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셀꾸가 저무는 저녁 햇살을 받고 있다. 돌레.김남희
이제는 나도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칼라파타르는 운이 좋아 운동화로 올랐지만, 지금은 눈이 많이 내려 길이 안 좋은데 정말 저 운동화로 될까 슬슬 불안해진다. 결국 이곳 주인아저씨께 자문을 구한다.
“솔직히 말하면 내 생각에는 남체로 내려가는 게 나을 것 같아. 지금은 눈이 많이 와서 상황이 어떨지 모르니까. 이건 네 책임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렇게 됐으니까 네가 절반 내고, 포터에게 절반 내라고 해서 신발을 하나 새로 사 신고 오르는 게 낫지 않을까?”
“아저씨가 그렇게 말한다면 내려가야겠지요. 그렇게 해야겠네요.”
이 얘기를 듣고 있던 독일팀 가이드가 “나한테 여벌의 신발이 하나 있는데 그 신발을 너희 포터에게 줄 게”라며 나선다. 너무 뜻밖이고 고맙다. “신발값은 얼마를 주면 될까?” 물으니 신발값은 필요 없다며 기어코 사양한다. 모든 일이 잘 되었다고 좋아하며 방으로 와 짐을 꾸리는데, 누군가 방문을 열고 들어선다. 또 독일 아줌마다.
“너한테 할 말이 있어. 우리 가이드가 너희 포터한테 자기 신발을 준 거 알아? 우린 남체로 내려가면 바로 우리 가이드에게 새 신발을 사줄 거야. 너희도 좀 배워야 하지 않겠어?”
“이봐요, 아줌마. 그렇지 않아도 우리 역시 남체로 내려갈까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내 말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자기 할 말만 계속한다.
“너희 때문에 우린 한국과 한국 사람들에 대해 정말 나쁜 인상을 갖게 됐어. 너희는 정말 서양화되고, 자본주의화 된 물질적인 애들이야. 책임 있는 행동은 전혀 할 줄도 모르고…. 넌 포터를 짐승처럼 생각하나 본데 포터는 짐승이 아니야. 동물로 취급해서는 안 돼.”
아니, 이 아줌마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뭐, 포터를 동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열 받아 정신이 없고 할 말을 잃은 나, 여기서부터 막 나가기 시작한다.
“나도 너희처럼 무례하고 잘난 척하는 독일인은 생전 처음 봤어.”
내 목소리는 떨려오고 눈물이 솟구치기 시작한다. 이 때, 갑자기 끼어드는 아줌마의 남편.
“여기서 국적이 무슨 상관이야? 그 얘기는 하지 마.”
“이봐. 당신 와이프가 먼저 한국사람 운운했잖아. 당신들은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법부터 배워야겠어. 독일인들이 늘 그렇게 매사에 경우 바르고, 남을 생각하고, 올바른 일만 한다면 도대체 히틀러의 유태인 대학살 때는 뭘 하고 있었는데?”
(주제와는 상관도 없는 남의 지나간 약점을 끄집어 내 공격하다니 얼마나 치졸하고 비겁한가. 하지만 나의 분노는 이미 이성적 사고가 불가능하고 통제가능 영역을 벗어났기에 어쩔 수 없다.)
“과거 이야기는 하지 말아. 그건 아무 상관없는 거잖아? 너 어제 나한테 귄터 그라스를 좋아한다고 했지? 너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생각해봐. 귄터 그라스가 어떤 사람인지도.”
이렇게 말하더니 휙 돌아서 나간다. 어쩌면 이럴 땐 영어도 더 안 되는지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데, 언니가 “우리, 기얀드라 남체로 내려보내자”그런다. 나는 바로 식당으로 뛰어내려가 기얀드라에게 소리 지른다. “너, 당장 신발 벗어. 돌려주고 남체 가서 신발 사와.”
옆에 있던 독인 아줌마가 또 나서서 우리가 어떤 류의 인간들인지 다시 한번 설명해준다. 무책임하고, 잘못을 인정할 줄도 모르고, 남의 말을 들을 줄도 모르는 사람이라며. 나도 소리 지른다.
“그만해. 당신이랑 얘기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만 하라니까.”
아줌마는 굴하지 않고 계속 말한다.
“입 닥쳐!”
마침내는 “Shut Up!"이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나오고 만다. 영문을 모르는 기얀드라는 어쩔 줄 모른 채 서 있고, 독일인 부부는 한국인들을 싸잡아 욕하며 숙소를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