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암꽃이 훨씬 더 좋더라"

<내 추억속의 그 이름 160> "감꽃이 피었습니다"

등록 2004.05.24 14:02수정 2004.05.24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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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비음산 자락에 피어나는 감꽃

비음산 자락에 피어나는 감꽃 ⓒ 이종찬

감꽃 모진꽃아 오막살이 삼대째 토백이 꽃
갑오년 상투 튼 우리 할배 죽창 세워 낫 갈아 고개 넘어
영영 못 오실 길 떠나 가신 것을 감꽃 모진꽃아 너는 보았겠지
모진 세월에 우리 어메 식은 밥 말아묵고 싸리나뭇길
지리산 줄기따라 떠나 가신 것을 감꽃 모진 꽃아 너는 보았겠지
그래 감꽃아 보았겠지 애비 잃고 땅도 빼앗긴 이내 설움도
울 아배 못 잊어서 불끈 쥔 두 주먹도
감꽃 모진 꽃아 오막살이 삼대째 토백이 꽃
감꽃 모진 꽃아 오막살이 삼대째 토백이꽃


(민요 '감꽃' 모두)


노란 감꽃이 피고 지고 있다. 나는 지난 오월 초부터 하루가 멀다하고 비음산 발치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감나무 가지에서 감꽃이 피어나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감나무 가지에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은 감꽃봉오리에서 노란 눈빛을 살포시 내미는 그 순간까지도 숨가쁘게 지켜봤다.

하지만 감꽃은 좀처럼 피지 않았다. 역삼각형의 뾰족한 꽃봉오리를 매단지 열흘이 지나도록 감꽃봉오리는 늘 그 모습 그대로인 것만 같았다. 또한 감꽃봉오리는 암꽃과 수꽃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종류뿐이다. 하긴 감꽃은 양성으로 피어나기도 하지만 단성으로 피어나기도 한다고 했었지.

a 아무리 바라보아도 결코 지겹지 않은 감꽃

아무리 바라보아도 결코 지겹지 않은 감꽃 ⓒ 이종찬

a 요즈음은 감꽃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말라붙는 경우가 많다

요즈음은 감꽃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말라붙는 경우가 많다 ⓒ 이종찬

그렇게 속을 태운 탓이었을까. 지난 일요일 새벽에는 고향집 앞마당에 서 있는 감나무 꿈을 꾸었다. 감나무 가지에는 노란 감꽃이 총총 박혀 있었고 황토가 잘 다져진 앞마당에는 감꽃이 노랗게 깔려 있었다. 나는 감꽃을 한 소쿠리 주워 마루에 앉아 실에 끼우며 노랗게 웃고 있었다.

탱자나무 울타리집에 사는 그 가시나도 볼우물을 지으며 나와 함께 감꽃을 실에 끼우고 있었던가? 나는 그 가시나의 목걸이와 팔찌를 만들고 있었고, 그 가시나는 내 왕관을 만들고 있었던가? 아니, 서로의 입에 감꽃을 넣어주며 '아 떫어' 하다가 배를 잡고 깔깔거린 것도 같다.


그날, 늦잠을 잔 나는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서둘러 비음산 기슭에 있는 감나무 과수원으로 향했다. 지금 그곳에는 오늘 새벽에 꾼 꿈처럼 노란 감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겠지. 감나무 아래 감꽃이 떨어져 있으면 꿈속처럼 감꽃을 주워 작은딸 빛나의 팔찌를 만들어 줘야지.

꿈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그 감나무 가지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감꽃이 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내 속내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노란 감꽃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꿈속에서 마주보고 깔깔댔던 그 가시나의 예쁜 볼우물처럼. 그리고 그 감나무 아래에는 감꽃이 제법 떨어져 있었다.


"아니 지금 줍고 있는 그게 뭐죠?"
"감꽃이지요."
"아니, 감도 꽃이 핍니까?"
"거 참! 꽃이 피지 않으면 감이 어떻게 열립니까?"

a 수꽃은 꽃봉오리가 아주 작다

수꽃은 꽃봉오리가 아주 작다 ⓒ 이종찬

a 요즈음 과수원에서도 감나무 수꽃을 그리 보기란 쉽지가 않다

요즈음 과수원에서도 감나무 수꽃을 그리 보기란 쉽지가 않다 ⓒ 이종찬

내 고향집 앞마당에 지키미처럼 우뚝 서 있었던 감나무, 나이가 삼십 살쯤 되어 보이던 그 떨감나무에서는 두 종류의 감꽃봉오리가 매달렸다. 수꽃은 꽃봉오리가 아주 작았지만 감나무 잎사귀보다 더 많은 꽃봉오리가 가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히 맺혔다. 그에 비해 꽃봉오리가 큰 암꽃은 그리 많이 맺히지 않았다.

"감은 암꽃에서 달리는데…. 올개(올해)도 암꽃이 쪼매(조금) 피는 걸 보이(보니까) 인자 이 년에 한 번씩 해갈이를 하는갑다?"
"니도 욕심이 억수로 많네. 아, 암꽃이 수꽃만큼 더 많이 피모 나중에 감나무 가지가 우째 감당할라꼬."
"그래도 나는 꽃도 크고 감이 달리는 암꽃이 훨씬 더 좋더라."
"우리 아부지(아버지)가 그라던데(그러던데) 암꽃을 너무 좋아하모 장개(장가) 가서도 딸만 줄줄이 낳는다카더라."

