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거 집 장독대 옆에 봉숭아 많이 핐제?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104>봉선화

등록 2003.08.25 15:39수정 2003.08.25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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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울 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울 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 이종찬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김형준 작사, 김천애 노래 '봉선화' 모두)

아마도 우리 나라 사람이라면 홍난파가 작곡한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노래는 1920년대, 일제 강점기 시절에 발표되었던 노래이다. 하지만 일제의 억지 주장에 의해, 그러니까 내용이 불건전하다는 이유로 금지되었던 노래이기도 하다.

근데 아무리 이 노래의 가사를 이리저리 뜯어보아도 그들 말처럼 내용이 불건전한 부분은 한 군데도 없는 것 같다. 단지 일제에 짓밟힌 조선인의 슬픈 모습만이 아프게 다가올 뿐이다. 근데 그 당시 우리 나라 사람들은 왜 이 노래를 그리도 많이 불렀을까.

아마도 이 노래의 가운데 구절에 있는 "길고 긴 날 여름철", 그러니까 해방의 그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길고 긴 날 여름철에 봉선화가 아름답게 활짝 피어나듯이 그때가 되면 우리 나라도 일제의 사슬에서 풀려나 해방된 조국에서 마음껏 놀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런 희망, 그 희망이 이 노래 속에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리라.

"얘~"
"와 또?"
"너거 집 장독대 옆에 봉숭아 많이 핐제?"
"쎄 벌린 기(널린 게)봉숭아 아이가. 근데 와?"
"그중에 분홍색 꽃 좀 따온나."
"와? 또 손톱 이쁘게 물들이가 누구로 홀리라꼬 그라노?"


그래. 내가 태어나 자란 마을, 60여 호 남짓한 우리 마을 곳곳에는 봉선화가 참으로 많이 피어나 있었다. 그 봉선화는 '봉선화' 노래처럼 울 밑에도 군데군데 피어나 있었고, 집집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독대 옆에도 참으로 많이 피어나 있었다.

봉선화는 주로 초여름에 빨강, 보라, 주홍, 자주, 하양 꽃망울을 매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가을이 제법 깊어갈 때까지도 아름다운 꽃망울을 줄줄이 매달았다. 또한 그렇게 계속해서 피어나는 봉선화의 꽃대 위에서는 계속 꽃망울이 매달리고 있었지만, 꽃대 아래 쪽에서는 이미 씨앗을 담은 꼬투리가 줄줄이 매달리기 시작했다.


봉선화 꼬투리는 처음에는 꽃이 진 자리에 깨알 만한 크기의 새파란 꼬투리가 매달리기 시작하다가 점점 커져 제법 우리들 새끼 손가락 마디 만해지면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또한 그 때 노오란 봉선화 열매 꼬투리에 손가락만 살짝 갖다 대어도 이내 꼬투리가 터져 갈색 씨앗이 여기저기 튕겨져 나갔다.

봉선화. 그래. 표준어는 봉선화가 맞다. 하지만 당시 우리 마을에서는 수염 허연 할아버지에서부터 코흘리개 어린애까지 누구나 봉선화를 '봉숭화' 혹은 '봉숭아'로 불렀다. 나 또한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교과서에 나오는 봉선화는 우리들이 부르는 '봉숭아'가 아닌 다른 꽃인 줄 알았다.

a 봉숭아 꽃물 예쁘게 물들이던 그 가시나는 지금 어디 살고 있을까

봉숭아 꽃물 예쁘게 물들이던 그 가시나는 지금 어디 살고 있을까 ⓒ 이종찬

"니, 퍼뜩 가서 봉숭아꽃 좀 따 온나. 그 중에서 흰 꽃만 골라서 따오야 한다. 알것제?"
"와 예? 또 누가 아풉니꺼?"
"산수골 할매가 인자 죽을 때가 되었는강, 신경통에다 허리가 디기(매우) 아푸단다. 그 병에는 봉숭아 흰 꽃이 그만이거덩."

우리 마을 어르신들은 봉숭아꽃 중에서도 흰꽃을 약재로 사용했다. 특히 남자들보다 여자들의 몸이 아플 때 주로 사용했다. 하지만 흰꽃이 아닌 다른 색깔을 지닌 봉숭아꽃들은 독이 들어 있다며 일체 약재로 쓰지 않았다.

이는 뒤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 마을 사람들이 봉숭아꽃을 장독대나 울 밑에 많이 심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봉숭아는 예로부터 못된 귀신이나 질병을 쫓는 식물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내가 어릴 적에도 봉숭아를 심어둔 그 주변에서 뱀이나 벌레 등을 발견한 일은 한번도 없었다.

"아나?"
"우와! 너거 집에는 보라색 봉숭아가 이리도 많이 피었더나? 나중에 이 봉숭아 꽃씨도 좀 받아주라. 우리 집에는 흰 색깔뿐이거덩."

우리들은 봉숭아 꽃씨가 싹을 틔워 어느 정도 자라면 봉숭아 줄기만 바라보고도 이 봉숭아가 앞으로 무슨 색깔의 꽃을 피울 것인지 미리 알았다. 봉숭아 줄기 아랫부분을 잘 살펴보면 줄기마다 여러 가지 색깔이 칠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중 줄기 아랫부분에 아무런 색깔도 없는 것이 바로 흰 봉숭아였다.

