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교사는 학생들의 인권을 생각해야

[교실에세이]0교시 폐지를 주장하는 교사 1인 피켓 시위를 보며

등록 2004.06.07 07:11수정 2004.06.0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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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4일 있었던 순천 ㄱ 고교 김길희 교사의 1인 피켓 시위

지난 4일 있었던 순천 ㄱ 고교 김길희 교사의 1인 피켓 시위 ⓒ 안준철

해마다 담임을 맡게 되면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이 아이들과의 대화입니다. '3월에 꽉 잡았다가 나중에 서서히 풀어 주라'는 고참교사의 '불변의 담임 비법'에 귀가 솔깃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환경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채 학기초부터 대화가 단절된 공간에서 살아야 하는 학생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이내 마음이 여려지고 맙니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을 꽉 잡기는커녕 오히려 학생들 앞에서 친절한 교사가 되겠다고 서약까지 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학교에서 아이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특히 학기 초 보충·자율학습 문제로 반 아이들과 실랑이를 하다보면 학교에서 학생들과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하는 깊은 회의감에 빠질 때도 종종 있습니다.

"선생님 저 야자(야간자율학습) 안 하면 안 돼요?"
"대학에 가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무슨 소리야."
"솔직히 애들 떠들기만 하고 공부도 안 해요."
"그럼 너라도 열심히 해야지."
"전 집에서 해야 공부가 잘 되는데요."
"그건 습관들이기 나름이야."

대화라기보다는 억지에 가까운 말로 아이를 타일러(?) 돌려보내고 나면 어딘지 뒤가 허전합니다. 아이들 앞에서 친절한 교사가 되겠다고 선언까지 한 담임으로서 그 약속을 지킬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못해 화가 나기까지 합니다. 올해는 담임을 맡지 않아 아이들과 그런 실랑이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마음이 편하고 떳떳한지 모릅니다.

한 해 담임을 맡아 아이들 때문에 신경을 쓰고, 아파하고, 때로는 심한 좌절감에 빠져 입맛을 잃어버릴 때도 있지만, 그것이 아이들의 바른 성장을 위해서 밭에 뿌려지는 거름과 같은 역할을 한다면 교사로서 당연히 그런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불필요한 수고를 강요하는데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근무하는 학교는 실업계라 그런지 전체 학생이 다 보충·자율학습에 참여해야 하는 인문계에 비하면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지난해는 특기적성이든 야간자율학습이든 정말 희망하는 학생들만 명단을 올렸는데도 별 탈 없이 지나갔습니다. 특히 야간 자율학습을 희망하는 학생이 3명에 불과했지만 그 일로 교장실에 불려간 일은 없었습니다. 만약 인문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다음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안 선생, 지금 뭐 하자는 거요?"
"예?"
"자율학습 희망자가 3명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냔 말이요?"
"3명 밖에 신청을 안 했는데요."
"뭐요?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요?"
"자율학습은 희망자에 한해서 하게 되어 있어서 강요할 수도 없고 해서…."
"허허. 그런 식으로 학급을 관리하니까 늘 그 모양이 아니오?"

보충자율학습은 희망자에 한하여 실시한다는 상급 관청의 지침을 성실히 이행했으면서도 학급 관리를 잘 못하는 무능교사 취급을 받고 교장실을 나온 교사의 자괴감은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더욱 커지기 마련입니다. 한때나마 전체 학생이 강제로 보충수업을 받아야 했던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 보면 교실에서의 상황이 쉽게 그려집니다.


"선생님, 어떻게 됐어요. 우리 야자 안 해도 돼요?"
"아무래도 안되겠다. 다른 반은 거의 100%인데 우리 반만 3명이라서…."
"그러니까 제가 꿈 깨시라고 했잖아요."
"기왕 이렇게 된 거 열심히 공부하도록 해라."
"선생님, 전 야자 죽어도 안 합니다. 정말 강제로 하라고 하면 교육청에 고발할 겁니다."
"허허, 이 녀석…."

교사 입장에서 보자면 참 딱한 풍경이지만 그래도 이런 교실은 희망이 있습니다. 버릇이 좀 없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펄펄 살아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아이들의 불만을 정당한 의견으로 받아들이고자 애쓰는 교사가 있는 한 언젠가는 학교 환경이 개선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학교의 주인인 아이들은 기가 팍 죽어 있고 학생들이 없으면 존재할 이유조차 없는 교사 혼자서만 날뛰는 교실이 문제입니다. 가령, 이런 풍경이겠지요.


"내일까지 보충자율학습 희망원에 도장을 찍어와라."
"선생님, 희망하지 않는 학생은 도장 안 찍어와도 됩니까?"
"뭐? 쓸데없는 소리 말고 도장이나 찍어와."
"선생님, 전 태권도 도장에 나가야 하는데요."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으면 대학갈 준비를 해야지 무슨 태권도야."
"저 태권도로 대학갈 건데요."
"허허 말이 많네. 까라면 까지."

지난 3일과 4일 순천 몇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0교시와 강제 보충자율학습 폐지를 위한 1인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것을 보며 만약 지금 이 시대에 고등학생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어쩌면 문제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새벽 같이 일어나 밤 10시가 넘도록 딱딱한 의자에 앉아 공부를 해야한다는 사실보다는, 무려 3년 동안이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화가 불가능하고 자기 의견이나 생각, 혹은 감정을 자유롭게 말하거나 표현할 수 없는 억압된 공간 속에서 생활을 해야한다는 사실이 저로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문학모임에서 만난 선배 문인이 저를 보자 뭔가 궁금한 표정을 짓더니 다짜고짜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안 선생도 전교조지요? 내 친구가 모 고등학교 교장으로 있는데 날 만나기만 하면 전교조 욕을 그렇게 해요. 전교조가 그렇게 문제가 많나요?"

