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서시(書市)는 달라!

중국의 책시장 서시, 베이징 시민들의 문화 축제로 자리매김

등록 2003.12.16 05:29수정 2003.12.16 11:27
0
원고료로 응원
a 문화를 즐기며 책을 고르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

문화를 즐기며 책을 고르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 ⓒ 김대오

나이 든 할아버지가 어깨 싸움을 하며 자리를 잡더니 안경너머로 열심히 책을 고르신다. 당시삼백수(唐詩三百首) 책을 들고 책장을 넘기시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싶더니 주인에게 얼마냐고 묻는다. 3위엔이라고 하자 "량콰이兩塊!" 하며 주머니에서 1위엔짜리 두 장을 꺼내 주인에게 건네준다.

주인도 하는 수 없다는 듯이 가져가라는 손짓과 함께 2위엔(우리돈 300원)을 받아 넣는다. 서시(書市, 책시장)에는 서점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활문화용품 매장도 함께 들어서 거대한 장날 분위기를 연출해고 있다. 거기다가 풍성한 문화행사까지 곁들여지면서 서시는 어느덧 베이징시민들의 문화축제로 자리잡았다. 한 아름씩 책을 들고 돌아가는 베이징 시민들의 발걸음이 경쾌하다.

a 서시가 열리는 베이징 디탄공원의 입구

서시가 열리는 베이징 디탄공원의 입구 ⓒ 김대오

베이징의 서시가 열리는 디탄(地壇)공원은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이쪽에서는 책값을 외치고 저쪽에서는 50% 세일이라고 소리친다. 사람의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정신없는 시장통이지만 왠지 베이징시민들의 체취와 오랜 문화의 기풍이 묻어나오는 듯 정겹기 그지없다.

베이징에는 계절마다 서시가 열린다. 벌써 27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꽤 유서깊은 시장이다. 올 10월에도 가을 서시가 있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지난 5일 시작한 겨울 서시에는 추운 날씨 등의 이유로 호응이 약할 것이라는 예상을 비껴갔다. 베이징시민 30여만명이 방문, 2800만 위엔(우리돈 42억원)어치의 책이 팔린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베이징 서시의 어떤 매력이 매서운 베이징의 겨울을 녹이는 것일까? 우선 평소에 비싼 책값으로 엄두를 못내던 책을 서시에서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전집류나 사전류, 화보집처럼 비교적 가격이 비싼 책들도 50∼70% 가격에 살 수 있다.

중국은 책의 출판기간이 짧기 때문에 신간도 금방 절판 되는데, 서시에서는 시중에서 구입할 수 없는 절판본들을 싼 가격에 만날 수 있는 매력도 있다. 좀 오래된 책들은 5원 정도에 살 수 있으며, 신간도 60∼80%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다.

또 200여개 출판사 등 900여개의 점포가 들어서 거의 모든 방면의 책을 한꺼번에 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동화책에서부터 문학, 철학, 경제, 컴퓨터, 외국어, 각종 도구 서적까지 없는 것이 없다. 정리가 잘 되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보물상자를 뒤적거리는 것 같은 책 고르기의 맛은 일반 서점에 비할 바가 아니다.


a 한 권에 5위엔(750원)

한 권에 5위엔(750원) ⓒ 김대오

마지막으로 서시 주변에 다양한 먹거리와 문화공연이 있어 책을 보면서 또 다른 문화체험을 할 수 있다. 특히 <건강과 여행>이라는 주제로 열린 올해 베이징 겨울 서시는 토요일을 건강의 날, 일요일을 여행의 날로 지정해 건강진료를 무료로 실시하고 여행책자를 무료로 배포했다. 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행사와 공연을 병행해 시민들의 많은 환영을 받았다.

서시에 나온 한 할아버지는 넓은 책시장을 한바퀴 돌고 나면 운동도 되고, 공부도 돼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며 서시기간 내내 디탄공원에 오고 있다고 말했다. 서시에서 싸게 파는 책들 중에는 물론 출판사나 도서관에서 재고분량을 기중한 책도 있고, 그 중에는 해적판이라고 인쇄상태가 좋지 않은 책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에 한 출판업자는 "어딘가에 아무 값없이 쌓여있는 것보다는 그 책을 필요로 하는 주인에게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있는 일이냐"며 서시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또 한 출판업계 직원은 "서시를 통해 소비자들의 독서경향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며 "올해는 유인우주선발사 성공의 영향인지 학생들도 과학 동화를 많이 찾고 있으며 항공우주 관련 서적도 잘 팔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중국인의 독서 열풍이 훈훈하게 느껴지면서, 은근히 내년 봄 서시가 기다려진다.

a 서시에서 산 한 묶음의 책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베이징 시민들

서시에서 산 한 묶음의 책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베이징 시민들 ⓒ 김대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3. 3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4. 4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5. 5 [영상] 가을에 갑자기 피어난 벚꽃... 대체 무슨 일? [영상] 가을에 갑자기 피어난 벚꽃... 대체 무슨 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