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 같지 않은 안타까운 일들

등록 2004.06.21 11:40수정 2004.06.22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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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녁 한가로운 시간에 아내와 함께 슈퍼마켓에 갔다. 몇 가지 생필품들을 수레에 담았다. 계산을 마치고 매장을 나오려고 하니 한쪽에서 빵 가게를 별도로 운영하는 아주머니가 '양파빵' 맛을 보라고 했다. 조금 떼어주는 양파빵을 먹어보니 맛이 좋았다.


나는 혈당 때문에 음식을 가려야 하는 신세고, 아내도 과체중 때문에 다이어트를 하는 처지였다. 또 어머니는 2001년 대장암 수술 이후 간헐적으로 지속되는 설사 때문에 밀가루 음식은 가능한 피하셨다.

그래도 아들녀석이 생각났다. 학원에서 밤 9시쯤 돌아올 때마다 문을 열기가 무섭게 "엄마, 밥! 할머니, 밥!"하고, 밥 달라는 소리부터 크게 외치며 들어오는 녀석이었다. 밥상을 차리는 동안 우선 양파빵을 주면 잘 먹을 것 같았다.

매장 출입구를 통과하려는데 바로 옆 치킨 가게로 눈이 갔다. 역시 슈퍼마켓과는 별도로 운영하는, 전에는 보지 못했던 치킨 가게였다. 닭의 날개 부위와 뒷다리를 따로 떼어 팔고 있었다. 날개 부위는 2000원이고, 뒷다리는 2300원이라고 했다.

또 아들녀석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었다. 천안에서 자취생활을 하는 딸아이가 걸렸지만 아들녀석에게 줄 닭다리 하나를 샀다.

집에 와서 물건 정리를 하고 조금 있으려니 아들녀석이 왔다. 아니나다를까 문을 열기가 바쁘게 "엄마, 밥! 할머니, 밥!" 하고 외쳤다. 어지간히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녀석아,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렇지, 네 눈에는 엄마나 할머니가 밥으로만 보이냐?"
엄마가 반가운 웃음을 지으면서도 핀잔을 주니, 녀석의 대답은 더욱 엉뚱했다.

"당연하죠."


그 소리에 온 가족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 2학년인 아들녀석은 아직 귀염둥이 태가 완연했다. 할머니를 비롯하여 온 가족에게 웃음을 많이 선사해주는 녀석이었다.

내가 손수 양파빵과 닭다리를 주니 아들녀석은 환성을 질렀다. 그리고 닭다리부터 먹기 시작했다. 맛있어 죽는 녀석의 모습을 보며 내가 한마디했다.

"자식이 뭐고 새끼가 뭔지…. 아들녀석의 저 맛있어 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즐겁네."

그러자 아들녀석이 또 능청스럽게 대꾸를 했다.

"그러니까 부모죠."

"그런데 아빠는 말야, 우리 아들에게 줄 음식을 사면서도, 또 우리 아들이 맛있게 음식 먹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다가도, 가슴 한구석이 아파. 우리 가족이 즐거운 시간을 가질 때마다 꼭 그런 걸 느껴? 그게 뭔지 아니?"

아내와 어머니는 눈치를 채는 기색이었지만, 아들녀석은 호기심을 머금은 눈빛으로 아빠를 보았다.

"부모 없이 사는 아이들을 생각하곤 해. 고아들을 생각하면 괜히 미안해지고 가슴이 아파. 며칠 전에 텔레비전에서 교통사고로 부모를 모두 잃은 아이를 보았는데, 그 아이 모습이 지금도 아빠 눈앞에 어른거려. 초등학교 5학년인가 하는 여자아이였는데…. 이 세상에는 부모 없이 사는 아이들도 많지만, 부모가 있어도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사는 아이들도 많아. 아빠는 자녀를 학대하는 부모가 이 세상에서 제일 미운 사람이라고 생각해."

아들녀석은 닭다리를 뜯어 먹으면서도 아빠의 말을 귀담아듣는 기색이었다. 나는 한마디를 더 했다.

"네 할아버지는 여섯 살에 아버지를 잃고, 아홉 살에 어머니마저 잃은 분이야. 물론 형님 밑에서 자랐지만, 부모 잃은 설움이 얼마나 컸겠니. 고생스럽게 소년시절을 보내면서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도 무시로 컸을 테니, 그런 할아버지의 어린시절을 생각하면 아빠는 지금도 가슴이 아파.

내가 왜 오늘 할아버지 얘기까지 하는지 아니? 사람은 누구나 나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야. 부모의 사랑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부모 없는 고아들을 생각하면서 늘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하고…."

그때 어머니가 한마디하셨다.
"아빠의 그 얘기 때문에 우리 아들 음식 맛 달아나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네."
그러자 아들녀석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렇진 않아요. 아빠 말씀의 뜻도 잘 알고요."

"어이구, 우리 아들. 그저 이쁜 소리만 골라서 헌다니께!"
어머니가 다가앉아 손자녀석의 엉덩이를 두드리는 바람에 우리 가족은 또 한 번 즐겁게 웃을 수 있었다.

(2)
우리 동네에 미장원이 하나 있다. 미장원을 운영하는 '나나엄마'는 키 크고 서글서글한 용모를 가진 중년의 과댁이다.

나나엄마는 지난해 가을에 과댁이 되었다. 고등학교 영어교사였던 남편이 그만 세상을 하직했기 때문이다. 미장원을 운영해서 돈도 잘 벌고, 고등학교 교사인 부지런한 남편과 행복하게 잘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남편과 사별을 하니 너무도 허무하고 거짓말 같은 일이었다.

