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와 클래식, 록

<나의승의 음악 이야기 48>

등록 2004.03.20 11:57수정 2004.03.22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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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즈와 클래식

1944년 <뉴요커>에 실린 ‘리처드 보이어’의 ‘듀크 엘링턴’에 대한 인물소개의 기사 제목은 ‘핫 바흐’(hot bach)였다. 왜 ‘바흐’였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당시의 재즈(밥 재즈)는 바흐와 바흐 이전의 음악들을 닮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밥재즈 연주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모드(mode, 교회선법)들 중에는 도리안, 이오니언, 애올리언 등의 화성이 흔히 존재하는데, 약 3000년 전쯤의 고대에 그리스 반도에 살았고, 지금 온 세계가 4년마다 한 번씩 여는 올림픽을 최초로 만들었던 부족들의 이름이다. 그리고 지금은 음악 속에서 그들의 화성을 도리안모드, 이오니언모드 등으로 말한다.

문화 속의 습관들은 한 번 발생하면 3천년이 지난다 해도 살아 있는 역사가 되어 그대로 사람들 사이에 남아 있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교회선법이라 이름하는 모드들은, 중세에는 수도승들에 의해서 교회음악으로 남아 있었고, 1600년대 중반에 와서 정리되었다.

이 모들들은 유럽대륙에서는 자연발생한 민속음악들에서 숱하게 발견되며, 196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비틀즈’의 불멸의 음악들에서도 발견된다. 왜 그런 화성을 사용했느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폴 매카트니는 “그런 것이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그렇게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라는 천재대우를 받을 만한 대답을 했던 일이 있었다.

물론 위대한 ‘바흐’의 음악가족들은 17세기에 명성을 떨치고 있었고,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1600년대 후반에 태어나, 1700년대에 중요한 작품들을 남겼다.

그렇다고 해서 1940년대의 재즈가 바흐 등의 클래식 음악과 똑같은 모습을 가졌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클래식 음악가들에 비해서 음악작곡이나 이론에 더 기술적으로 앞서지 못했고, 악보를 읽지 못하는 흑인 연주자들도 흔히 있었다. 그리고 흑인들의 재즈 음악은 유럽의 고대, 혹은 중세부터 사용해 왔던 화성들을 빌어서 사용해 왔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클래식 음악이 그토록 긴 세월을 발전 진화해 왔지만, 공적으로는 올라 가보지 못한 봉우리를 재즈는 ‘뉴올리언즈’의 ‘스토리빌’에서 처음 발생한 지 불과 몇 십 년만에 올라 버린, 그런 장르일 것이다.

그렇다면 재즈가 ‘현대 예술 가운데서 특별한 봉우리에 올라앉은 존재로,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재즈 예술가들의 창작 방식이 고등문화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진보적인 전위예술의 대안을 제시해주었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20세기 초반, 유럽에서 ‘다리우스 미요’(darius milhaud)같은 전위 예술가들이 초기의 재즈에 높은 관심을 보였던 것은 재즈가 그 부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들 중의 하나가 된다.

50년대, 바흐뿐만이 아니라 바흐 이후의 작곡가들, 특히 드뷔시, 라벨 등에 이르기까지 깊은 관심을 가졌던 ‘빌 에반스’같은 연주자는 세계의 지식인들에게 그가 존경한 라벨과 같이 중요한 작곡가이자 연주자의 한 사람으로 이해되고 있다. 물론 ‘빌 에반스’와 같은 사람이 재즈 세계에는 여러 사람 존재한다.

‘마일즈 데이비스’(그의 묘비에는 SIR MILES DAVIS라고 씌어 있다)같은 사람은 그와 함께 연주한 사람들에게 “할 수만 있다면 악보에 없는 음을 연주하라”고 말했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그렇게 말한 사람이 재즈의 탄생 이전에 과연 있었던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재즈가 전위적이고 미래지향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2> 재즈와 록

나는 재즈가 크게 두 가지의 얼굴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순수 또는 절대음악적인 얼굴과 대중적인 얼굴의 양면이 그것이다. 모든 예술이 그렇겠지만, 음악에는 창작하는 사람과 청취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리고 어떤 음악이 대중예술인가 아닌가의 문제에 대한 열쇠는 청취하는 사람의 손에 들려져 있다.

재즈에는 청취자들이 듣기 편하게 느끼는 대중적 음악이 있는가 하면, 클래식의 절대음악들처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알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음악도 있다. 재즈와 클래식은 그런 일면에서도 어느 정도 공통점도 갖고 있다. 20세기 초반 뉴올리언즈에서 시작된 재즈는 ‘랙타임 재즈’의 20년대와 30년대의 ‘스윙재즈시대’를 거쳐서, 앞에서 말한 ‘핫 바흐’의 이야기에 걸맞은 40년대의 ‘밥재즈’시대를 맞는다.

