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84

화벽의 주인 (2)

등록 2004.02.09 13:48수정 2004.02.09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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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핫! 본좌가 비록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고는 하나 아직은 이목이 있다네. 그나저나 당주인 자네가 직접 돌보는 말이라면 필시 대단한 명마일 것이네. 안 그런가?”
“예? 아, 예에…!”

“핫핫! 내 예상이 맞는 모양이군. 좋네, 좋아! 하하! 이제야 마음에 드는 놈을 탈 수 있게 되었네. 모두 자네 덕일세. 그나저나 그놈은 어디에 있는가?”


“놈이라뇨? 어떤…? 아! 그놈이요? 그야 마, 마굿간에…”
“핫핫! 그런가? 그럼 어서 보러 감세.”

무언공자가 마굿간이 있는 곳을 향하여 앞장을 서자 이회옥은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에 도는 소문에 의하면 요즘의 그는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원래 말이 없기로 이름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외호에 무언(無言)이라는 글자가 있는 것이다.

그는 외호에 걸맞게 아주 조용하게 지냈다.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 한번도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었던 것이다.


사내가 사내 구실을 할 나이가 되고 색(色)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 대부분의 경우 본격적으로 색을 밝히게 된다. 이럴 때는 술도 마실 수 있고, 욕망도 해결할 수 있는 기원을 찾는 법이다.

그런데 무언공자는 그런 곳을 기웃거려본 적이 없었다. 술은 마시기는 하지만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에만 마시고, 그때에도 석 잔 이상 마셔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 실수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무공 연마에 몰두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그렇기에 학식 또한 만만치 않아 무천서원의 서생들과 비교해도 조금의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반면 철기린 구신혁은 완전히 반대인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엄한 훈육을 받아왔기에 그의 나이 열다섯에 이미 웬만한 서생 뺨칠 정도의 학문을 익히기는 하였다. 그러나 무천서원의 서생에 비하면 많이 모자라는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열여섯 살이 되면서부터는 더 이상의 학문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계집 하나를 더 후리는 편이 낫다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렇듯 색을 밝히면서 술까지 좋아했다.

최근에는 유대문주의 여식인 빙기선녀 사지약에게 푹 빠져 있기에 잠잠하지만 예전엔 소녀를 여인으로 변모시키는 것이 그의 취미였다. 그래서 한때는 개화공자(開花公子)라고도 불렸다.

구부시가 차기 성주로 누구를 고를 것이가라는 문제로 한동안 골머리를 싸매야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장자에게 성주직을 계승하는 것이 원칙이나, 무언공자에게 더 끌렸던 것이다. 철기린의 주변에서 훗날의 영광을 도모하던 자들은 이런 것을 눈치채고 치열한 암투를 전개하였다.

그 결과 무언공자의 시위 중 여럿이 의문의 행방불명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공자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과연 무언(無言)이라는 외호가 어울릴 만했다.

어쨌거나 구부시가 고심 끝에 장자인 철기린을 차기 성주로 발표한 이후 무언공자는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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