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훈
그것은 조선의 왕들의 이름 중 앞 글자만을 따서 외우는 것으로 흔히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 등으로 쓰이는 방식이다.
이렇듯 그 수나 종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암기법들은 일단 익히기만 한다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학력고사'를 거쳐 '수능'으로 넘어오는 세대들에게서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얼마나 위대한(?) '요령'의 산물인가?
그것은 또한 우리 후배들에게도 값진 유산으로 남을 것이다(이 '요령껏 암기법'들은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이름을 알 수 없는 수험생들에 의해서 수없이 창작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지금까지 수능에 관련된 여러 과목을 공부하면서, 많은 종류의 '요령껏 암기법'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그 발상의 '뜬금없음'과 일련의 '유치함'이 매우 재치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디서 끌어왔는지도 모를 '시나리오'와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리듬', 그것은 지금도 우리에게 온전히 전수되고 있다.
그렇지만 배운 내용을 배우고 또 배우고 여러 번 복습을 해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내가 깨달은 것은 '요령껏 암기의 계보'가 한편으로 슬픈 일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때(선배들이 공부할 때)에도 얼마나 공부하는 것이 힘들었으면 이런 식으로라도 암기하려는 생각을 했을까하는 연민이 드는 것이다. 그 계보를 받들어 우리도 여전히 그 방식을 사용하고 또 계승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 슬퍼진다.
하지만 우리는 어디까지나 우리가 당차고 밝은 모습을 지닌 10대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아무리 긴 터널도 언젠가는 그 끝이 나타나듯이 하루하루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도 그에 따른 정당한 보상을 받을 날을 맞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되고 있는 이 생활에 마냥 짜증만 내고 있기보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하기 위해 이처럼 재미있고 유쾌한 '요령껏 암기법'을 충실히 전수하는 동시에 또 새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진정 집안의 족보는 못 외울지언정 별 거리낌 없이 외울 수 있는 '요령껏 암기법', 그 속에는 벌써 고3 수험생활의 끝을 향해 내달리고 있는 우리들의 애환이 진하게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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