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터미널에서 우리는 또 당했다

[까탈이의 세계여행] 라오스 여행기 3 - 무앙노이

등록 2003.07.24 01:22수정 2003.07.2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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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사에서 무앙쿠아까지 운행하는 슬로우 보트의 모습.
핫사에서 무앙쿠아까지 운행하는 슬로우 보트의 모습.김남희
퐁살리에서 사흘을 머무른 후 다시 짐을 꾸린다. 다음 목적지는 '배낭족들의 휴식처'라는 무앙노이다. 무앙노이로 가기 위해서는 퐁살리에서 트럭을 타고 핫사로 이동한 후 다시 배를 타야한다.

핫사로 가는 버스터미널에서 우리는 또 당했다. 6시 반에 터미널에 나가 표를 사며 언제 출발하느냐고 물었더니 1번부터 25번까지 번호가 적힌 종이를 보여주며 다 차면 간다는 것이다.


당연히 버스 좌석번호라 여긴 우린 안심하고 옆의 식당으로 아침을 먹으러 갔다. 아침을 먹고 와보니 '버스'가 아닌 '트럭'은 이미 발판까지 사람과 짐으로 가득 찼다. 결국 또 트럭 뒤에 서서 간다!

라오스에서는 트럭 운전사나 보트 운전사가 아내와 아이들을 태우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아내들은 운전을 하는 기사의 말벗도 되어주고, 돈을 걷거나, 짐을 싣고 내리는 잔일도 맡아한다. 우리 트럭도 아내가 함께 타서 남편의 일을 거드는데 그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외국인이 탄 슬로우 보트를 향해 "사바디(안녕)" 인사를 건네는 강변의 아이들.
외국인이 탄 슬로우 보트를 향해 "사바디(안녕)" 인사를 건네는 강변의 아이들.김남희

반나 마을에서 만난 벌거숭이 아이. 공처럼 둥글게 볼록 솟은 배.(왼쪽) / 전통적인 방식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한 아버지. 영어로 슬링이라 부르는 이 포대기는 직사각형 모양의 천으로 묶는 위치에 따라 자유롭게 아이의 위치를 바꾸며 업거나 안을 수 있다. 원래는 이렇게 남미나 동남아시아의 소수부족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사용해 온 전통적인 포대기이다.
반나 마을에서 만난 벌거숭이 아이. 공처럼 둥글게 볼록 솟은 배.(왼쪽) / 전통적인 방식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한 아버지. 영어로 슬링이라 부르는 이 포대기는 직사각형 모양의 천으로 묶는 위치에 따라 자유롭게 아이의 위치를 바꾸며 업거나 안을 수 있다. 원래는 이렇게 남미나 동남아시아의 소수부족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사용해 온 전통적인 포대기이다.김남희
핫사까지는 한 시간이 채 안 걸리는 거리인데 검문을 하느라 40분 넘게 지체한다. 라오스북부에서는 이렇게 차를 세우고 검문을 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는데 보통 꼼꼼하게 검문을 하는 게 아니다.

외국인들은 그 검문에서 면제가 되지만 라오스 사람들은 짐을 두고 버스에서 내린 후 작은 핸드백까지 다 열어 보이며 철저하게 검색을 당한다. 그 사이 또 다른 경찰은 차에 올라 사람들의 엄청난 짐 보따리를 눌러도 보고, 열어도 보며 일일이 검색을 한다.

뭘 찾는 거냐고 물었더니 마약류 같은 약도 찾고, 기타 여러 가지 불법 소지물을 검색하는 거라고 한다. 오늘 우리 트럭에서는 장총을 분해해서 들고 탄 청년 때문에 그 총의 허용여부를 놓고 경찰들 간에 장시간의 토론이 벌어졌다. 결국 다들 하릴없이 앉아서 그 청년이 벌금을 물고, 총을 돌려 받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거의 두 시간 만에 핫사에 도착해 보트로 갈아탄다. 슬로우 보트와 스피드 보트 두 가지 중 배낭족들이 선택하는 건 언제나 슬로우 보트다.가격도 물론 슬로우 보트가 싸지만 그보다는 풍경을 즐기며 갈 수 있는 데다 스피드 보트에는 없는 햇볕 가리개용 천막까지 있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슬로우 보트를 타게 된다.


