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61

진보, 개혁, 보수, 수구 (9)

등록 2003.12.12 11:50수정 2003.12.1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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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니오. 스스로 지은 죄과를 인정하고 모든 기득권을 순순히 포기하는 자들을 예외로 하시오. 단, 부정불의한 방법으로 취득한 재물은 몽땅 내놓아야 할 것이며, 단전을 폐(廢)하여 다시는 무공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아혈(啞穴)을 점해 더 이상 아가리를 놀리지 못하게 하여야 할 것이오.”
“……!”

“하지만 삼의와 그들 휘하에 있던 자들에겐 그런 기회조차 줄 필요가 없소.”
“그건 왜죠? 그럼, 공평하지 안잖아요.”


“놈들은 뼛속까지 사악함이 베어들었소. 따라서 놈들은 절대 개과천선할 일이 없을 것이오. 만일 그러는 척하더라도 믿지 마시오. 절대로 진심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오. 아시겠소?”
“으으음…!”

홍여진은 침음성을 터뜨렸다.

악인록에 누가 기록되어 있는가!

권일은 선무곡 밖 사람들 가운데 선무곡과 직접 혹은 간접으로 연관 있는 악인들을 기록한 서책이고, 권이는 곡내의 인물들 가운데 지은 죄가 큰 자들만 골라 기록한 것이다.

깊이 생각해보고 어쩌고 할 것도 없이 그들 가운데에는 개과천선할 인물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럴 여지가 있는 인물이었다면 아예 악인록에 기록될 만큼 악인으로 분류되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세활빈단은 상명하복을 규율로 하고 있다. 따라서 명이 내려진 이상 무조건 따라야할 것이다.


명대로라면 장로원에 속한 장로들 가운데 적어도 칠 할은 제거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가히 혁명적이라 할 것이다. 그들이 사라지면 선무곡이 확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많은 인명을 살상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깊은 침음성을 터뜨린 것이다.

“정녕 진심이십니까?”
“그렇소! 단주로서 내리는 정식 명령이오.”

이회옥은 홍여진의 표정을 미루어 대량 살상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자신을 설득하려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일부러 단호한 표정과 어투로 대답하였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현재 철마당에 기생하고 있는 광견자 금대준 때문이다.

얼마 전, 그는 문서 하나를 바쳤다.

그것은 무림천자성 철마당주 마선봉신 이회옥에게 선무곡 증포소의 모든 권리를 전적으로 이양한다는 문서였다.

이제부터 선무곡은 제 손으로 지었고, 제 땅에 있는 증포소이지만 그것을 이용하여 인삼을 질 좋은 홍삼으로 만들려면 이회옥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때 금대준이 말하길 그것을 만들기 위해 변견자 조잡재와 최견구(膗犬口 :추악할 최(膗), 개 견(犬), 입 구(口))가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마침 변견자가 와 있는데 한번 접견해주면 어떻겠느냐고 하였다. 그렇게만 해주면 일생일대의 영광으로 알고 평생토록 충성을 다할 것이니 바쁘더라도 아량을 베풀어주기를 청했다.

광견자와 변견자는 방조선의 휘하에 있으면서 선무곡 수구세력을 진두지휘하는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그리고 최견구는 그들의 사주를 받아 선무곡 장로원을 좌지우지하는 인물이다.

현재 장로원은 최견구 일당이 잔뜩 포진하고 있다. 따라서 변견자와 광견자가 마음대로 주물럭거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장로들 대부분이 무뇌아(無腦鴉)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회옥은 악인록을 처음 본 순간 이후 금대준과 조잡재가 어떻게 생겨먹은 인물들인지 쌍판이나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대체 어떤 말과 행동을 했기에 미친개새끼라는 외호와 똥개 새끼라는 외호로 불리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이후 선무곡에 근무하는 동안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귀가 따갑게 들을 수 있었다. 그때 내린 결론은 광견자나 변견자라는 외호가 무척이나 점잖게 지어졌다 생각하였다. 개만도 못한 인간들인지라 개들이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생겨먹은 것이라도 확인해둬야 나중에라도 징벌을 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순순히 접견을 허락한 바 있었다.

그 날, 이회옥은 저녁을 굶었다!

웬만한 일로는 절대로 끼니를 거르지 않는 그였지만 입맛이 싹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변견자 조잡재에게 있었다.

그는 생겨먹은 것이 쥐새끼만도 못해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욕지기가 터져 나올 정도로 재수 없게 생겨먹었다.

제 딴에는 연륜이 있다는 티를 내려는 듯 백발을 빗어 넘겼는데 서캐[이(虱)의 알]가 우글거리고 있었다. 약간 매부리코였는데 재수 없어 보였고, 순간 순간 이리저리 안구를 굴리는 모습은 그가 얼마나 비겁하며, 교활한지를 단적으로 대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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