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모 연재소설 <수메리안> 30

등록 2004.01.08 11:48수정 2004.01.0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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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후는 먼저 하늘을 쳐다보았다. 달빛은 그대로 밝았다. 그는 주저앉아 모래를 편편히 고른 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에인이도 무릎을 접고 그 옆에 앉았다.

제후는 우선 동그라미를 길쭉하게 그렸다. 커다란 달걀을 옆으로 뉘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또다시 동그라미를 그려 넣으며 설명했다.


"이 가운데가 또 사막입니다. 한번 들어가면 영영 빠져나올 수 없는 죽음의 사막(타클라마칸)이지요."
"아, 그러니까 마을은 이 사막 남북으로 펼쳐져 있다는 말씀이군요."
"옳습니다. 이 사막 밖의 지대가 분지(타림분지)입니다. 그러니까 서른여섯 개의 마을은 이 사막 남과 북쪽에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말하자면 물이 있다는 뜻이지요."
"강이 있습니까?"
"큰 호수입니다. 그 호수 주변으로는 방대한 초원지대도 있어서 옛날부터 유목민들이 모여들게 되었지요."

제후는 태왕에게 했던 말을 똑같이 반복했다. 에인이 다시 물어왔다.
"그러면 사막 서쪽은 어떻습니까? 거기에도 마을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아까 잠깐 말씀드렸듯이 서쪽 마지막 마을을 지나면 곧 험준한 산길과 파령의 고원지대가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파령을 넘어가는 동안은 마을을 만날 수가 없지요."

"그 길이 며칠이나 걸립니까?"
"2,3일은 걸릴 것입니다."
"그럼 마지막 마을을 떠날 땐 짐승 먹이도 미리 준비해서 가야겠군요."
"짐승 문제로는 크게 준비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우리가 남로로 잡은 것이 그 길엔 아직도 초지가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파령을 넘으면 곧 대월씨국입니까?"
"대월씨국은 거기서도 한 이틀 더 가야 당도할 수 있습니다."
"그 중간엔 마을이 있습니까?"
"예, 띄엄띄엄 있습니다."
"이제 되었습니다. 오늘은 거기까지만 공부를 하지요."

그리고 에인은 몸을 일으켰다. 그랬다. 지금은 대월씨국까지만 알면 되었다. 그 이후의 일은 대월씨국을 떠나면서 그때그때 물어보면 될 것이었다. 그는 제후에게 다시 공손히 답례의 인사를 했다.
"상세히 일러주셔서 고맙습니다."


제후는 물어줘서 오히려 고맙다고 말하려다, 그 대신 "이제 그만 주무시도록 하십시오"라고 역시 고분하게 말했다.
"예, 제후께서도 이만 주무십시오."
에인은 자기 말곁으로 떠나며, 이제 바람도 없으니 그런대로 잠은 자둘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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