무앙쿠아 마을의 절에서 예불을 드리고 있는 청소년들.
무앙쿠아 마을의 절에서 예불을 드리고 있는 청소년들.김남희

강변에서 벌거벗고 수영을 하던 여자 아이들이 외국인이 탄 보트가 지나가자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강둑으로 올라섰다.
강변에서 벌거벗고 수영을 하던 여자 아이들이 외국인이 탄 보트가 지나가자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강둑으로 올라섰다.김남희
'slow boat'는 결코 느리지 않은 속도로 달린다. 엔진의 엄청난 소음만 빼면 그런 대로 괜찮을 텐데... 강가에는 고기 잡는 어부들과 헤엄치는 아이들이 보이고, 강변을 따라 작은 부락들이 모여있다. 물가의 집들은 대부분 초가로 지붕을 얹은 집들이다.

9시 30분에 출발한 보트는 2시 무렵 무앙쿠아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이곳에서 하루를 쉬고 다시 내일 보트를 타야 한다. 숙소를 잡고 샤워, 빨래를 하고 은행을 찾아간다. 이 마을에 하나뿐인 은행은 그 모습부터가 아주 재밌다.


은행 간판은 나무판자에다 손으로 삐뚤빼뚤 써 붙였다. 직원이라고는 단 한 사람. 컴퓨터 같은 것은 전혀 없고, 문을 반쯤 열어놓은 금고 하나가 집기의 전부다. 라오스는 전산화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은행 업무가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현금인출기는 라오스 전체에 단 한 대도 없고, '카드 인생' 같은 사회적 문제도 당연히 없다. 소비 수준이 행복의 수준인 양 지출을 종용하지 않고, 사려고 해야 살 물건도 없고, 쓸려고 해야 큰 돈 쓸 일도 없이, 모두가 고만고만하게 살아가는 이 사회가 부럽다.

슬로우 보트의 내부. 책을 읽고 있는 친구는 에이미.
슬로우 보트의 내부. 책을 읽고 있는 친구는 에이미.김남희

무앙노이 강변에 위치한 닝닝 게스트 하우스. 이런 형태의 방갈로는 방 하나 당 우리 돈 1000원에 얻을 수 있다.
무앙노이 강변에 위치한 닝닝 게스트 하우스. 이런 형태의 방갈로는 방 하나 당 우리 돈 1000원에 얻을 수 있다.김남희
무앙쿠아는 저녁 6시 반부터 10시 반까지만 전기가 들어온다. 그러니 가장 더운 시간에는 선풍기를 쓸 수도 없다. 10시가 넘으면 갈 데도 없고, 할 일도 없어 잠자리에 드는 수밖에 없다.

숙소에서 만난 덴마크 남자, 영국 여자와 넷이서 저녁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 청소년들이 은색과 금색의 바구니 같은 것을 하나씩 들고 어딘가로 향하기에 따라 가니 작은 절이 나온다. 청소년들이 예불 드리는 것을 구경하고 돌아와 잠자리에 드니 기다렸다는 듯 전기가 나간다.

새벽부터 울어대는 온 동네 닭들 때문에 일찍 깼다. 퐁살리에서는 선전용 마을 스피커가 새벽부터 사람을 깨우더니 여기는 닭들이 그 역할을 한다. 파인애플과 빵으로 아침을 먹고 7시 좀 넘어 부두로 나와 배를 타려 하니 손님이 우리 셋밖에 없어서 못 가겠단다.

원래 가격의 두 배인 일인당 10달러를 내야지 가겠다나. 10불씩 내고 가자는 뱃사공을 무시하고 강변에 주저앉아 다른 손님을 기다린다. 결국 10시까지 기다려서야 서너 명의 손님을 더 채운 배가 시동을 건다.