하지만 50년대 중반에는 재즈에 열광하던 청취자들이 재즈보다 더한 흥미를 느끼고, 재즈를 외면한 채 거의 남김없이 몰려갔던 ‘록’이라는 음악이 있었다. ‘록’은 가슴을 고동치게 하는 에너지로 가득 찬 언덕이다.

록의 시대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록그룹과 연주자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는데, ‘블루스’와 ‘흑인 교회음악’이 뿌리였던 재즈와 같이 ‘블루스’라는 공통의 뿌리를 가진 ‘록’은 당시 지구를 들끓게 했고, ‘사이키델릭’의 현란한 사운드를 들려주던 ‘지미 헨드릭스’는 ‘마일즈’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마일즈의 자서전에는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마일즈는 ‘비치스 브루’의 ‘퓨젼’을 탄생시켰다.

불멸의 ‘비틀즈’와 뉴욕주에서 열렸던 ‘우드스탁 페스티발’(69년, 45만의 관객이 모였던 ROCK의 화산폭발의 상징)과 ‘도어즈’, ‘롤링 스톤즈’, ‘제임스 브라운’을 비롯한 ‘소울’, R&B, FOLK, COUNTRY 그들이 존재한 그런 시기에 재즈는 외면당했다. 70년에 발표한 ‘사이먼& 가펑클’의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와 71년 ‘존 레넌’의 ‘이매진’같은 노래는 이제 그 시대를 상징하는 보석이 되어 있다. ‘아름답고 순수한 노랫말’이 음악이라는 날개를 얻어, 사람들을 부끄럽게 했기 때문이다.

80년 ‘존 레넌’은 어느 미치광이에 의해서 죽고, 81년 9월 뉴욕의 ‘센트럴 파크’에서 ‘사이몬 앤 가펑클’의 재결성 공연이 있었을 때, 그들의 무대에 함께 했던, 앤소니 잭슨, 리처드 티, 스티브 겟, 등은 모두 뛰어난 재즈 음악인 들이었다.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재즈의 침체기이자 록의 전성기를 벗어나서 ‘록’이 에너지를 조금씩 상실할 즈음에 80년대 초반, 역사에 남을 공연에 기록된 재즈연주자들의 활약은 또 한 번의 재즈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준 작은 단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2004년인 지금까지 재즈에는 록의 전성기를 거쳐온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두 가지 장르의 음악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것이다. 재능을 인정받은 재즈연주자들은 대개 ‘비틀즈’를 한 두 곡쯤, 혹은 앨범 한 장을 가득 연주하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고, 유명한 록의 명곡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재즈는 다른 장르에 비교했을 때, 더 타협적인 장르이기도 하다.

재즈에는 여러 가지 유형의 음악들이 있다. ‘뉴올리언즈’에 뿌리를 두고 있는 <딕시랜드 재즈>, 그의 음악이 클래식에 편입될 줄로 알고 있었다던 ‘스캇 조플린’이 창시한 <랙타임 재즈>, 춤을 출 수 있었고 가장 대중적이기도 했으며 4박자의 기관차 또는 엔진이라고들 말하는 <스윙재즈>, 전통재즈의 핵심이며 ‘디지 길레스피’, ‘찰리 버드 파커’ 등이 주역이었던 <밥재즈>, 그리고 <프리재즈>, 재즈 침체기의 원인이 된 ‘록’에 영향 받은 <퓨젼재즈> 등의 재즈유형들이 약100년의 재즈역사 속에 쌓여 왔다.

여기 나열해본 유형들이 모두 이해가 되지 않고 있다면, 당신은 아직 재즈의 산을 모두 구경하지는 못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도 기죽을 필요는 없다. 음악을 듣는데 필요한 것은 지식이나 이성적 능력이 아니며, 각자에게 어울리는 취향대로 접근해 가면 될 것이다.

일본에는 ‘기무치(김치)’문화가 고유문화처럼 존재한다. 그들은 초등학교 학부모들의 모임에서 김치 만들기 대회를 열고, 잘 만든 사람에게 상을 주었다고 한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외래 문화를 고유문화처럼 만들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 우리에게는 터무니없는 일이지만 독도의 문제도 역시 문화적인 방법으로 답안을 찾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즈’의 경우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자생문화가 되어 있다. 정상급의 재즈연주자가 녹음한 특정의 음악이 미국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데, 일본에서는 쉽게 발견될 정도로 강력한 재즈 생산국이 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넘기 힘들지만 넘어서야만 할 벽이 있다면 그것은 일본이 아닐지….

나는 음악 애호가의 한 사람으로 한국이 재즈만이 아니라 모든 음악이 자생하는 대표적인 문화강국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삶의 질’에 대해서 관심 없이 ‘엥겔계수’만 높은 사회가 되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음악을 존중하고 음악을 아끼는 사람이 많으며, ‘음악 없는 인생은 상상할 수 없다’고 누구나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NO MUSIC NO LIF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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