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고도 5357m 고쿄 리에서 바라보는 에베레스트와 로체, 마칼루김남희
트레킹 열 세 번째 날
날씨 : 화창
걸은 구간 : 고쿄(Gokyo 4750m)-고쿄리(Gokyo Ri 5357m)-고쿄
소요 시간 : 3시간
복장 및 위생 상태 : 떡진 머리, 일주일째 신는 양말.
날은 화창하다. 창 밖으로 햇살을 받고 깨어나는 산과 호수가 건너다 보인다. 고쿄 리(Gokyo Ri 5357m)에 올라가기 위해 작은 배낭을 꾸린다. 언니는 오후에 올라가겠다며 침낭 속에 누워 있고, 나는 미숫가루 한 잔을 뜨거운 우유에 타 마시고 기얀드라를 기다리는 중이다. 7시 30분에 출발하기로 했는데 이 녀석은 밥 먹고 가겠다며 나더러 기다리란다. 기분이 좀 상하긴 하지만 나도 8시에 나왔으니 할 말이 없어 참을 수밖에….
8시 35분 출발. 어, 이거 만만하게 봤는데 길이 장난이 아니다. '이보다 더 높은 칼라파타르를 올랐으니 이 정도야'하고 생각했는데 보통 힘이 드는 게 아니다. 숙소에서 빤히 보이는 흙산을 오르는 동안 기침이 터져 가슴을 움켜쥐고 서너 걸음마다 한 번씩 쉬면서 오른다.
가도가도 끝없는 길. 눈 앞에 보이는 봉우리인가 싶어 물으면 그 때마다 기얀드라는 "그 뒤"라고 대답한다. 바로 저 봉우리인가 싶으면 다시 다른 봉우리가 나타나고 이번에야말로 다 왔나 싶으면 뒤로 또 다른 봉우리가 보이고…칼라파타르보다 훨씬 더 힘들게 오른다.
10시 30분. 거센 숨을 몰아쉬며 두 시간 만에 고쿄리 정상 도착. 정상에서는 8000m를 넘는 산들인 초유와 에베레스트, 로체와 마칼루가 한 눈에 들어온다. 아무도 없는 고개 위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들을 바라보는 기분은 거침이 없다.
인디언들의 글이 생각난다.
사냥을 나간 인디언은 너무도 아름답고 장엄한 대자연 앞에서 말을 잃을 때가 있었다. 바위산 위에는 검은 먹구름과 함께 무지개가 드리워지고, 푸르른 계곡 심장부에서 하얀 폭포가 쏟아져 내렸다. 드넓은 평원에서는 석양빛이 하루의 작별을 고했다. 그런 것들과 마주치는 순간, 우리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예배하는 자세를 갖추곤 했다. 그러기에 인디언은 굳이 일주일 중 하루를 신성한 날로 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에게는 모든 날이 곧 신이 준 날이기에!
지금 이 산에서 머무는 내게도 하루하루가 신이 준 신성한 날이다. 이 세상에 살아있음이, 살아서 내 튼튼한 두 다리로 이곳까지 올라올 수 있음이, 나 홀로 신들의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허락한 그 누군가를 향한 감사의 마음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