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⑮-금정산 범어사

금정산에는 하늘 나라의 고기라는 범어(梵魚)사가 있다.

등록 2003.09.01 14:55수정 2003.09.0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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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범어사 일주문은 여느 절들의 일주문들이 나무기둥만으로 이루어진 것과는 달리 돌기둥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1.5미터 높이의 배흘림 돌기둥 위에 목조의 두리기둥을 세우 만들었다. 그리고 출입문도 3간으로 되어 있다.

범어사 일주문은 여느 절들의 일주문들이 나무기둥만으로 이루어진 것과는 달리 돌기둥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1.5미터 높이의 배흘림 돌기둥 위에 목조의 두리기둥을 세우 만들었다. 그리고 출입문도 3간으로 되어 있다. ⓒ 임윤수

크고 작은 산사 몇 곳을 새벽에 찾아간 적이 있다. 새벽이라는 어감도 좋지만 새벽산사에서 느끼는 편안함은 심신을 맑게 해 준다. 피부와 호흡기를 통하여 접하는 아침공기의 신선함도 좋지만 머릿속에서 공명처럼 울려대는 목탁소리도 좋다.

맺힌 이슬 퐁당하고 떨어지듯 맑은 목소리를 가진 스님이 염불이라도 할 때면 묘한 기분마저 든다. 가슴이 찡해지면서 편안함을 느끼는가 하면 어떤 때는 이유 없는 서러움 같은 것이 가슴을 울컥하게 한다.


이른 시간 잠을 떨구고 찾아가기가 힘들어 그렇지 손해볼 것 없이 좋은 곳이 아침 산사다.

절에서는 신도의 성별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 다르다. 여자 신도를 '보살'이라 하고 남자 신도를 '처사' 또는 '거사'라고 한다. 그리고 법명(法名)이라는 것도 있다. 기독교에서 신도들에게 주는 세례명과 같이 절에서도 본명 이외에 또 다른 명칭이 개인에게 부여된다.

a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문을 통과하게 되면 불이문으로 들어서게 된다.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문을 통과하게 되면 불이문으로 들어서게 된다. ⓒ 임윤수

어느 절이나 큰 행사가 있을 때 찾아온 신도들을 성별로 구분해 보면 여성 신도인 '보살'들이 압도적이다. 큰 행사가 아닌 때도 법당에서 지성껏 절을 올리는 사람들은 대개 여성인 보살들이다. 남자들은 주변이나 빙빙 돌다 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땀이 흥건하도록 절을 많이 하는 처사들도 있지만 보편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산사의 아침 예불은 보통 새벽 3시 30분 경부터 시작한다. 예불 전에 도량석을 하여야 하는 스님들이야 훨씬 이른 시간에 기상을 할 게 분명하다. 산사의 아침 예불은 이처럼 이른 시간에 시작되기에 스님들뿐인 경우가 많다.

불자들을 성별로 정확하게 구분하여 본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좀더 적극적으로 절을 찾는 사람들은 여성이며 그 중에서도 나이 지긋한 장·노년층이 많다. 아무래도 이 분들에게는 이른 시간 산 속에 있는 절을 찾을 만한 적당한 교통편이 없기 때문에 새벽에는 스님들 뿐 일 경우가 많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 목견한 산사의 아침예불은 특정 기간을 정해 놓고 기도를 하거나 행사가 아닌 경우에는 그랬다. 넓은 경내에 염불하는 스님과 저벅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는 기자가 전부인 경우가 허다하였다.

a 마당 안쪽 우뚝 높게 대웅전이 있다. 대웅전 앞에는 삼층석탑이 보인다.

마당 안쪽 우뚝 높게 대웅전이 있다. 대웅전 앞에는 삼층석탑이 보인다. ⓒ 임윤수

비탈길을 올라 범어사로 들어선 시간은 새벽 4시쯤이었다. 다른 절들에서 그러했듯 불빛을 좇아 경내로 들어선다. 주변이 온통 컴컴하기에 사실 어떤 전각이 어떻게 생겼으며 어느 곳에 위치해 있는지 구분조차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감각적으로 불나방처럼 불빛을 좇아가면 아침 예불이 시작된 대웅전이나 전각을 만나게 된다. 물론 그곳엔 아침 예불을 주관하고 계시는 스님도 계신다. 범어사에서도 그랬다. 불빛 따라 더듬더듬 다가가니 높게 자리한 대웅전이 보인다.

대웅전 좌우에 있는 지장전과 관음전에서도 열린 문으로 불빛이 뭉턱뭉턱 쏟아진다. '널리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보제루를 돌아 앞마당과 계단을 지나 대웅전에 다가가니 이제껏 보았던, 스님뿐이었던 산사의 아침 예불과는 달리 법당에 사람들이 빼곡하다.

