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냉장고 좀 빨리 교체하세요"

잃었던 휴대 전화 단말기를 찾고나니

등록 2003.09.16 12:37수정 2003.09.16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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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7일 잃어버렸던 휴대폰 단말기를 거의 보름만인 9월 10일 찾았다. 그 동안 겪었던 불편을 말하기에는 면구스러움이 크다. 집 밖에서 휴대폰으로 통화를 시도하지 못하는 불편이야 휴대폰을 분실한 내 처지로서는 당해도 싼 일이다. 하지만 수신을 하지 못함으로써 수많은 분들에게 불편을 끼쳐 드린 것은 참으로 죄송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휴대폰을 사용해 온 세월도 벌써 몇 년이 되었다. 내 휴대폰은 요즘의 작고 예쁜 모양의, 휴대도 간편하고 수많은 기능들을 가진 그런 물건이 아니다. 크고 투박한 모양의, 그래서 가히 군대 시절의 무전기를 생각하게 만들 정도인 데다가 색상부터가 '국방색'인 물건이다. 아무튼 내 아이들은 아빠의 휴대폰을 일컬어 '냉장고'라고 부른다.

이 표현에는 휴대폰을 빨리 교체하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그것은 일종의 압력이기도 할 터이다. 하지만 휴대 불편과 함께 교체 필요성을 잘 인식하면서도 냉큼 그것을 시도하지 못하는 내 속성도 함께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한번 정이 든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 낡은 자동차를 조기 교체하는 것도 아니고 폐차 처리를 하는 상황에서도, 그 자동차에 대해 몹시 미안한 감정을 가졌던 경험이 있다. 좀 엉뚱한 대입이긴 하지만, 그런 면으로는 나는 보수적인 기질을 많이 지녔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의 그런 보수적인 기질은 휴대폰이라는 물건을 지니게 된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휴대폰은 내가 먼저 원한 물건이 아니었다. 나는 휴대폰에 대해 모호한 거부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내 일상을 무엇에 좀더 단단히 확실히 속박시키는 것만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강압과 주선을 끝내 거부할 수 없었다. 나는 엄청난 '보증빚'의 여파로 끝내는 금융 기관으로부터 '신용 불량자'로 처리된 신세였으므로, 아내는 내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휴대폰을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 기구한 사연도 조금은 함축되어 있는 휴대폰을 아내에게서 받으며 "오늘부터 진짜 '개목걸이'를 차고 살게 생겼군"하고 묘한 불평을 했다.


휴대폰이라는 물건이 나오기 전 이동 전화 초기 단계에서 일명 '삐삐'라고 부른 물건이 크게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주로 허리춤에 차고 다니면서 삐삐 하고 우는 신호음에 따라 그 물건의 작은 액정 화면에 찍혀 나오는 발신자의 전화 번호를 확인하고 일반 전화로 응답을 하곤 했다.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도 삐삐가 울면 공중 전화 부스 앞에 차를 세우고 삐삐의 액정 화면을 들여다보며 전화를 거는 풍경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1990년대 초반 충남 서산과 태안의 지역 잡지 <갯마을>에서 편집주간 노릇을 할 때 사장이 내게 삐삐를 구입해 준 적이 있었다. 그걸 내게 건네주면서 사장이 한 말은 너무도 사실적이고도 재미있었다.


"이게 실은 개목걸이인디, 이런 개목걸이를 차구 댕기라구 주는 게 좀 미안허긴 허지먼…."

나는 웃으며 그 물건을 받았지만, 그 물건을 개목걸이로 만드는 일은 어디까지나 그 물건의 주인인 내 뜻에 달린 문제라고 생각을 했다.

그 후 나는 그 물건을 개목걸이로 만들지 않고 집에 얌전히 모셔놓는 일을 더 많이 했다. 깜빡 잊은 탓이 더 많긴 하지만, 그 물건을 개목걸이로 만드는 일에 별로 열심을 기울이지 않은 탓이었다.

그러다가 나의 그런 소치가 옳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내 주관에만 충실한 것이 다른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특히 그 물건을 마련해 준 사장에게는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었다.

