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속여도 내 눈은 못 속여"

[새벽을 여는 사람들 35]한강시민공원사업소 김기현씨

등록 2003.08.15 15:19수정 2003.08.16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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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어둠이 찾아오자 한강시민공원사업소에서 근무하는 김기현 씨(46)의 손길이 바빠집니다. 4시간 전에 전해진 '불법 어로 단속' 소식 때문입니다. 비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단속은 자체적으로도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당일 4시간 전에 시간과 장소를 통보합니다. 인천 항만청에서 근무하던 그가 86년 서울시에 발령받아 한강과 함께한 지도 어느덧 17년째입니다.


적발건수는 최근 몇 년 새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 이유를 지난 2001년 강화된 단속법과 한강의 화려한 조경 덕분이라고 설명합니다. 서울시가 관리하는 지역에서는 주낙, 그물 등을 이용하거나, 배를 타고 낚시 하는 것은 모두 불법입니다. 적발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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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빠른 속도로 나아가는 배에서도 그의 시선은 앞과 좌우를 번갈아 향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되지 않기 위해 보트는 불도 켜지 않고 강바람을 가릅니다. 그저 한강다리에서 뿜어 나오는 화려한 조명에 의지할 뿐입니다. 단속업무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무보트를 타고 있는 세 명의 남자를 발견합니다. 그들은 그저 밤에 물놀이를 나왔다고 말하지만, 그가 순순히 놓아줄 리 없습니다.

"배를 훑어보란 말이야. 그냥 내보내지 말고. 고기 담아놓은 박스 있나 없나."

그의 목소리가 높아지더니 아니다 다를까 물고기를 담아놓은 박스가 발견됩니다.

"다른 눈은 속여도 내 눈은 못 속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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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단속에 걸린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단순한 물놀이라며 발뺌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보트를 탄 채 그대로 도망을 가기도 합니다. 때문에 일년에 꼭 두세 번 정도는 추격전이 벌어집니다. 얼마 전에도 고무보트를 타고 달아나는 사람들을 잡으려다 교각을 들이받았습니다. 당시 모두 물에 뛰어들어 다치지는 않았지만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단속업무를 하다 보면 때때로 인명구조를 하기도 합니다. 간혹 자살을 하려고 강에 뛰어든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목숨을 잃은 사람은 어쩔 도리가 없지만 지나가다 뛰어드는 사람들을 발견하면 바로 구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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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한강시민공원사업소 직원들은 4년 전부터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하상청소를 해오고 있습니다. 자원봉사로 시작한 일은 현재 11명의 직원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가시거리가 1미터도 훨씬 못 미치는 물 속으로 산소통을 짊어지고 들어가는 일은 여간 고된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한강에는 음료수 병부터 시작해 가전제품까지 없는 게 없답니다. 농담 삼아 로켓도 있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소수인력으로 하면 얼마나 하겠어요. 하지만 그대로 방치하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정말 별의별 게 다 있어요. 양탄자도 있다니까요. 만약에 땅 속에 박힌 것을 뽑으면 산소통 하나를 다 쓰고도 모자라요. 시민들도 지나가다 그런 것도 있냐고 놀라요. 그러면서 버리면 안 되겠네 그러죠. 저희는 시민들이 그렇게 보고 느끼는 것도 노리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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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86년부터 근무한 그는 그동안 한강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모두 지켜봤습니다. 당시와 비교해 한강의 모습이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깨끗해지고 화려해졌다"고 답합니다.

"처음 왔을 때는 진짜 냄새가 났어요. 배를 타면 이런 구두를 신을 수가 없었어요. 반드시 장화를 신어야 해요. 기름 때문에요. 지금은 예전에 비하면 정말 많이 깨끗해진 거죠. 시민들도 한강을 많이 이용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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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일 년에 한 차례 어종조사를 하기 위해 그물을 쳐놓으면 낚시하는 사람들은 무슨 이유인지도 모른 채 대뜸 그물 때문에 고기가 안 잡힌다고 항의를 합니다. 이럴 땐 그도 맥이 빠지고 화가 납니다. 하지만 그의 곁엔 언제나 그를 지원해주는 가족이 있습니다.

각각 고등학생과 초등학생인 두 딸은 아빠가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으며 자랑스러워합니다. 하지만 그는 매일 일찍 들어오고 늦게 들어오는 덕분에 자주 얼굴을 볼 수 없어 스스로를 빵점짜리 아빠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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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겨울에 한번 나와 보세요. 그럼 힘든지 어떤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을 테니까요."

힘든 점을 묻자, 그가 대뜸 이렇게 말합니다. 하긴 이날은 찌는 듯한 더위와 한바탕 전쟁을 치른 날이었음에도 배에서만큼은 여름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겨울에는 그야말로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전쟁을 치룰 것이란 건 안 봐도 뻔한 일입니다.

날씨와 더불어 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단속에 걸린 사람들의 행패입니다. 사무실로 찾아와 불을 지르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집으로 협박전화를 걸어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원들은 평소 얼굴이 노출되는 것을 꺼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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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이날은 모두 세 건을 적발했습니다. 평균 두 번 나가면 적발 건수가 하나 있는 게 보통인데 좀 많은 편입니다. 보트 낚시를 즐기던 사람들을 두 무리나 적발했고 주막을 발견했습니다. 적발된 사람들은 한강 순찰대 망원초소로 넘겨지고 주막은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모두 폐기 처분됩니다. 그러나 주인이 나타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단속을 나가는 배의 한복판에는 '여기 한강이 있어 우리는 행복합니다'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그는 한강은 우리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한강을 이용하는 시민에게 남기는 말 또한 간단명료합니다.

"깨끗이 합시다. 사랑합시다. 이 두 마디 말고 뭐가 필요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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