통 넓고 활동하기 편하게 생긴, 펑퍼짐한 회색 바지(일명 몸빼), 법복을 입은 보살 신도들이 스님 주변으로 빼곡하다. 순간적으로 '무슨 행사가 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얼른 눈길을 돌려 좌우에 있는 지장전과 관음전을 보니 그곳에도 신발들이 꽤나 많다. 절을 한번 할 때마다 염주 알을 넘기는 것으로 짐작컨데 108배라도 드리는 모양이다.

a 이른 시간임에도 아침예불에 참석한 신도들이 많다는 것이 감명적이다. 어머니의 지성을 보는 듯하여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른 시간임에도 아침예불에 참석한 신도들이 많다는 것이 감명적이다. 어머니의 지성을 보는 듯하여 마음이 따뜻해진다. ⓒ 임윤수

이른 시간 고단한 몸 일깨워 절을 찾았다는 그 자체가 지성인데 합장하고 108배를 올리는 노보살님들 지성이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우리의 어머니들이 그러하듯 그 노보살님들도 당신보다는 자식들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소원성취를 서원하며 절을 올릴 것이라 생각하니 불현듯 팔순을 넘긴 노모의 생각이 떠오른다. 내 어머니도 나를 위하여 저렇게 하셨겠지 하는 생각에 코끝이 찡해진다.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니 보는 것도 많지만 듣는 것도 적지 않다. 전라도에 있는 산사에 가던 충청도에 있는 산사에 가던 성지순례차 신도들을 태운 차에는 경상도 번호판이 제일 많거나 자주 보였던 듯 싶다.

정량적인 통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경상도 보살님들이 가장 적극적이며 활동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신도 숫자야 인구밀도가 다르니 서울 등과 어떨지 모르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 불심이기에 그 깊이를 잴 수는 없지만 하여튼 경상도 보살님들이 적극적이라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물론 경상도 특유의 억양 때문에 두드러진 점도 없지 않겠지만 말이다.

경상도는 삼국시대 때 신라의 영토였다. 복잡하게 역사적으로 어떠니 저떠니하지 않더라도 신라시대에 불교는 번창하고 융성하였다. 그런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 경상도에는 불교 관련 문화재나 볼 것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다. 볼 것과 관습은 문화가 되고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결국 경상도는 불교와 좀더 익숙한 문화를 가지고 있을 것이며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는 지역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다보니 아무래도 불교에 익숙한 가치관을 갖게 되어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a 한 지붕 전각에 팔상전과 독성각 그리고 나한전이 나란하다. 독성각의 아치형 문틀이 인상적이다.

한 지붕 전각에 팔상전과 독성각 그리고 나한전이 나란하다. 독성각의 아치형 문틀이 인상적이다. ⓒ 임윤수

한국 제1의 항구 도시인 부산에는 금정산이 있다. '한 마리의 금빛 나는 물고기가 오색 구름을 타고 하늘(梵天)에서 내려와 그 속에서 놀았다'고 하여 '금샘(金井)'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한다. 하늘에서 내려온 물고기가 사는 우물이기에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항상 물이 가득 차 있는 그런 곳이기도 하단다.

범어사는 그렇게 이름 붙여진 금정산 동쪽에 있다. 범어(梵魚)는 '하늘 나라의 고기'라는 뜻이라고 한다. 결국 범어사는 마르지 않는 금정에 살고 있는 하늘나라의 고기와 같은 절인 셈이다.

범어사는 서기 678년 신라 문무왕 18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해인사 통도사와 함께 경남의 3대 사찰로 꼽힌다고 한다. 원효대사도 이곳에서 수도를 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가 활동하였던 의병의 본거지로 활용되기도 하였던 곳이기도 하단다.

한국의 고찰들이 대개 그러하듯 범어사도 창건 이후 소실과 중건 또 다른 소실과 개수 및 중수 등이 거듭되었다. 그러다 근세의 고승인 경허 스님이 1900년에 범어사에 선원을 개설하였다고 한다.

a 성보박물관 뒤쪽 마당에도 석탑이 있다. 이 곳에서 조용한 아침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성보박물관 뒤쪽 마당에도 석탑이 있다. 이 곳에서 조용한 아침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 임윤수

아침 예불이 끝나고 주변이 훤해질 즈음 대웅전 근처를 내려와 다시 범어사 입구를 찾았다. 여느 사찰들과는 달리 멀지 않은 곳에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여느 산사들처럼 조용하였으나 첩첩 깊은 산 속은 아닌 듯 싶다.

민가와 동떨어지지 않은 때문인지 아침 운동을 하는 몇몇 사람들도 보인다. 가까운 곳에 커다란 절이 있으면 반드시 예불을 드리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아침 운동 겸 명상의 장소로 절을 찾는 것도 좋을 듯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산사의 아침을 어지럽히거나 훼방놓는 무례한 행동이나 함성을 질러서는 안되지만 말이다.

불빛을 좇아 들어간 곳이 일주문이 아니었나 보다. 입구에서 다시 들어가며 보니 정면에 일주문이 있다. 일주문은 사찰로 들어가는 경계 중 첫 번째 문으로 산문이라고도 한다. 속가의 중생 세계와 부처님의 세계를 구분 짓는 경계로 성역(聖域)의 문지방에 해당된다.

a 대웅전에서 바라본 앞산이 산뜻한 느낌을 준다.

