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가 한-중 국민정서에 악영향?

중국에서 보는 한국 축구

등록 2003.12.17 14:36수정 2003.12.17 15:15
0
원고료로 응원
제1회 동아시아대회의 우승에도 불구하고 쿠엘류호의 졸전과, 나락으로 빠져드는 한국축구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드높다.

a 지난 12월 7일 동아시아대회 한중전이 시작되는 장면이다.

지난 12월 7일 동아시아대회 한중전이 시작되는 장면이다. ⓒ CCTV

중국에서 보는 한국축구의 모습은 어떠한가. 이을용의 퇴장으로 25년 공한증(恐韓症)의 한을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호를 맞이하였지만 그것을 살리지 못하고 또다시 1:0으로 패함으로써 스스로 공한증의 징크스 속으로 빠져들었다는 중국의 자평이다. 기회를 놓친 아쉬움은 곧바로 한국 축구와 이을용 선수에 대한 비난으로 표출되었다.

중국은 한국 축구를 평할 때 ‘아시아의 독일’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부족한 개인기술과 전술을 힘을 바탕으로 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보충한다는 평가이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쓸데없는 플레이와 파울이 많고 기술과 정교함이 부족하다고 폄하하려는 속내를 드러내곤 한다.

동아시아대회 한일전을 중계하던 중국의 아나운서는 10명이 싸우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기술축구를 구사하는 일본을 치켜세우면서 한국 축구에 대해서는 특별한 전술과 조직력이 없이 밀어붙이기식으로만 일관한다고 평가하여 대조를 보였다.

물론 중국 내에는 아리에 한 감독과 중국 선수들을 비난하는 소리 또한 드높다. 축구가 가진 국가주의적 성격 때문인지 중국은 다른 스포츠 수준은 비교적 높은 반면 유독 축구에서 한국과 일본에 뒤처지는 것에 대해서 자존심 상해하고 있다.

축구경기 한 판에 어느 정도 그 나라의 국민성이 반영된다고 보면 한국은 그야말로 애국심과 투지로 똘똘 뭉쳐 전후반 90분을 운동장에서 죽자 사자 뛰는데 반해 중국선수들은 몸을 아끼며 단조로운 플레이로만 일관, 별다른 중국적 특징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중국인들을 더욱 괴롭게 하는 것은 지난 25년 동안 한번도 한국을 이겨보지 못했다는 자괴감이다. 1978년 12월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차범근에게 결승골을 내줘 1:0으로 무릎을 꿇은 이래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끈적끈적한 한국 축구에 대해 시샘과 시기의 눈길을 보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이 일본과의 경쟁 속에서 축구 수준을 향상시켰던 것처럼 중국도 한국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국의 수준을 높이길 희망한다.

그런데 문제는 언제부턴가 '축구'라는 화두 자체가 한중 양국간의 국민정서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7월, 노무현 대통령의 칭화(淸華)대학 강연을 앞두고 강연에 참석하는 학생들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는데 국제문제 전문가인 칭화대학의 교수는 학생들에게 고구려역사문제나 탈북자문제 그리고 월드컵축구에 대해서는 되도록 질문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할 정도였다.

중국인과 대화를 나누며 가장 껄끄러운 화제 중 하나도 바로 축구문제이다. 아무리 친한 중국인 친구라고 해도 축구를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면 목소리가 높아지고 분위기가 애매해지기 일쑤이다.

동아시아대회에서 한중전이 끝난 후 보여지는 중국 언론의 보도 태도는 정말 우려되는 바가 크다. 대다수의 중국 언론들이 경기의 결과와 시합 내용 분석보다는 이을용 선수의 돌출 행동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관련
기사
- 이을용, 그래도 참았어야 했다

거친 플레이를 한 것은 중국도 마찬가지인데 경기에서 이기지 못한 것이 마치 한국선수들의 지저분한 플레이 때문이라는 듯이 한국선수들을 몰아세우는 것은 분명 올바른 보도태도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이런 보도에 호도되는 여론이다. 한중전이 끝난 뒤 거의 모든 인터넷 토론장은 그야말로 한국 축구 성토장이었다. '월드컵에서는 심판 매수, 이번에서 폭력 행사'라는 글에서부터 이을용 선수를 국제경기에 영원히 참가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있었다.

a 2004년 아시안컵대회 마스코트인 손오공의 모습

2004년 아시안컵대회 마스코트인 손오공의 모습

많은 한국인들은 중국이 한국 축구에 대해 보여주는 이런 시기와 맹목적인 비판을 중화사상을 가진 중국이 한국을 무시하는 기본 태도라고 확대 해석하며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같은 원리로 중국인들은 이을용 선수가 비슷한 상황에서 만약에 프랑스 선수가 중국 선수처럼 반칙을 했다면 그렇게 프랑스 선수 뒤통수를 때렸겠냐고 반문하며 한국이 먼저 중국을 무시하는 태도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12월 국제축구연맹이 발표한 순위에 따르면 한국은 22위이고 중국은 86위이다. 중국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한국, 사우디, 이란, 일본은 물론 요르단, 태국, 바레인보다도 낮은 15위에 머물고 있다.

분명 현재의 축구 수준을 기준으로 보면 한국이 중국보다 한 수 위임은 객관적으로 자명한 사실이다. 중국은 이를 사실로 인정하고 한국과의 우호적인 경쟁관계 속에서 자국의 수준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내년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은 물론 독일월드컵 최종전에서 한중 양국이 다시 만날 가능성이 크다. 한국도 앞으로 있을 중국전에서 보다 수준 높고 깔끔한 플레이로 중국인들에게 한국 축구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길 바란다. 더 이상 축구가 한중 양국의 국민 정서에 악영향을 주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3. 3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4. 4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5. 5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