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사 마산분소입니다"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112>공장일기(10)

등록 2003.10.02 17:48수정 2003.10.02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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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창원공단

창원공단 ⓒ 창원시

"근데 <남천문학>은 언제쯤 나오노?"
"그기 쪼매 에렵게(어렵게) 됐다."
"와?"
"인자부터 책을 낼라카모 비상계엄사 검인을 받아야 한다 카더라."
"세상에~ 그런 기 오데 있노?"


그날은 모두들 술을 엄청나게 많이 마셨다. 그리고 악을 쓰며 노래를 불렀다. 양희은의 아침이슬이란 그 노래. 그래. 창원공단에서 밤낮으로 시달리는 남천문학동인들은 그렇게 목울대가 터져라 노래를 부르고, 정신을 잃도록 술을 마시는 것으로 스스로의 아픈 처지를 달랬다.

죽이자
이대로 죽여버리자
용접봉처럼 타오르는 분노도 죽이고
바이트처럼 울컥대는 슬픔도 죽이고
임금 인상에 대한 희망도 죽이고
이윽고
마지막 남은 서글픈 그리움 하나
마지막 남은 가난한 사랑 하나
꼬옥 꼬옥 부여잡고
그날이 올 때까지
뜬 눈으로 살아가자

(이소리 '절망의 끝')


그러나 그것이 또 한번의 부서이동으로 이어질 줄이야. 그리고 그것이 내 공장생활이 끝날 때까지, 아니 공장을 떠나 내가 다니는 직장마다 보안대의 차가운 감시의 눈길이 번득일 줄을 어찌 알았겠는가.

그래. 그 7월호. 내 시가 실렸던 <씨알의소리>는 7월 호가 마지막 호가 되고 말았다. 또한 그 즈음부터 '삼청교육'이란 명목으로 무고한 많은 사람들이 비상계엄사로 마구 끌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끌려간 사람들이 웃통을 벗고 봉체조를 하는 모습이 TV에 비춰지기 시작했다.

그 교육장 초소에는 무장한 군인들이 그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장면도 자주 보였다. 아나운서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었다. 소위 말해서 그들은 우리 사회를 좀 먹는 깡패와 부랑아, 도적떼로 낙인 찍혀 있었다.

그 당시 들은 말로는 삼청교육을 받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했다. 또한 어떤 사람은 고문 같은 교육을 도저히 견디지 못해 탈출을 시도하다가 군인들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아예 병신이 되었다고도 했다. 광주학살에 이어 이번에는 아예 드러내놓고 또 한번의 대학살을 스스럼 없이 자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니, 계엄사 마산분소에서 전화가 안 왔더나?"
"제가 잘못한 기 없는데 우째 그기서 전화로 하겠심니꺼?"
"하여튼 조심해라이. 마구잽이로 끌려가는 수도 있다카이."
"와 예?"
"<씨알의 소리>가 폐간됐다 아이가. 그라고 혹시 그 때문에 그기서 전화가 오모 무조건 나이가 에리서(어려서) 시가 무언지 잘 모른다 캐라. 알것제?"

당시 나는 병역특례를 받고 있었다. 그러므로 군인의 신분으로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그런 처지였다. 그래서 나는 이선관 선생의 조언을 예사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당시 비상계엄사에서는 삼청교육대에 잡아넣을 사람을 확보하느라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있을 때였다. 들리는 말로는 아예 숫자까지 배당이 되어있다고도 했다.


그랬다. 며칠 뒤, 이선관 선생의 말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그날, 내가 탁상선반에 매달려 열심히 제품을 깎고 있을 때, 과장이 걱정스런 얼굴로 나를 불렀다. 그리고 전화를 건네줬다. 이상한 일이었다. 작업 도중에 현장 노동자인 나에게 전화를 다 바꿔주다니. 그것도 과장이 직접.

집에 무슨 일이 생겼나? 특별한 일이 생길 것도 앖는데. 나는 그렇게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무덤덤하게 전화를 받았다. 그때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차거운 금속성의 카랑카랑한 목소리. 나는 지금까지도 그 섬찟하고도 차거운 금속성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이종찬씨 맞습니까?"
"네."
"비상계엄사 마산분소입니다. 지금 즉시 마산분소로 출두하십시오."
"아니, 왜요?
"그걸 몰라서 물어?"
"저는 지금 쇠를 깎아야 하는데요?"
"아니, 뭐야?"

삼청교육대 마산 계엄분소에서의 그 차디찬 전화. 그때 내가 말을 더듬거리자 과장이 전화를 대신 받았다. 그와 동시에 나는 서둘러 공작부에 있었던 황복현 과장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전후 사정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황복현 과장은 내게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처리해 볼게, 하면서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아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기술자가 바이트를 다 부러먹게."
"아무 것도 아입니더."
"참! 아까 과장이 왜 널 부른 거야?"
"......"

그때부터 나는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조퇴를 할까도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가 조퇴를 하고 어디론가 숨어버리면 더욱 곤란한 입장에 처할 게 분명했다. 왜냐하면 나는 당시 병역특례 1년차였기 때문에 공장을 그만 두면 일주일 이내 군대로 끌려가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날 나는 작업 도중 바이트를 여러 개 부러뜨렸다. 그리고 불량품도 엄청 많이 냈다. 작업반장의 따가운 질책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동료들의 걱정스런 얼굴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황복현 과장의 말을 믿고 우선은 결과를 기다려 볼까.

"근데 오늘따라 니 도대체 와 그라노? 아까 과장이 니 보고 또 다른 부서로 가라 카더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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