결국 그 물건을 개목걸이로 만들며 사는 일에 충실하기 시작했는데 그 세월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지역 잡지 <갯마을>을 그만둔 탓이기도 하지만, 세월은 어느덧 진짜 이동 전화, 휴대폰 세상으로 접어든 탓이었다.

마누라의 강요와 주선 덕분에 휴대폰이라는 물건을 지니게 되면서 나도 어느덧 보수적 기질을 버리고 그 물건에 익숙해지는 자신을 느끼게 되었다. 시대에 과히 뒤떨어지지는 않는 것 같은 자신을 느끼는 것도 싫지는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크고 투박한 구형 물건을 속히 처분하지 못하고 정든 세월에 연연하는 그 보수적 기질만큼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마누라와 아이들로부터 '냉장고'를 지니고 다닌다는 애교 어린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백화산 등산을 하면서도 바지 주머니가 툭 불거지도록 그 물건을 꼭꼭 지니고 다녔다.

그런데 그 물건을 분실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지난 8월 27일 밤 천안에서 생긴 일이었다. 여름 방학 끄트머리 열흘 동안을 집에 와서 지낸 딸아이를 데려다주기 위해 개학 하루 전에 천안에 갔는데, 그 행사에 아내와 아들 녀석도 함께 했다. 천안의 한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고 여덟 개의 영화관을 가진 '야우리 멀티 플렉스'라는 데를 가서 '위험한 사돈'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나는 그 시간이 참으로 즐겁고 행복했다. 생각해 보니, 어머니가 빠지시긴 했지만 내 가족과 함께 영화 구경을 해보기는 실로 처음이었다. 가족이 함께 영화 구경을 하는 그 오붓하고도 안온한 시간을 아내와 아이들도 무척 좋아했다. 특히 이미 그 극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본 경험이 있는 딸아이가 그 극장에 대해 아는 체를 많이 하며 몹시 신나하는 기색이었다.

넓고 편리한 내 승합차로 가족이 함께 이동하고, 호기심을 갖게 하는 모르는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고, 그리고 함께 영화 구경을 하는 그 오붓하고도 행복한 시간 속에서 나는 혼자 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했다. 참으로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8년째 부모와 생이별을 하고 사는 내 두 생질아이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아이들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가질 때마다 그 생질 아이들 생각을 하며 늘 마음 걸려 하는 것 또한 나의 숙명적인 사항이었다. 가까이 살고 있는 그 아이들에게 신경을 쓸 만큼 쓴다고는 하지만…. 그러니까 어떤 경우에도 내 마음이 마냥 즐겁고 편안한 것만은 아닌 셈이었다.)

그런데 영화 구경을 마치고 딸아이의 원룸으로 돌아와서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도 나는 휴대폰 분실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딸아이 방에 와서 텔레비전도 보고 컴퓨터도 들여다보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1시쯤 잤는데, 내가 깨어난 시각은 새벽 4시 40분. 5시쯤에 이미 개학을 하여 학교에 가야 하는 마누라와 아들 녀석을 깨워 가지고 태안으로 돌아오려고 잠바를 입었을 때서야 잠바 주머니에 있어야 할 그 '냉장고'가 없는 것을 알았다.

야우리 멀티 플렉스의 로비에서 영화관(제8관)으로 들어가기 직전 휴대폰 전원을 끄기 위해 주머니에서 그 냉장고를 꺼냈던 일이 기억났다. 그러니까 그 물건의 분실 장소는 확실한 셈이었다. 그 물건이 로비에서 내 잠바 주머니 밖으로 기어나간 건지, 영화관 안에서 내게 '메∼롱'을 한 것인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새벽 참에 그곳으로 전화를 해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갈 길이 멀고 바쁜 상황이니 그 냉장고를 찾는 일로 지체를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냉장고가 빠져나간 허전한 주머니를 의식하며 일단 태안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집에 온 후 오전 9시가 넘을 때까지 천안의 야유리 멀리 플렉스로 여러 번 전화를 걸었으나 통화가 되지 않았다. 그 물건이 누구의 손에 습득이 되었건 그 영화관 안에 보관이 되어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때문에 자주 전화를 걸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물건이 작고 예쁜 신형이 아니고 구형 냉장고 같은 꼴이어서 영화관의 보관 확률은 더욱 클 거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천안 영화관과의 통화가 지연됨에 따라 나는 오전 9시가 넘은 시점에서 이동 통신사로 '분실 신고'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실 신고를 하되 '수신 허용, 발신 차단'을 선택했다. 그것이 통용되는 기간은 한 달 동안이라고 했다.

