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90

화벽의 주인 (8)

등록 2004.02.23 14:23수정 2004.02.2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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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 없는 방문이었지만 장일정과 호옥접은 쌍수를 들며 환영하였다. 그러면서 그 역시 이회옥이 보고 싶어 시간이 날 때면 철마당 부근을 괜스레 서성이곤 하였다고 했다.

잠시 후, 따끈한 찻잔을 사이에 두고 앉은 장일정은 근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형! 웬일이야? 무슨 일이라도 있어?”
“응? 무슨 일로 여기까지 행차했냐고? 하하, 아무 일도 아냐. 그냥 너하고 제수씨가 보고 싶어서 왔지.”

“에이,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말해봐! 무슨 일 있지?”
“녀석! 냄새 하나는 귀신같이 맡는구나. 자, 이게 뭘 쌌던 건지 한번 알아봐 줄 수 있겠어?”

“이게 뭐야? 어라! 이건…? 형, 이거 어디서 났어?”
“왜? 아는 거냐? 이게 뭘 쌌던 건지 알아?”

이회옥이 내민 작은 종이 쪼가리를 받아든 장일정은 슬그머니 주위를 둘러보고는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쉿! 소리 좀 줄여.”
“왜…?”


“글쎄 소리 좀 죽여 보라니까.”
“아, 알았어. 그건 그렇고 그게 뭔지 알아?”

“그럼, 이건 조선에서만 나는 한지(韓紙)라는 건데 중원 종이보다 훨씬 질기고 조밀한 거야.”
“그래? 어떻게 대강 보고도 그걸 알아?”


“그야 내가 한지에 대해서 잘 알기 때문이지. 한지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건 동유지(桐油紙)라고 하는 거야.”
“동유지? 그럼 오동나무 기름을 바른 종이냐?”

“아니야. 오동나무가 아니라 오동나무 씨의 기름을 바른 건데 방습성(防濕性)이 뛰어나서 환단을 싸는 포장지(包裝紙)로 아주 적격인 종이지. 이거 구하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게.”
“뭐? 이걸 네가 구한 거라고?”

“그럼, 이게 얼마나 귀한 건데. 형은 이게 흔한 건 줄 알았어? 보기엔 이래도 이거 아무데서나 구할 수 없는 거야.”
“그, 그래? 그런데 이건 뭘 쌌던 거냐?”

“후후! 그게 그렇게 궁금했어? 그런데 이건 어디서 났어? 이건 형이 가지고 있을 만한 게 아닌데…?”
“야, 그런 건 묻지 말고 이게 뭘 쌌던 건지부터 말해봐.”

“형, 이건 성주 일가 외에는 아무도 만질 수 없는 거야. 대체 이거 어디에서 났어? 주웠어?”
“아냐, 주은 건 아니고. 근데 이거 비싼 종이냐?”

“그럼, 엄청 비싸지. 그렇지만 내가 어디서 났냐고 하는 건 이 종이가 비싸거나 귀한 물건이기 때문이 아니야.”
“그럼…?”

“이 종이에 싸여 있던 건 환세음양단(還世陰陽丹)이라는 건데. 인형설삼(人形雪蔘)하고 만년하수오(萬年何首烏)를 주원료로 하고, 거기에 삼지구엽초(三枝九葉草)와 야관문(夜關門), 그리고 해구신(海狗腎) 등등을 보조 원료로 해서 만든 단환이야.”
“환세음양단? 그게 뭐 하는 약인데?”

“뭐 하는 거냐고? 주원료를 듣고도 뭔지 몰라?”
“……?”

“형, 삼지구엽초를 다른 말로 뭐라고 하는지 알아?”
“뭔데?”

“그걸 음양곽(淫羊藿)이라고 불러. 그걸 왜 그렇게 부르나 하면 옛날 사천(四川) 지방에 한 목동이 있었는데, 어느 날 숫양이 암양과 교미하는 것을 보고 있었대. 그런데 무려 백 번을 하고도 지치지 않더래. 그걸 이상히 여겨 그 숫양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았더니 어떤 풀을 열심히 뜯어먹더래. 그래서 목동이 그 풀을 뜯어먹었더니 허기도 지지 않고 정욕이 왕성해졌대. 뒷날 음탕한 양이 먹는 풀이라 해서 음약곽이라고 부르는 거야.”

“그래…? 대단한 풀이군.”
“그럼 야관문이 뭔지도 모르겠네?”
“내가 약초에 대해서 뭐 아는 게 있어야지.”

이회옥은 모르는 게 부끄럽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야관문은 글자 그대로 밤의 빗장을 풀어주는 약초야.”
“밤의 빗장을 풀어 주다니? 그게 무슨 소린데?”

“아참! 형은 아직 총각이지? 그럼 자세히 알 필요 없어. 알면 다치니까 더 이상 묻지마. 알았지? 물론 해구신이 뭔지도 묻지 마 그걸 알면 더 다치니까. 하하하!”

“얘가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지금 혼자서 재롱피우는 거냐? 좋아, 그건 그렇다고 치고 이 종이가 왜 성주 일가에게만 있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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