"그라모 올 가실(가을)에 너거 집 봉숭아 씨앗캉 우리 집 봉숭아 씨앗캉 바까뿌자."
"와?"
"흰 봉숭아 씨앗을 뿌싸가(가루 내어) 잇몸에 바르모 이가 잘 빠진다 카더라."
"니 그거 바를 때 억수로 조심해야 된다카이. 그거 잘못 바르다가는 할매처럼 이빨이 다 빠지는 수도 있다 카더라."

그랬다. 당시 어머니께서는 육고기나 생선을 삶을 때에도 간혹 흰 봉숭화 꽃씨를 몇 개 뿌리기도 했다. 봉숭아 씨앗을 넣으면 고기살이 연해지고 고기뼈가 물렁물렁해진다면서. 또한 애기를 낳을 때에도 산모에게 흰 봉숭아 꽃씨를 빻아 먹였고,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이 밥상에 오른 생선을 급히 먹다가 생선가시가 목에 걸렸을 때에도 이 꽃씨 가루를 먹으면 금새 괜찮아지기도 했다.

"아나?"
"그기 뭐꼬?"
"니가 좋아하는 보라색 봉숭아 꽃씨다."
"…니…내가 싫나?"
"???"
"니 봉숭아 꽃말이 뭔지 아나? 낼로 건드리지 마라 카는 기다. 그라이 니가 주는 이 꽃씨로 내가 받으모 인자부터 니캉 내캉 빠이빠이 하는 기다."

그날, 그 가시나는 내가 내미는 보라색 봉숭아 꽃씨를 끝내 받지 않았다. 나 또한 그 가시나에게서 끝내 흰 봉숭아 꽃씨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 가시나는 그때 내가 따 준 보라색 봉숭아 꽃잎으로 곱게 물들인 예쁜 손톱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때부터 나는 그 가시나의 손톱에서 보라색 봉숭아 꽃물이 빠질 때까지 그 가시나를 한번도 만날 수가 없었다.

봉선화. 그래. 이 꽃에는 슬픈 전설 두 가지가 숨겨져 있다.

때는 삼국시대. 백제 땅에서 살고 있었던 한 여인이 선녀로부터 봉황 한 마리를 받는 꿈을 꾼 뒤 어여쁜 딸을 낳았다. 그 여인은 딸의 이름을 꿈에서 본 봉황과 신선이라는 글씨에서 각각 한 자를 따내서 봉선(鳳仙)이라고 지었다.

봉선이는 자라면서 거문고를 너무나 잘 뜯었다. 마침내 봉선이의 거문고 솜씨는 왕궁에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임금님의 앞에서 거문고를 뜯은 그날, 궁궐에서 돌아온 봉선이는 갑자기 몸이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병석에 드러눕고 말았다.

그런 어느 날, 임금님의 행차가 봉선이의 집 앞을 지나간다는 말을 들은 봉선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있는 힘을 다해 거문고를 뜯기 시작했다. 그 거문고 소리를 들은 임금님은 마침내 봉선이의 집으로 행차했다. 그때 거문고를 뜯는 봉선이의 손에서는 붉은 피가 동글동글 맺혀 떨어지고 있었다.

a 봉선화는 봉숭아, 봉숭화로 불리기도 한다

봉선화는 봉숭아, 봉숭화로 불리기도 한다 ⓒ 이종찬

그 모습을 바라본 임금님은 봉선이를 몹시 애처롭게 여겨 무명천에 백반을 싸서 봉선이의 손가락을 싸매주고 길을 떠났다. 그리고 얼마 뒤, 봉선이는 결국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이듬 해, 봉선이의 무덤에서는 생전 처음 보는 빨간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 빨간 꽃으로 손톱을 물들이기 시작했고, 봉선이의 넋이 화한 꽃이라 하여 '봉선화'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 한가지.

아주 오래 먼 옛날, 아름다운 여인이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살고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아내가 너무나 아름다운 나머지 늘 불안해 하다가 마침내 의처증에 걸리고 말았다. 그때부터 남편의 심한 의처증을 견디다 못한 여인은 급기야 남편에 대한 항거와 결백의 표시로 자결을 하고 말았다.

그해 여름, 그 여인이 자결한 자리에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꽃의 씨앗을 감싼 주머니가 바람만 살짝 불어도 저절로 터져 녹색 씨앗이 여기저기로 툭툭 튕겨져 나갔다. 사람들은 그때부터 그 꽃 이름을 봉선화라 불렀고, 씨앗주머니를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터지는 것은 그 여인이 자신의 몸에 손을 대지 말라는 그런 뜻이 숨겨져 있다고 전하기 시작했다.

"얘~"
"어! 니가 우짠 일고? 요새는 내가 싫어졌는가 아예 낼로 슬슬 피해 댕기더마는."
"문디 머스마! 내가 손톱에 들인 그 봉숭아물 땜에 울매나 걱정했는 줄 알기나 아나?"
"와?"
"언니가 그라는데, 첫 눈 올 때까지 손톱에 들인 그 봉숭아물이 남아 있으모 내년 봄에 내캉 다른 머스마캉 사귀게 된다 캤다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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