그런데 분실 신고를 하고 난 잠시 후인 10시쯤 천안 야우리 멀티 플렉스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 휴대폰을 습득하여 잘 보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사실을 정성껏 전해 주는 젊은 여직원의 나긋나긋하고도 낭랑한 목소리가 참으로 아름답고 듣기 좋았다.

고맙고 미안한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느낌도 컸다. 작은 물건도 아닌 크고 투박한 냉장고를 분실할 정도의 둔감, 몸에 지니고 다니는 물건을 냉큼 신형으로 교체하지 않고 사는 나의 이상한 보수성, 그새를 참지 못하고 이동 통신사에 분실 신고를 하고만 진득하지 못한 경망함 등등이 적이 부끄러웠다.

나는 휴대폰을 찾게 된 사실을 즉시 딸아이에게 알려 주었다. 딸아이는 제 엄마가 사용하던 작고 예쁜 신형 휴대폰을 물려받은 처지였다. 딸아이는 그 날 오후 하교 길에 야우리 멀티 플렉스에 들러 내 휴대폰을 회수한 사실을 자신의 신형 휴대폰으로 내게 알려 주면서 또 한번 "아빠 냉장고 좀 빨리 교체하세요"라는 말을 했다.

물론 나는 벌써 여러 해 정이 든 냉장고라고 불리는 내 구형 휴대폰을 아직은 교체할 생각이 없다. 좀더 오래 사용하고 싶은 마음을 다졌다. 내 보수적 기질을 계속 고수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면서도 다시 천안으로 바삐 가서 그 냉장고를 회수해 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언제 찾아갈 거냐는 딸아이의 문의 전화에, "너 추석 쇠러 집에 올 때 가지고 와"라는 말을 아주 쉽게 했다.

휴대폰 없이 생활한 지난 보름 동안 나는 원래의 내 보수적 기질을 회복한 듯한 기분이기도 했다. 정말이지 '보수 회귀'의 기분을 맛보고자 했다. 개목걸이에서 완전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허전하고 궁금 불안한 심리와 싸움을 벌이는 내면을 느끼면서 짐짓 보수 회귀 쪽을 편들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곧 나의 무책임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개목걸이로부터 해방된 기분을 원한다는 것은 결국 내 편의만을 추구하고자 하는 수작이었다. 평소 '발신'보다는 '수신'을 많이 하고 사는 내 형편을 고려하지 않은 짓이었다.

평소 발신 사용은 많이 하지 않고 사는 내 처지는 그렇다 쳐도,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리고 휴대폰 통화가 되지 않은 데서 갖게 되는 실망과 불편, 또 만약에 빚어질지도 모를 어떤 낭패 같은 것을 생각하면 보름 가까이나 휴대폰을 회수해 오지 않은 내 소치는 참으로 무책임한 짓이었다.

추석을 쇠러 연휴 첫날 딸아이가 집에 오면서 가지고 온 휴대폰을 받아 충전을 시키고 작동을 시작한 다음부터 나의 그 냉장고가 참으로 요긴한 물건임을 다시 실감했다. 더불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좀더 미안해지는 심정이었다.

휴대폰이 개목걸이이기도 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개목걸이로부터 해방된 기분을 맛보며 내 자유와 편의를 추구하면 할수록 그것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불편 사항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계기이기도 했다.

이 지면을 빌어 지난 보름 동안 내 휴대폰에 전화를 걸었다가 통화 실패한 모든 분들께 죄송한 뜻을 표하며 용서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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