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교육진흥법안' 반대의견 확산

한글단체, 우리말글 죽이는 법안 절대 반대

등록 2003.09.16 11:28수정 2003.09.17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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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5일 오후 3시 한글회관에서 한글학회(회장 허웅),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공동대표 이대로) 등 한글문화단체 대표들이 모여 최근 박원홍(한나라당 서초갑) 의원 외 84명의 국회의원이 발의한 '한자교육진흥법안'에 대한 대책회의를 한 뒤 강력 반발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의 대강 내용은 이렇다.


“오늘날은 컴퓨터 인터넷통신과 딱 맞는 한글을 적극 이용해 정보통신 선진국으로 달려가야 할 시대이다. 그런데 그 노력은 하지 않고 시대에 맞지 않는 한자를 더 사용하게 하기 위한 법까지 만든다는 것은 시대 흐름을 거스르는 일이고 복 떠는 일이다.

지금 나라 안은 경제, 치안, 안보 문제를 비롯하여 국회가 해결해야 할 민생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도 국회의원들이 이 문제를 제대로 풀지도 못하면서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한자문제로 세금과 국력만 낭비할 한자교육진흥원을 만들고, 교육을 망칠 한자검정시험을 지원할 진흥법을 만든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이 시대역행인 악법을 만들기로 협의했는지 밝히고, 암기식 교육과 시험지옥을 부추기고 엄청난 부작용을 불러오는 한자검정시험 허가와 수능시험 반영을 당장 취소하라.”


이날 회의에서 한글단체 대표들은 ‘한자교육진흥법’은 우리말과 교육을 망칠 악법으로 보아 대표 발의자인 박원홍 의원에게 공개 토론을 제의하고, 발의한 국회의원들에 대해 그 법안을 충분히 검토하고 동의했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동시에 교육인적자원부에도 박원홍 의원 발표대로 협의를 했는지 분명히 밝힐 것도 요구했다.

a 8일 '한자교육진흥법안'에 대한 대책회의를 하는 한글단체 대표들

8일 '한자교육진흥법안'에 대한 대책회의를 하는 한글단체 대표들 ⓒ 이대로

이에 참가한 단체들은 한글학회,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외솔회, 한글날국경일제정범국민추진위원회, 한글문화연대, 한글문화세계화추진본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전국국어교사모임,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한국어정보학회, 한국바른말연구원 등이다.


이렇게 한글단체들이 강력 반발하게 된 배경은 지난 9월 5일 박원홍(한나라당, 서초갑) 의원이 "한자관련 법률로는 최초로 여야 의원 85명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한자교육개발진흥원을 설치해 한자 교육 종합계획을 세우고, 한자 교육과 한자검정시험을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한자교육진흥법안을 국회에 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는 또 자신이 대표 발의자이며 소관부처인 교육인적자원부 등과 협의를 거친 것으로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발표 소식을 듣고 지난 9월 8일 한글학회, 외솔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등 한글문화단체 대표들은 한글학회에 모여 그 대책을 논의했다.


그 날 모임에서 "우리 말글 발전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한심스런 일이다. 한자와 한글 논쟁을 위한 게 아니라고 하지만 한자 사용 확대를 위한 법이라니 한자혼용 목적이 분명하다. 한자 사용 확대와 지금 재미를 보고 있는 한자검정시험을 법으로 보장받고 특정 세력에게 그 돈벌이를 독점하게 하기 위한 음모로 보인다"는 등의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이후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이대로 공동대표는 교육부에 “박원홍의원이 정말 교육인적자원부와 협의한 적이 있는지” 전화문의를 했다. 이에 법무담당관실에서는 "그 법안에 대해서는 들어본 일도 없다"고 했으며, 교육관련 부서에서는 "협의했다고는 할 수 없다. 국회의원 쪽으로부터 그런 법안을 낸다는 통보는 받은 셈이다. 국회의원들이 하는 일에 그 이상은 말할 수 없다. 괜히 한글 한자 논쟁거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고 전했다.

한편으로 인터넷통신 한글사랑모임인 '누리그물 한말글모임'의 조상현씨가 박원홍의원과 교육부에 다음과 같이 물었다.

1. 이곳에 적힌대로 교육인적자원부와 협의했습니까?

2. 이 법은 `한글전용법`을 통한 한글전용교육을 포기한다는 법(안)으로 보이는데 맞습니까?

3. 한자 낱글자를 아는 것보다 한문을 통한 전통문화의 이해가 더 시급한데, 한자 인재양성이 아닌 한문 인재양성을 할 생각은 없는지요?

4. 법 내용에 `한자교육개발진흥원`을 둔다는 글이 있는데, 여기서 할 일을 `국립국어연구원(문화관광부 소속)`에서 하고, 이름을 `국립한문연구원`으로 고치며, 한글과 우리말 연구는 한글 학회로 한문(한자가 아님) 연구를 '국립한문연구원'으로 해서, 옛 글 - 사상을 현대어로 번역해 우리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실 법으로 고칠 생각은 없는지요?


이에 교육부에선 대답이 없었으며, 박 의원 측에서는 "지금도 협의 중이지만 대강의 원칙은 합의한 상태이다"라고 대답하고, 공청회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이대로 공동대표는 “나라의 최고 기관인 국회와 교육부 관계자의 말이 다르고, 분명한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무언가 흑막이 있으며, 국민을 속이던가 놀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른바 한자 혼용파들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조선, 동아 등 일간 신문들이 조용한 것도 그렇고, 교육부와 박원홍 의원실에서도 국론분쟁이 일지 않도록 조용하길 바란다는 것도 그렇고, 조용히 있다가 정국 혼란한 16대 국회 마지막에 다른 법들과 무더기로 통과시켜보려는 음모가 있어 보였다.”라고 말한다.

지금은 태풍 매미의 피해로 온 나라가 우울하다. 그런가 하면 북핵문제도 아직 분명한 해결기미가 없으며, 경제는 최악의 상태까지 다다랐다. 이런 판국에 많은 예산이 들어갈 ‘한자교육진흥법안’에 국력을 쏟을 겨를이 없다는 한글단체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어 보인다.

또 우리나라가 IT강국으로 불리는데 주저하는 사람은 이제 없다. 이는 한글의 위력이 상당한 증폭제의 역할을 했는데 이 위력을 상쇄시킬 ‘한자교육진흥법안’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논리도 설득력이 있다. 앞으로 ‘한자교육진흥법안’의 발의를 비판하는 소리가 높아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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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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