고인의 고향에는 90세 가까운 노모가 살고 계신다고 했다. 나나엄마는 그 시어머니께는 아직 남편의 죽음을 알리지 않고 있다고 했다. 남편이 외국으로 공부를 하러 갔다고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한다. 고인의 형제들도 모두 노모 앞에서는 쉬쉬하며 그 비밀을 감추고 있다고 한다.

며칠 전에 그 노모에게서 이곳 태안의 며느리에게로 전화가 왔다고 했다. 왜 남편을 먼 나라로 보냈느냐고, 오십도 훨씬 넘은 나이에 무슨 공부냐고, 외국에까지 나가서 하는 공부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지 모르는 늙은 에미에게 전화 한 번 할 줄 모르느냐고, 섭섭한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전화를 끊고 나서 방바닥에 퍼질러앉아서 또 한바탕 막 울었지요, 뭐."

그런 나나엄마의 이야기를 전하며 어머니는 눈시울을 적신다. 나나엄마도 불쌍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그 노모도 불쌍하다고 했다.

"아들에게서 전화 한 번 오지 않는 것이 섭섭헐지라도, 그 할매가 길래 그런 줄로만 알고 사시다가 돌아가시는 편이 났지 뭐…. 살아서 늙은 에미에게 전화 한 번 하지 않는 불효보다도, 그런 늙은 에미와 처자를 모두 버리고 세상을 하직하는 소행이 더 불효니께…."

그러며 어머니는 또 한숨을 쉬신다. 나나엄마가 더 서럽게 울 일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말을 하시며 혀를 차기도 하신다. 어머니는 나나엄마의 그 처지가 못내 가슴 아프고 노모의 처지도 걱정이 되시니, 미장원에 가실 적마다 나나엄마에게 그 노모의 안부도 물으실 것 같다.

(3)
일찍 자건 늦게 자건 4시간쯤 자면 자동적으로 잠을 깬다. 완전히 습관성이다. 그래서 대개는 새벽 3시경이면 잠에서 깨어난다.

나보다 잠복이 엄청 많은 아내는 정말 부러울 정도로 잘 잔다. 내가 때로는 불면증에 시달릴 때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내 몫까지 쿨쿨 잘도 잔다.

그렇게 잠복을 타고 난 사람이 오늘 새벽에는 내가 일어나는 시각에 잠이 깨어서는 한숨을 쉬었다.

"아니, 당신답지 않게 왜 일찍 잠이 깨 가지구 새벽부터 웬 한숨이야? 무슨 걱정이 있남?"
"너무 안타깝고 속상해서 그래요?
"뭐가?"

아내는 잠시 후에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서울 어떤 아파트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이에요. 유리가 깨진 엘리베이터 승강구에 머리를 넣었다가 위에서 내려온 엘리베이터에 치어서 죽은 아이 말이에요. 그 아이가 우리 아이와 같은 중학교 2학년이라잖아요."
"그랬지."
"그 아이 엄마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그래서인지 어제부터 잠도 잘 오지 않고, 잠이 들었는데도 쉽게 깨네요."
"왜 그 아이 엄마 생각만 해? 아빠 생각도 해야지."
"아무튼요."

"근데 그 아파트 엘리베이터 승강구의 유리 깨진지가 두 달도 넘었다며?"
"그랬대요, 글쎄…. 그래서 내가 더 안타깝고 속이 상해서, 자꾸만 더 그 집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 나도 그 생각만 허면 너무 어처구니 없어."

"안전불감증이란 말이 또 한 번 실감되는 것 같아요. 우리 생활 주변의 사소한 것에서부터 큰 공사 현장에 이르기까지…. 안전불감증이라는 이름의 악령이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것만 같아요. 서울 그 아파트의 그 일이 남의 일 같지 않고, 언제 어디에서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하면 정말 두려워요."

"안전불감증과 관련해서는 우리 모두가 바짝 신경을 쓰며 살아야 해. 나는 길을 걷다가 길바닥에 떨어진 못을 보면 그 길을 오가는 자동차들의 바퀴 펑크를 염려해서 주워서 처리를 하곤 하지만, 사소한 것에도 신경을 쓰는 그런 마음들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할 것 같아."

"안전불감증에 대해서는 우리도 할 말이 없지요, 뭐. 우리에게도 슬픈 과거가 있으니까…."
"그거야 그렇지…."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입을 다물었다. 세심하지 못했던 우리 모두의 안전불감증에 의하여 빚어졌던 11년 전의 슬픈 사건을 그러나 다시 입에 올리지는 않았다. 어머니의 칠순 생신 잔치를 열었던 음식점의 분수대가 있는 연못에 네 살배기 내 조카녀석이 빠져 목숨을 잃은 그 거짓말 같은 일은….

그러나 아내도 다시 그 일이 생각나서인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아내의 어깨를 가볍게 두어 번 토닥여주고 몸을 일으켰다. 아내의 가슴을 길게 아프게 한 서울 그 아파트의 사건을 다시 떠올리며, 방을 나서면서 성호를 그었다. 그 중학생 아이의 영혼과 부모들을 생각하면서 거실에서 홀로 잠시 기도를 한 다음 하루 생활을 시작했다.

안전불감증이라는 이름의 악령을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바짝 경계하며 살게 되기를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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