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모 연재소설 <수메리안> 33

등록 2004.01.14 14:14수정 2004.01.1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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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월씨 국으로 들어가는 접경지에는 큰 강이 있었다. 그 강은 힌두크시 산맥으로부터 흘러온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한군데로 몰려들면서 강을 이룬 것인데 물이 많고 깊었다. 또한 대월씨 국쯤에 이르러서는 그 강폭이 넓어져서 얼핏 보기에는 사람이 건너다닐 수 없을 만큼 큰 강으로 보였다.


강 앞에 도착한 에인은 다 와서 큰 장애물을 만났다 싶어 얼른 제후에게 물어보았다.
"이 강을 건너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제후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꽤나 깊을 것 같은데요?"
"여름이 아닌지라 물은 많이 줄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마차들도 건너갈 수 있습니까?"
"여기서는 아니 됩니다. 저 위로 한참 올라가면 강 중간에 작은 사구가 있고 그쯤에 마찻길도 있습니다."
"마차가 다니는 길은 물이 아주 없습니까?"

마차가 큰 강을 가로질러가는 것은 본 적이 없었던 터라 그렇게 물어보았다.
"아니오. 돌로 마찻길을 놓은 것이지요. 왜냐하면 중원과 분지에서 오는 대상들도 다 이 강을 건너야 하고 또 마차도 이쪽으로 통과해야 하니까요."
"아, 그래서 다리를 놓았군요."
"하지만 홍수 때는 물에 잠기기도 한답니다."
"그럼 지금은 건널 수 있겠군요."
"그쪽은 얕아서 짐승들은 물로도 건널 수 있습니다."
에인이 은 장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한참 더 내려가야 한다오."

은 장수도 곧 그 말을 받아 일행들께 아래로 내려가라고 명령을 내렸다. 말도 마차도 모두 강변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에인은 오늘 아버님을 만나긴 틀린 일이라 싶어졌다. 강을 건너서도 수 십리를 더 가야 장터거리가 나온다고 했으니 그때쯤이면 가게들도 문을 닫을지 몰랐다.

'그럼 숙사부터 잡아야할까? 일행들도 지금 한껏 시장할 테니 먼저 식사부터 해야 할 것이고…. 그래, 사람들이 식사를 하는 사이 나는 먼저 가게부터 찾아봐야 한다. 설령 문을 닫았다 해도 두들기면 누군가가 나올 것이고 그럼 아버지 계신 곳을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에인이 그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은 장수가 큰소리로 알려왔다.
"강 저쪽 건너에서 누가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 사람입니다!"


안내 선인도 외치듯이 말했다. 에인이 살펴보니 약 쉰 명의 사람들이 사구 쪽으로 죽 늘어서서 그렇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강폭이 넓은데다 한참 위쪽에서 도열해 있어서 어떤 사람들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우리 군사들입니다! 우리를 마중 나온 것입니다!"
은 장수가 흥분해서 거듭 외쳤다. 아버지와 함께 떠났던 그 군사들이 틀림없어보였다. 그러나 아버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만약 아버지가 약속과 달리 미리 마중을 나오신 거라면 맨 앞에 서 계셔야 했다.


'무슨 일이 있는가. 왜 군사들만 저렇게 나와 있는가?'
에인은 말을 좀 빨리 걷게 했다. 강변 저쪽 사람들을 어서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도열해 있는 사람들이 벌써 다 지나가고 있었다. 그 군사들이 에인을 보고 손을 흔들어대도 그는 응수조차 해주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갔다.

마침내 저만치 아버지 같은 사람이 보였다. 맨 끝에서 혼자 가만히 서 있는 사람, 비난 두건에 넓은 허리띠를 착용한 것이 아버지가 틀림없었다. 그는 왈칵 반가워서 말허리를 힘껏 찼다.
"이렷!"

그 강이 얼마나 깊은지 가늠해볼 여유도 없이 그는 당장 강물로 뛰어들었다.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일각이라도 빨리 아버지 앞에 서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손님이 일러준 사구까지 가자면 5백 보 이상은 더 가야 했고 그 5백 보의 거리를 그냥 바라만 보면서 걸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말도 물속으로 잘 걸어주었다. 하지만 중간쯤에 이르자 물살이 세어지고 물도 말허리까지 차올랐다. 말이 비칠거렸다. 물길이 말 등을 넘어 에인의 엉덩이까지 적셨다. 물이 차고 얼음조각 같아 말도 진저리를 치는데 에인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오직 어서 빨리 강을 건너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이렷! 이렷!"
그는 손바닥으로 말 등을 때려댔다. 그러자 말이 중심을 잡고 강가로 헤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 좀더 빨리…."

말이 강변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거기서는 에인이 재촉하지 않았음에도 말은 저 먼저 아버지를 향해 달려갔다. 그 말은 부친의 애마였다. 어디를 가던 함께 다녀 분신 같았음에도 아들을 위해 남겨두고 자신은 다른 말을 타고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말이 아버지 앞에서 크게 울며 다리를 쳐들었다. 그것이 말과 아버지의 인사법이었다. 말이 다리를 내릴 때 에인이 얼른 말 등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아버지를 향해 달려가려는 찰나에 아버지가 벽력같은 호령을 내렸다.

"거기 썩 멈춰라!"
에인은 우뚝 멈추었다. 아버지가 다시 불호령을 내렸다.
"썩 꿇어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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