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벼락을 따라 심어진 꽃들.김남희
이럴 줄 모르고 아침에 산 바게트는 그 자리에서 다 먹었으니 꼼짝없이 굶게 생겼다. 그 사이 사람들은 비닐 봉지를 하나씩 주섬주섬 푸르더니 한 곳에 모여 상을 차리고, 망연자실한 채 서 있는 토마스와 나를 부른다.
후다닥 달려가니 먹을 거라곤 찰밥 덩어리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생선구이, 그리고 소금과 고춧가루를 섞은 매운 양념에 뿌려 먹는 죽순이 전부다. 젓가락도 없고, 수저도 없다. 손으로 밥을 한 덩어리 뜯어서 입에 넣고, 다시 또 손으로 생선을 움켜쥐고 먹는다.
그래도 덜컹거리는 도로를 흔들리며 와서인지 배가 고파 잘도 넘어간다. 권하는 대로, 손에 쥐어주는 대로 덥석덥석 잘도 받아 먹는 나. 염치도 없이 내 밥처럼 배부르게 먹고 나니 트럭은 다시 달린다.
그 사이 거센 소낙비가 쏟아져 트럭 옆의 가리개천을 내리고, 지붕 위에 탔던 사람들이 트럭 안으로 피신을 오는 등 한바탕 난리를 치른다. 마침내 5시가 넘어 버스는 우리를 퐁살리에 내려놓는다.
퐁살리는 라오스 북쪽 산간지역의 작은 도시이다. 고도가 높은 산각지역이라 저녁이면 긴 팔 옷을 입어야 할 정도로 기온이 내려간다. 그렇기에 더운 물 샤워가 되는 숙소를 찾아 온 마을을 헤매고 다닌다. 마침내 더운 물 샤워가 가능한 숙소를 찾아내 40000킵(우리 돈 4000원)에 방을 얻는다.
이렇게 최소한의 짐만으로 여행을 다닌다는 건 없이 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일텐데, 나는 어쩌면 이렇게 그 배움의 길에서 늦된 아이일까? 주어진 여건에서는 늘 좀더 나은 것을 얻으려 하고, 방을 구하는데도 겉꾸밈에 혹해 버리곤 하니.
그러고선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고, '하루 이틀 다닐 것도 아닌데 이왕이면 싼값에 깨끗한 곳에서 자야지'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런 내가 때로는 진저리나게 싫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런 모습조차 내가 보듬어 끌어안고 가야하는 나임을 알기에 미워하지 않기로 한다.
저녁을 먹고 들어와 샤워하고 빨래를 한다. 아무리 헹구어도 옷에서는 붉은 흙탕물이 계속 우러난다. 빨래하느라 남은 힘을 모두 소진하고 잠자리에 든다. 길고도 힘들었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