대웅전에서 바라본 앞산이 산뜻한 느낌을 준다. ⓒ 임윤수

규모가 있는 대개의 절에는 일주문이 다 있다. 절이라는 공통성 때문인지 일주문의 양식 또한 비슷하나 범어사의 일주문은 한 눈에 특이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일주문들은 보통 두 개의 기둥으로 되어 있으며 한 개의 출입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범어사의 일주문은 네 개의 기둥이 한 줄로 늘어서 3개의 출입구를 가지고 있다. 이런 형태를 일주삼간(一柱三間)이라고 한다.

절이나 고건축의 규모를 나타낼 때 간(間)이라는 단위를 쓴다. 간(칸)은 기둥과 기둥 사이를 말한다. 기둥사이가 좀더 넓고 좁은 것은 따지지 않고 그냥 기둥과 기둥사이를 한 간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똑 같은 세 간 규모라 하여도 좀더 클 수 있고 작을 수도 있다.

범어사 일주문의 또 다른 특징은 여느 일주문들이 나무기둥만으로 된 것과는 달리 돌기둥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지반으로부터 1.5미터 정도의 높이까지는 배흘림 돌기둥으로 되어있고 그 위로 목조 두리기둥을 세워 만들었다.

a 대웅전 우측으로 난 이 길을 따라가면 선원과 요사채가 있다. 단정한 돌담이 걸음을 조심스럽게 한다.

대웅전 우측으로 난 이 길을 따라가면 선원과 요사채가 있다. 단정한 돌담이 걸음을 조심스럽게 한다. ⓒ 임윤수

세 칸으로 나뉘어진 각각의 문 위에는 편액이 하나씩 걸려있다. 중앙 문에는 '曹溪門'이란 편액이 걸려 있는데 이는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마하 가섭존자, 달마 대사, 육조 혜능 대사의 법맥을 이은 조계종 사찰임을 의미한다고 한다.

오른쪽 문에 있는 '禪刹大本山' 편액은 범어사가 선종의 으뜸 사찰임을 말하며 왼쪽 문에는 산 이름과 절 이름이 쓰여진 '金井山梵魚寺'라는 편액이 붙어 있다. 현재의 일주문은 1781년에 세워진 원형그대로라고 한다

일주문을 들어서 사천왕문과 불이문을 지나면 보제루 옆을 돌게된다.
보제루 오른쪽으로 돌다보면 벽면에 전원의 목가적 풍경을 연상케 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을 목우도(牧牛圖)라고 하는데, 송나라 보명(普明)이라는 사람이 창안한 선화(禪畵)로 소를 길들이는 과정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그림에서 소는 '무릇 생명체들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의 상징이라고 한다. 그림은 검은 소에서 흰 소로 변하고 더 나아가 마지막 열 번째는 비어있는 원으로 묘사되어 있다.

a 울창한 소나무 숲에 있는 비석들이 범어사의 역사와 무게를 더해주는 듯 하다.

울창한 소나무 숲에 있는 비석들이 범어사의 역사와 무게를 더해주는 듯 하다. ⓒ 임윤수

검은색은 어둠과 악심 등 부정적 측면을 상징하며 흰색은 순결하고 선한 마음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오염된 성품을 닦아 청정한 성품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 한다.

보제루 앞마당 안쪽으로 훌쩍 높게 자리한 곳에 목탁소리와 함께 많은 보살님들이 아침 예불로 지성을 보여주던 대웅전과 지장전 그리고 관음전이 있었다.

전각에 묻어 있는 세월이 걷힌 어둠위로 드러난다. 그리고 그 세월동안 많은 사람들이 들였을 지성과 기도가 느껴지는 듯 하다. 기둥의 나무 결이 그렇고 바랜 문살이 그랬다.

대웅전 왼쪽 뒤에 있는 커다란 바위 옆으로 길다란 전각이 있다. 한 지붕 길다란 전각에 팔상전과 독성각 그리고 나한전이 나란히 있다. 위쪽이 둥근 형태를 하고 있는 독성각 출입문이 시선을 끈다.

a 처서를 지났다는 선입견 때문인지 한쪽으로 흐르고 있는 계곡에서도 가을색이 배어나는 듯하다.

처서를 지났다는 선입견 때문인지 한쪽으로 흐르고 있는 계곡에서도 가을색이 배어나는 듯하다. ⓒ 임윤수

범어사 대웅전과 삼층석탑이 각각 보물 제250호와 제434호로 지정되어 있고 일주문과 당간지주 그리고 석등이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경내의 울창한 소나무 숲도 좋고 한쪽을 차지하며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도 좋다. 그리고 이른 시간에 지성을 드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더없이 따뜻한 느낌이 든다.

시내서 멀지 않은 곳에 호젓이 사색할 수 있는 명찰이 있다는 게 부산사람들에겐 또 다른 하나의 행복이라고 생각된다. 배타적 종교관을 갖지 않은 사람이라면 언제고 찾아 심신을 쉬게 할 수 있는 축복 받는 공간으로 영원하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한번쯤 떠올리는 계기의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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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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