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이 개를 보고 말라꼬 내빼노"

<내 추억속의 그 이름 137> 개

등록 2004.02.09 14:01수정 2004.02.0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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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나는 어릴 적 개에 물린 뒤부터 지금도 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어릴 적 개에 물린 뒤부터 지금도 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 이종찬

"아빠!"
"왜?"
"저어기~"
"괜찮아."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는 큰딸 푸름이와 6학년에 올라가는 둘째 딸 빛나는 개를 아주 무서워했다. 나와 함께 가게에 무엇을 사러 가다가도 멀찌감치 개만 보였다하면 내 뒤에 바짝 붙어 서서 그 개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곤 했다. 아주 작고 귀여운 강아지를 보아도, 개는 딱 질색이라며 고래를 절레절레 흔들곤 했다.

그랬다. 나도 언젠가부터 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아니 푸름이와 빛나 이상으로 개를 아주 싫어했다. 여행을 다니다가 낯선 마을의 으슥한 길목에서 어쩌다 개가 한 마리 나타나면 머리털부터 쭈삣쭈삣 서곤 했다. 그래서 나는 낯선 마을을 지나칠 때면 미리 돌멩이 서너 개를 손에 집어 들고 다녔다.

특히 한적한 시골마을 골목길 저만치 '개조심'이란 글씨가 씌어져 있거나,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리면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아예 포기하고 돌아서는 때도 많았다. 특히 사람을 곁눈질로 힐끔힐끔 쳐다보며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는 개는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개가 따라온다고 해서 무섭다고 마구 뛰면 그 개가 더 날뛰니까 조심해야 돼."
"그럼 개가 있으면 어떻게 해야 돼?"
"아예 개를 무시하고 그냥 천천히 걸어. 개가 주변에서 얼쩡거려도 절대 놀란 척 하거나 무서워하면 안돼. 알았지?"
"그러다가 개가 물면 어떡해?"
"집에서 기르는 개들은 사람을 잘 물지 않아. 미친개라면 몰라도."


그래. 나도 어릴 때에는 개를 아주 좋아했다. 우리 집에서도 개를 한 마리 길렀으니까. 그 당시 우리 마을사람들은 대부분 빛깔이 누우런 똥개를 한 마리씩 길렀다. 그리고 그 똥개가 새끼를 치면 대부분 상남장에 내다 팔았다. 그리고 그 돈을 우리들 학비에 보태기도 했고, 공판장에 나가 비료를 사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개를 안방에서 기르거나 줄에 묶어놓고 기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우리 마을 곳곳에 쥐처럼 흔히 돌아다니는 게 개였다. 그러다 보니 마을 아이들 누구도 개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아니, 개와 친구처럼 지냈다. 마당뫼에 솔방울이나 삭정이를 주우러 갈 때에도 개들이 꼬리를 치며 앞장을 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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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찬

우리 마을에서 길렀던 똥개들은 집안의 청소부이자 오뉴월 마을 사람들의 몸보신용이었다. 그런 까닭에 지금처럼 음식쓰레기가 나올 게 없었다. 아니, 똥개들과 닭들에게 나누어 줄 음식쓰레기조차 귀했다. 게다가 개들은 밤마다 닭장으로 살금살금 기어드는 쪽제비를 지키는 지킴이 역할까지 톡톡히 했다.


"요번 복날에는 우짤끼고?"
"가만 있자. 서산집 개가 올개(올해) 몇 살이고? 다섯 살쯤 안 됐나?"
"와 아이라. 그 집 개가 우리 동네에서 제일 늙은 개 아이가. 살도 제법 통실통실하게 잘 붙어있고."


오뉴월 복날이 되면 마을 어르신들은 우리 마을에서 기르던 똥개 중 한 마리를 앞산가새 소나무 가지에 매달아 그야말로 개 패듯이 몽둥이로 때려잡았다. 그리고 마을 한가운데 공터에 커다란 가마솥을 내걸고 여러가지 푸성귀들을 푸짐하게 넣은 뒤 그 개를 푹 삶아 말 그대로 개 잔치를 벌였다.

하지만 우리 마을 아이들은 아무도 그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아니, 먹고 싶다 하더라도 어르신들이 아이들에게는 개고기를 단 한 점도 주지 않았다. 아이들이 개고기를 먹으면 개처럼 엉망으로 살게 된다고 하면서. '잔치잔치 개잔치'란 말도 아마 그것 때문에 나온 말인 것 같았다.

그런 어느 해, 그러니까 내 나이 열 살 남짓했을 때였을 것이다. 그해에도 마을 어르신들은 어김없이 소나무 가지에 살이 통통하게 오른 똥개 한 마리를 매달았다. 그리고 마을 청년들이 돌아가면서 몽둥이로 개를 패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개의 목줄이 스르르 풀리면서 그 개가 쏜살같이 내빼기 시작했다.

