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을 싸늘하게 얼어붙게 했던 사스의 수난을 딛고 온 세계를 놀라게 했던 유인우주선 발사성공까지 2003년 중국에는 세계의 이목을 끄는 굵직한 사건들이 많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중국은 많은 악재에도 지속적으로 경제가 발전하고 있으며 거대시장이라는 매력으로 세계 기업들과 자본을 빨아들이는, 점점 그 흡입력이 커져가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나라 최대의 교역국이 된 중국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곧바로 국내의 정치·경제·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스 발생으로 수많은 재중 유학생들이 귀국하면서 국내에 사스 감염을 우려해야 할 형편이었다. 국내 수출입에도 막대한 차질이 빚어졌다.
지난 7월 노무현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나 8월의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베이징 6자 회담은 중국이 이미 우리의 외교 무대에서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면서 중국 내에서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각종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특히 중국의 최대 인터넷 포털 사이트 시나와 유명한 주간보인 <난방저우모>에서 주관하는 올해의 인물 선정이 많은 중국인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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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방저우모>에 실린 올해의 인물 기사
<난방저우모>는 12월 4일자에 올해의 인물 후보자 10명을 공개하고 12월 25일까지 독자들의 우편엽서 참여로 올해의 인물을 선정한다고 밝혔다. 후보에 오른 11명의 면모를 살펴보면 2003년 중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가히 짐작해 볼 수 있다.
첫번째 후보로는 사스 발생 초기 사건은폐와 축소보도로 물러난 멍쉬에농의 후임 왕치이산 베이징 시장이 뽑혔다. 그는 임명 직후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일로 바꿔야만 비로소 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전제하고 실사구시 정신과 지휘계통에 따른 엄격한 사실보고를 요구하였다. 그는 또 어떤 허위보고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사스 확산을 효율적으로 막고 사스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번째 후보는 사스 발생 초기 사스 진상이 은폐 축소될 때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소신있게 진실을 말함으로써 지식인으로서 양심과 책임을 다했던 중난샨 과학연구원이다. 그는 각자 위치에서 정직하게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 가장 크고 아름다운 정치며 그것이 바로 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지름길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세번째 후보는 시장경제 시스템을 대학의 인사제도에 도입하며 혁신적인 대학 개혁안을 내놓은 쉬즈홍 베이징대학 총장이다. 그는 부교수이하 강사들에게 세번의 교수임용 기회를 주고 이에 실패하였을 때에는 교직에서 물러나게 한다는 골자의 교수임용과 인사개혁안을 발표했다. 비록 젊은 학자들의 맹렬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세계무역기구(WTO)가입 이후 중국 대학들의 절박한 개혁요구를 잘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네번째 후보는 10연승으로 제9회 월드컵여자배구대회에서 우승한 중국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 천중허이다. 그는 2002년 세계여자배구시합에서 '볼 양보사건'으로 중국 배구팬들에게 엄청난 비난과 퇴임요구 압력을 받았지만 이번 무패 우승으로 17년 만에 월드컵 우승컵을 가져옴에 따라 일약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는 시상식 직후 '내가 실패할 때 나를 아무 일도 해낼 수 없다고 평가하지 말고 내가 성공할 때 나를 무슨 일이든 다 해낼 수 있다고도 평가하지 말길 바란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다섯번째 후보는 중국의 우주영웅 양리웨이다. 션저우 5호를 몰아 중국 최초의 우주비행사가 된 양리웨이는 중국을 세계에서 세번째로 유인우주선 발사에 성공한 나라로 만든 영웅이다. 션저우 6호는 언제 발사될 예정이냐는 기자들에 질문에 로켓에 불이 붙으면 그때 여러분들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고 대답해 우주비행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여섯번째 후보에는 미국의 환율 인상 압력 속에서 소신있게 중국의 원칙을 표명한 저우샤오천 중국인민은행 은행장이 선발되었다. 그는 런민비의 환율은 세계경제의 중책을 담당하고 있는 중국 스스로 결정할 문제며 외부의 압력에 의해 좌우될 수 없다는 원칙을 분명히 하여 중국인들의 환영을 받았다. 또한 런민비의 환율조정이 세계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합리적인 견해를 내세워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어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곱번째 후보에는 중국 관료주의의 부정부패와 맞서 싸워 승리한 궈광윤 스쟈좡 건설위원회 간부가 선정되었다. 그는 허베이성위원회 서기의 비리혐의를 고발하였으나 오히려 명예훼손 혐의로 8년형을 받았다. 그는 각종 협박과 위협 속에서도 항소하여 결국 승리하였다. 중국 정부가 비리사건에 대해 엄중 처벌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긴 하지만 중국 도처에는 아직도 관료주의의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여덟번째 후보는 지난 3월 17일 광저우에서 발생한 쑨즈강 사건의 주인공 쑨즈강이다. 그는 임시거류증을 소지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공안에 연행되었다가 수용소에서 폭행을 당해 숨졌다. 이 사건으로 광저우에서는 정치개혁과 법제개혁 그리고 인권보호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비극적인 사건이었지만 중국인들에게 개인의 권리와 법치의 의미를 일깨워준 사건으로 여겨져 선정된 것으로 보인다.
아홉번째 후보는 1997년부터 사비를 투자하며 남몰래 에이즈 예방과 에이즈 환자치료에 헌신하여 온 가오야오졔이다. 에이즈 환자가 급속도로 증가해 2030년이면 중국내 에이즈 환자가 1000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가운데 2003년 한 해 중국 정부는 에이즈 예방을 위해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고 예방약을 개발했다.
마지막 후보에는 올 한해 중국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역사드라마 '공화를 향하여'(走向共和)의 극작가인 성허위와 장지옌웨이가 공동으로 올랐다.
난방저우모 인터넷 사이트에는 이 밖에도 네티즌들의 다양하고 흥미있는 의견들이 올랐는데 4월 1일 자살한 장궈롱, 10월 24일 106세의 일기로 별세한 송메이링, 자신의 성체험을 공개하여 중국에 뜨거운 도덕논쟁을 불러 일으킨 무즈메이도 후보로 올라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또한 신임 주석과 총리로서 사스가 야기한 위기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한 후진타오 주석과 원쟈바오 총리가 후보에 올라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2003년 중국 최대의 화두는 '사스와 유인우주선'이었으며 그 밖에도 경제성장에 따른 각종 개혁과 부패 문제들이 많은 관심을 끌었다. 우주영웅 양리웨이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될 가능성이 유력하다. 그러나 다른 후보도 저마다 올 한 해 중국의 작은 역사를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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