그 물음에 저는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난감했습니다. 전교조 교사라고 다 옳거나 훌륭한 것은 아닐 테고, 그분의 친구인 교장 선생님이 당하신 일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같은 조합원이라고 무조건 옹호할 일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학교장과 전교조 교사 사이에 일어남직한 상황들을 고려해볼 때 대충 짐작이 가는 일이기도 해서 이렇게 좀 장황한 설명을 드린 기억이 납니다.

a 지난 3일 있었던 순천 ㅎ 고교 김종화 교사의 1인 피켓 시위

지난 3일 있었던 순천 ㅎ 고교 김종화 교사의 1인 피켓 시위 ⓒ 안준철

"쉽게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볼게요. 학교에는 방과 후에 수익자 부담원칙으로 하는 특기적성교육이 있는데 흔히 보충수업이라고 하지요. 교육부의 지침대로는 학생들의 특기를 살려서 희망자에 한하여 방과후에 하도록 되어 있는데 학생들의 희망의사라든가 특기 같은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입시과목 위주로 시간표를 짜서 획일적으로 수업을 하고 있지요. 자율학습도 학생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강제로 하고 있고요. 말하자면 법을 어기고 있는 셈이지요.

문제는 한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어 학교에 들어오면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3년 동안 그런 불법적이고 억압된 틀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말입니다. 언젠가는 한 여학생이 담임 선생에게 보충수업을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가 끝내는 학교를 그만두고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지요. 정당하게 자기 의사를 표현했는데도 평소 학생이 존경하던 교사들마저 여자가 그렇게 고집이 세면 안 된다는 등 너무도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스스럼없이 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탓입니다.

텔레비전에 직접 출연하여 그런 말을 하는 여학생들 보면서 저는 교사로서 견딜 수 없는 수치심이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학생에게 너무도 미안했고요.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 학생의 희생으로 우리 교육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도 했었지요. 그런데 다음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우리 사회는 이미 한 사람의 무고한 희생을 목격했으면서도 아무런 반성도 할 수 없는 무감각한 사회가 되어버린 거죠.

학교에는 입시교육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입버릇처럼 말은 하면서도 현실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눈을 감아버리는 교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잘못된 교육으로 멍들어 가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꾸준히 문제제기를 하고 길을 모색하는 교사들도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전교조 교사들이지요. 아마도 교장선생님은 그런 전교조 교사들이 불편하고 불쾌하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아이들은 알겠지요. 누가 진정한 교사인지를."


지난 5월 24일 전남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보충학습, 자율학습은 희망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정규수업 시간 전 보충학습(0교시 수업)은 금지하며 ▲0교시 금지에 따라 학생들의 등교시간을 늦춰서 실질적 건강권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주요골자로 하는 공문을 일선학교에 내려보낸 바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이를 이행하지 않는 학교가 대다수입니다. 거기에 일부 학부모 단체까지 합세하여 우리 교육의 앞날을 위태롭게 하고 있습니다.

요즘 '0교시 수업 폐지 반대'를 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들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마치 교육이 학교와 학원(혹은 EBS 교육방송)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아침에 30분 늦게 등교하거나 저녁에 일찍 보내주면 아이들이 학원에 갈 것이라는 생각 밖에 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아침이나 저녁 식탁에 단란하게 둘러앉아 가족끼리 대화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가정 교육의 소중함을 모르거나 방기하고 있는 셈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오해나 착각이 일부 학부모뿐 아니라 교육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육의 백년대계와 아이들의 건강을 생각해 교육정상화를 주장하면 곧바로 사교육비 문제가 튀어나옵니다. 너무 일찍 끝내주면 생활지도에 문제가 있다는 말도 합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우리 나라에서는 정상적인 교육을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런 심각한 증상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입만 열면 세계 경쟁력을 운운하면서 말입니다.

이제라도 학교는 학생들의 인권과 건강을 생각해야합니다. 새벽 같이 일어나 아침도 거른 채 등교하여 밤이 깊어서야 귀가하는 아이들의 환경을 바꿔주지 않고서 진정한 교육과 자식 사랑을 말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누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진정한 교사인지 가려낼 수 있는 맑은 눈을 가진 학부모들이 많아야 우리 교육에 희망이 있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라면 마땅히 자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의 미래, 우리의 새싹인 한 아이가 쓴 글입니다.

'나도 내년이면 고등학생이 되는데, 새벽부터 일어나서 0교시 수업을 해야한다는 게 너무 싫다. 텔레비전에서 보면 0교시 수업은 학생들이 자거나 딴 짓만 하고 선생님 혼자 수업하시는 거나 마찬가지다. 차라리 그럴 거면 아예 아침에 1시간이라도 더 자고 학교에 기쁜 마음으로 오는 게 학생들에게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선생님들께서도 학생들의 하루 일과를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 크게 야단치지도 못하시는 것 같다. 내 생각에는 0교시 수업이 폐지된다고 하더라도 공부하는 학생들은 어차피 알아서 공부할 거고, 안 하는 애들은 0교시 수업이 있더라도 어차피 안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고등학생이 되면 공부하느라 밤에 늦게 자는데 거기에 0교시까지 하는데 학생들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외국학생들에게 우리 나라 학생들은 아침에 7시쯤 온다고 하니까 다들 놀라는 표정이었던 것을 봤다. 선진국들은 학생들에게 조금 더 편하게 해주려고 0교시도 하지 않는데 우리 나라는 정치하는 것과 다른 것들만 따라하면서 교육, 학생들에게는 전혀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제 고등학생이 될텐데, 빨리 0교시 수업이 폐지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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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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