"인자 큰일났다."
"내 참! 목줄로 도대체 우째 묶었길레 이 난리로 피우노?"
"그나저나 퍼뜩 저 개로 잡아야 될 낀데. 저 개 저기 인자 반쯤 미치가꼬 아무나 마구 물어뜯을 낀데."


그때였다. 눈에 시퍼런 불을 뿜으며 이리저리 마구 내달리던 그 개가 갑자기 논둑에서 소풀을 베고 있던 나를 향해 돌진하는 것이었다. 순간 머리털이 쭈삣하고 섰다. 미처 지게 작대기를 집어들 틈도 없었다. 나는 "옴마야" 하고 낫을 집어던진 채 보리밭으로 냅다 뛰었다.

"아야야~ 이 개가 뒈질라꼬(죽을려고) 환장을 해뿟나."
"으르러~ 으르러~"
"에이~ 니도 한번 죽어봐라."


그 개는 나보다 훨씬 더 빨랐다. 그 개는 막 패어나는 보리밭을 마구 짓이기며 달아나고 있었던 내게 순식간에 달겨 들었다. 그리고 내 다리에 시퍼런 이빨자국을 낸 뒤 또다시 어디론가 마구 내달리기 시작했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 또한 얼마나 놀랐던지 한동안 그 개에게 물린 다리의 통증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뒤이어 마을 청년들이 줄줄이 몽둥이를 들고 그 개를 잡으러 나섰지만 결국 그 개를 잡지 못했다. 그리고 그 개 때문에 한동안 우리 마을에서는 공포감이 맴돌았다. 한동안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개들을 모두 끈으로 묶어 밖으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했다. 혹시라도 그 개와 접촉하면 광견병에 걸린다고 하면서….

"많이 아푸나?"
"된장을 바르고 나서부터는 괘않심니더."
"그라이 개를 보고 말라꼬(뭐하러) 내빼노(달아나노). 가만히 있다가 개가 다가오모 지게 작대기로 후차뿌모(쫓아내면) 고마 도망갔을낀데."


그랬다. 그때는 약이 없었다. 머리가 깨져도, 개한테 물려도 오로지 된장이 최고의 약이었다. 나 또한 된장을 바르고 그 개한테 물린 상처를 말끔히 치료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나에게는 개에 대한 공포심이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쯤 우리 집에서 기르던 개도 쥐약 먹은 쥐를 먹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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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찬

"우리집 식구들은 개하고는 인연이 없는갑다. 그라이 너거들은 개고기로 묵으모 안 되는기라. 특히 니는 더욱 조심해야 된다, 알것제? "
"저는 원래부터 고기로 안 묵는다 아입니꺼. 그라고 인자부터 개 옆에는 얼씬거리기조차도 싫습니더."


내가 개를 아주 싫어하니까 누군가 그랬다. 개나 짐승은 먼저 눈싸움에서 이겨야 된다고. 그리고 그 눈싸움에서 지면 그때부터 개나 짐승이 사람을 얕잡아보고 덤벼든다고. 깊은 산에 다니다가도 간혹 맹수류의 짐승이 나타나면 절대 당황하지 말고 먼저 눈싸움을 걸어 이기라고. 그러면 그 짐승이 슬며시 꼬리를 내린다고.

그래. 그래서 하루는 여행을 하다가 줄에 묶인 개 한 마리가 하도 나를 보고 자꾸 짖어대기에 그 개의 눈동자를 한동안 노려보았다. 그러자 그 개는 더욱 맹렬한 기세로 마구 짖어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가 강렬하게 노려보고 있자 그 개는 슬금슬금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기를 몇 번인가 계속하더니 이내 ‘우이잉~’ 하는 소리를 내며 개집 속으로 쏘옥 들어가 버렸다.

사실, 그때부터 나는 개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 삭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웬만한 개들이 내 곁에 다가오더라도 그리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개를 좋아하게 된 것은 더더욱 아니다. 특히 주인도 없이 길거리를 마구 돌아다니면서 흥흥거리는 그런 개를 발견하면 일단 피하고 본다.

왜냐하면 그 개가 광견병에 걸려있을 수도 있고, 주인도 모르는 그 개에게 행여라도 재수가 나빠 물리기라도 하면 나만 손해니까. 또한 줄에 단단히 묶여있는 개라고 하더라도 사람만 보면 침을 질질 흘리면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미친 듯이 으르렁거리는 그런 개를 바라보면 지금도 온몸에 소름부터 먼저 돋는다.

그래. 개나 애완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내가 개에 대한 노이로제에 단단히 걸려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자리를 빌어 개나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부탁 하나 하고 싶다. 제발 애완동물을 키우다가 아무 곳에나 버리지 말아달라고. 특히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주변에는 절대 개를 풀어놓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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