이 마을에 하나뿐인 빵집. 화덕에서 따끈하게 데운 바게트 빵을 들어보이며 웃는 빵집 주인 아줌마.
이 마을에 하나뿐인 빵집. 화덕에서 따끈하게 데운 바게트 빵을 들어보이며 웃는 빵집 주인 아줌마.김남희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 나무로 만든 골대에는 그물도 없다.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 나무로 만든 골대에는 그물도 없다.김남희
무앙 노이를 30분쯤 남겨 놓고부터 갑자기 눈앞에 기묘한 형상의 산들이 나타나더니 풍경이 놀랄만큼 다양해진다. 이 구간이 보트여행의 절정이라더니 그 말이 맞다.

무앙 노이는 산과 강에 둘러싸인 작고 평화로운 마을이다. 전화도 없고, 차도 없고, 은행과 우체국도 없는 정말 작은 마을. 이 마을을 외부세계와 연결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은 통통배이다.

전기는 자가발전기를 가진 집에서나 저녁나절 잠깐 공급될 뿐이다. 그런데도 게스트하우스는 거의 10개나 되고 식당도 많은 건 수많은 배낭족들이 휴식을 위해 이 작은 마을을 찾기 때문이다.

배에서 내리니 그물 침대에 누워 책을 읽거나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배낭족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나도 물가의 닝닝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푼다.

등나무와 초가로 만든 방갈로는 방 한 칸에 우리 돈 천 원. 방 안에는 침대 하나와 작은 탁자, 그리고 모기장이 전부다. 토마스는 같은 배를 타고 온 영국인 친구와 방을 쓰고, 나는 드디어 혼자가 된다. 오랜만에 혼자 방을 쓰니 행복하다.

병뚜껑으로 장기를 두는 아이들.
병뚜껑으로 장기를 두는 아이들.김남희

깨금발로 흙바닥에 그려진 선을 따라 뛰며 놀고 있는 아이들. 우리가 어렸을 때 하고 놀던 놀이와 똑같다. 그 옆에는 어린 동생을 돌보느라 구경만 해야 하는 또 다른 아이가 있다.
깨금발로 흙바닥에 그려진 선을 따라 뛰며 놀고 있는 아이들. 우리가 어렸을 때 하고 놀던 놀이와 똑같다. 그 옆에는 어린 동생을 돌보느라 구경만 해야 하는 또 다른 아이가 있다.김남희
온 동네를 흔드는 북소리와 노랫소리에 깨니 새벽 3시다. 한 사람이 선창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노래를 따라하며 동네를 돌아다닌다. 마을에 아픈 사람이 있어 불상을 새로 만들어 절에 안치하는 의식이란다.

그 의식이 끝난 후에는 닭들이 울어대기 시작해서 또 잠을 설친다. 방안을 푸드덕거리며 돌아다니는 정체 모를(아마도 박쥐같다) 존재 때문에 모기장 밖으로도 못 나오고... 이래저래 잠을 설치고 6시에 일어나 오믈렛과 바게뜨로 아침 식사.

이 작은 마을에서는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쉬고, 그물 침대에 누워 빈둥거리고, 강변의 식당에서 책을 읽는 일이 전부다. 대부분의 배낭족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오직 쉬기 위해 이 마을을 찾는다.

쉬는 것마저 지겨워지면 몸을 움직여 근처의 동굴과 마을로 트레킹을 다녀온다. 토마스와 에이미, 나도 근처 반나 마을과 탐캉 동굴로 하이킹을 간다. 중간에 조금씩 비가 내리지만 걷는 즐거움을 훼손할 정도는 아니다.

반나 마을에서 점심 먹고 쉬다가 돌아오니 오후 3시. 샤워하고 그물 침대에 누워 책을 펼친다. 잠시 후 닝닝 게스트 하우스의 장기인 야채 카레가 준비되어 어린 닝닝이 나를 부르러 올 때까지.

반나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
반나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김남희

창문 안에서 외국인들을 염탐하는 어린이.
창문 안에서 외국인들을 염탐하는 어린이.김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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