60여 호 가까이 되는 우리 마을에는 집집마다 감나무가 한두 그루쯤 있었다. 해마다 이맘때 그 감나무에서 노란 감꽃이 피어나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면 마을 아이들은 감꽃을 줍느라 정신이 없었다. 감꽃은 날로 먹기도 했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입술과 혓바닥이 멍이 든 것처럼 퍼렇게 변하면서 속이 메스껍기도 했다.

그쯤 되면 머스마들은 감꽃을 실에 꿰어 왕관을 만들어 머리에 쓰고 임금님처럼 으시댔고, 가시나들은 목걸이와 팔찌를 만들어 온몸을 치장한 뒤 공주처럼 예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감꽃이 투둑투둑 떨어지는 감나무 아래에 모여 '감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놀이를 하며 배고픔을 달랬다.

a 감꽃 떨어진 자리에 어린 날의 내 모습이 숨어 있다

감꽃 떨어진 자리에 어린 날의 내 모습이 숨어 있다 ⓒ 이종찬

a 감꽃 줍던 기억도 새롭다

감꽃 줍던 기억도 새롭다 ⓒ 이종찬

하지만 우리 마을에 흔하게 있었던 감나무들은 대부분 암꽃보다 수꽃이 더 많이 피었다. 감나무 수꽃은 목걸이나 팔찌를 만들면 참 예뻐 보였지만 왕관을 만들면 그리 본떼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마을 아이들은 저마다 멋진 왕관을 만들기 위해 북채밭으로 몰려갔다.

북채밭에는 단감나무와 동이 감나무가 참으로 많았다. 게다가 그곳에 가면 꽃도 크고 본떼도 나는 암꽃이 지천으로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조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북채밭의 주인은 마을에서도 심술궂기로 소문 난 봉림삣죽이 낮도깨비처럼 인상을 찌푸린 채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봉림삣쭉의 원래 성은 박씨였다. 봉림삣쭉은 같은 마을에 살았지만 말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다리를 절어서 그런지 스스로 마을사람들을 꺼려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마을사람들도 봉림삣죽을 '박산' 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봉림삣쭉이란 말은 우리 마을사람들이 북채밭의 '박산'에게 붙힌 기분 나쁜 별명이었다.

"니는 그기 서서 봉림삣쭉이 오나 안 오나 망이나 봐라. 우리가 퍼뜩 감꽃을 줏어가꼬 니 왕관까지 맨들어주모 안 되것나."
"너거들 풀숲에 있는 감꽃은 함부로 줍지 말거라이. 잘못하다가 독새(독사)한테 물리가꼬 죽니 사니 하지 말고."
"그런 걱정은 아예 붙들어 매뿌라. 우리가 오데(어디) 북채밭에 한두 번 댕기봤나(다녔나)."
"쿵~"

그날 우리들이 한창 감꽃을 줍고 있는데, 감나무에서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노란 감꽃이 우리들 까까머리 위로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영문도 모르고 '이게 웬 떡이냐, 하며 감꽃을 마구 줍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다시 감나무에서 쿵, 하는 소리와 동시에 감꽃이 투두둑 떨어졌다.

a 감꽃을 주워 작은딸 빛나의 팔찌를 만들어 주었다

감꽃을 주워 작은딸 빛나의 팔찌를 만들어 주었다 ⓒ 이종찬

a 감꽃 팔찌 속의 꼬마들, 왼쪽으로부터 조카 소영, 큰딸 푸름, 작은딸 빛나

감꽃 팔찌 속의 꼬마들, 왼쪽으로부터 조카 소영, 큰딸 푸름, 작은딸 빛나 ⓒ 이종찬

그때였다. 망을 보던 동무가 휘이익 휘파람 소리를 내며 앞산가새로 마구 내빼기 시작했다. '좋아라'하고 감꽃을 마구 줍던 우리들은 '쟈(쟤)가 와 그라노' 하면서 감나무가 서 있는 탱자나무 울타리 사이를 올려다 봤다. 노란 감꽃이 총총 매달린 그 감나무 옆에는 봉림삣쭉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봉림삣쭉이다아~ 튀어!"
"야(얘)...야들아! 내가 털어주는 감꽃은 안 줍고 오데로 내빼노? 내가 그리도 무섭게 비나(보이나)."
"인자 죽었다. 빨랑 튀어!"

그날 가까이서 바라본 봉림삣쭉은 머리에 뿔이 나 있지도 않았다. 그리고 떠도는 소문처럼 얼굴에 칼자국도 없었다. 그저 이웃집 아저씨처럼 포근하고도 평범한 그런 인상을 짓고 있었다. 늘 도끼 모양의 쇠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독사를 잡아 먹는다고 했지만 봉림삣쭉이 짚고 있었던 것은 지게작대기였다.

그날, 봉림삣쭉은 우리들에게 좀 더 많은 감꽃을 줍게 하기 위해 일부러 감나무 밑둥을 발로 걷어찼던 것이었다. 그렇찮아도 절름거리는 그 불편한 발로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지레 겁을 집어먹고 주웠던 감꽃마저 몽땅 내버리고 도망을 갔으니, 그때 봉림삣쭉의 마음은 얼마나 쓰라렸을까.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셋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김준태 '감꽃'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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