 다 먹고 돌아오는 길에 또 바나나 팬 케잌을 사서 깨끗이 비우고 들어오는 우리들의 놀라운 식욕.

허리 근처에 살 붙는 소리가 요란하다.

두 명의 아내에게서 12명의 아이를 둔 몽 마을의 어느 집.
두 명의 아내에게서 12명의 아이를 둔 몽 마을의 어느 집.김남희

항아리 평원 사이트 2에서 바라보는 풍경.
항아리 평원 사이트 2에서 바라보는 풍경.김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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